본문 바로가기

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 (카

과잉 교육

‘유년시절은 인생의 땅을 일구는 시간이다. 감정과 아름다움의 의미, 새로움과 모르는 것에 대한 열정, 공감과 연민, 존경과 사랑의 느낌이 들면 우리는 감동의 대상에 대해서 알고 싶어진다. 그렇게 그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 의미는 지속된다. 아이가 흡수할 준비가 안 된 수많은 자료를 주는 것보다 아이가 알고 싶어하는 길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 레이철 카슨, 센스 오브 원더 중에서 )

 

과잉교육은 ‘슈퍼차일드’로 만들기 위해 남들보다 인지적, 정서적 단계를 앞서 나가려는 강박증이다. 아이에게 더 많은 자극을 더 빨리 준다고해서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읽기와 쓰기 등의 학습을 정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지적 성숙이 여섯살 때부터 시작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이전단계들을 거치지 않고 뛰어넘는 것은 아이에게 좌절감을 심어주는 결과를 낳고, 이것은 결국 아이의 자존감에 영향을 끼치며 이런 실패의 연속은 미래의 학습발달에 영향을 준다. 유년기는 놀이를 하면서 생각하는 것을배우고 준비하며, 뇌를 구성하는 시기다. 그러면 아이가 나중에 그 뇌안에 여러가지를 배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부모들은 아이가 세살때 이름을 못쓰고, 네살때 글을 읽지 못한다고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언젠가 에디슨이 아인슈타인에게 소리의 속도에 대해서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릅니다. 저는 모든 설명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료들을 머리에 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교육은 자료들을 과도하게 채워넣는게 아니라, 자신의 방법대로 생각하기 위한 머리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책에 나오지 않는 것들을 알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자녀들의 높은 성취도에 집착하는 것은 유년시절 교육환경에서 아직 이해할 준비가 안된 아이들을 하루 종일 음악과 언어, 수학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전문가들 앞에 쭉 줄세워,  아이가 경험하는 현실들을 조각내는 것과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놀이를 즐기고, 서두르지 않고 상상하며, 스스로 무언가를 발견해 가야 하는데, 그럴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날아다니는 사람들을 그리고 형제들과 들판에서 뛰어다니며 나비를 잡고 야생화를 보며, 기상천외한 모험과 비밀여행을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유치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가정교사와 집 식탁에 앉아 방학생활의 빈칸을 채우면서 보내는 것 뿐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뒤처질까봐 겁을 내고, 엉뚱한 것을 포함한 모든 과잉교육기술들이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때까지의 발전단계를 가속화시키는데 중요하다고 착각한다. 우리는 유년시절이 삶의 과정을 조화롭게 하기위해 온전하게 살아야하는 기간이자 어른으로 향하는 하나의 단계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우리는 아이들을 모두 똑같이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틀에 그들을 끼워 넣고 있다. 억지로 세대간의 경계를 허물고 아이들의 즐거운 자발적 활동들을 무시하면서 자녀와 부모 사이가 똑같아지기를 강요하고, 여가 시간에는 아이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아이와 학생들의 독창성과 창의력의 싹을 잘라버리려고 하는 것은 곧 아이들을 죽이는 행위다. '우리가 그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바로 지금이 이런 처벌 받지 않는 학대에 대해 생각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위급한 순간이다‘.  ( 파울리노 카스텔스, 아동정신과 의사의 ’ 우리는 아이를 죽였다‘에서)

 

아이들은 유년기에 모든 놀라운 것들을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 즉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상상력과 놀이, 신비감, 순수함 등이 있어야 한다.  이 시기를 그냥 뛰어넘는 것은 아이 인격을 발달시키는 본능적 메커니즘을 무시하는 것이다. 아이가 신비감을 받아들이고 깨닫게 되면, 부모들은 이 모든 것이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 되는데, 이것은 마치 잘 날아가고 있는 원격조종 공을 터뜨린 것과 같다.  즉 바로 자유낙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직관적 사고는 거룩한 신의 선물이고, 이성적 사고는 충실한 종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은 떠받들면서 정작 선물은 잊고 사는 사회를 만들어버렸다‘ 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많은 것을 준비하기 위해, 그들의 상상력과 경이감, 창의력을 죽인다. 그리고 아이의 본성을 거슬러 강요하는 이성적인 태도는 차갑고 냉소적이며, 계산적인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확실한 것은 이 모두가 경이감과 반대되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욕망의 대상, 즉 진열장 트로피 같은 아이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한편 경쟁적이고 끈덕지게 조르는 세상의 압박과 자녀들을 성공시키고 싶은 모든 부모들의 욕망 때문에, 아이의 성숙 과정과 내부질서에 맞지 않다는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수많은 행동과 지식을 자녀들에게 주입하고 있다아이 앞에서 우리는 행동과 대화의 품위를 잃고, 아이들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놔둔다. 또한 아이들이 놀라운 것을 봤을 때 두려워 하거나 혐오스러운 것을 대할 때, 불쾌해하지 못하게 막고 그저,  어른스럽기 만을 바라며 아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들을 잔뜩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