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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 propaganda 추석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근처 광교호수를 찾았다. 우리 세대는 좋은 시대를 살고 있고 대한민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다. 나는 운運 좋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후손들의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들이 살게 될 세상은 내가 살았던 세상보다 모든 측면에서 훨씬 더 나쁜 세상이 될 것 같다. 우리는 시대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나름대로의 소명에 대한 책임감을 키워나가야 한다. 우리 각자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만이 아닌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배워야 한다. 이제 누군가 다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할 여유가 없다. 우리 각자는 자기 몫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을 던지고 지식인이 속한 사..
법과 이데올로기 돌아보면 지난 세월을 치열하게 살지 못하고 허송세월로 살았다는 자책감이 있다. 데모가 일상적이었던 70년대 대학교를 다녔지만 당시 나는 그런 사회적 상황을 듣고 보면서 외면했다. 그러나 그런 사회의 횡포에 맞서는 자들 때문에 나는 지금 이 호강스러운 고민을 한다. 김수영의 詩 ‘폭포’ ‘풀’을 읽을 때면 더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딸 책상을 정리하다 고등학교 때 공부한 단편소설을 읽다 감명 깊게 읽은 것이 박완서의 ‘조그만 체험기’와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이다. 요즘 시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라 소개한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분노를 책을 덮는 순간 잊어버리고 살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는 한 사람의 권력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아무리 허울 좋은 법과 이..
어떻게 살 것인가? 살다보면 아주 사소한 것에 매달려 그 순간 그것이 세상 모든 것인 것처럼 죽네 사네 고민하고 힘들어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세상 일 모든 것들이 장난 같고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모든 것들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이것도 깨달음인가? 산다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다는 깨달음.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인가? 깨달음이란 지금까지의 삶, 사고에서 벗어나 그것들을 무화無化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세상을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해탈解脫이니 초월이니 하는 깨달음은 공부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 결국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작 아닌가? 열심히 젖병을 빨면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손자를 보면 남은 여생餘生이라도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
나의 소원은 이번 여름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손자에게 붙잡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손자와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손자의 재롱을 보며 좋겠다고 하지만, 일상의 모든 것을 손자에 맞춰 왼 종일 지내다보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녹초가 된다. 무더운 여름날 중노동도 이런 중노동이 없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아이는 또 얼마나 불행한지를 경험한다. 무더운 여름날 아이는 나가자고 칭얼거리며 때 쓰고, 울고 억지 부리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근처에 있는 아쿠아리움이다. 하지만 17개월 아이에게는 어두컴컴한 이곳도 마땅치 않아 칭얼거리기만 한다. 다시 무더운 날씨에 유모차를 밀고 탄천을 나간다. 그제야 아이..
한국사 9 조선 왕국 초기 100년을 제외하면 조선의 사대부들은 늘 두 파로 나누어 싸워야 했다. 때로는 다른 왕위 계승권 자를 끼고서 다투었고 때로는 철학적 논쟁으로 갈라서기도 했고, 대외변화를 어떻게 볼 것이냐를 두고 싸우기도 했다. 국내의 문제를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로 해결하지 못하고 언제나 외부세력을 끌어들이는 것이 이 나라의 해결법이었다. 개화를 주장하고 집권한 민씨 정권은 대원군을 물리쳐준 청나라에 붙어 사대당의 주력이 되었다. 대원군이 역사를 거스르려 한 것도 문제지만 민씨 세력이 내부반란을 진압하기위해 청나라를 끌어들인 것은 더욱 큰 잘못이었다. 임오군란을 진압하고 청은 조선에 통상조약을 강요했다. 조약문에 조선을 청의 속국이라고 정식으로 명문화되어 있었다. 수구로 돌아선 민씨 정권은 청의 그런 ..
한국사8 풍양조씨 우두머리인 조만영의 딸이므로 후대 조대비로 잘 알려진 신정왕후는 가문을 부활시키려 했다. 순정왕후가 장헌세자 서자인 은언군 후손에서 철종을 발견했다면, 조대비가 찾은 인물은 은언군의 동생인 은신군의 손자 이하응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였기 때문에 너무 늙은 나이다. 그에게 명복이란 열한살 짜리 둘째 아들이 있었다. 아들을 왕위를 올리려는 이하응과 조대비가 의기투합하여 조선이 26개 왕인 고종을 즉위하게 한다. 조대비가 수렴청정 하는 것으로 고종의 치세가 시작되었다. 몰락한 풍양조씨는 조대비 소망과 달리 세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권력은 이하응에게로 옮겨왔다. 대원군은 권좌에 오르자마자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조선 역사상 가장 주체적인 종교이념인 동학 출현했기 때문이다. 동..
한국사 7 정조가 죽자 규장각은 본래 기능인 도서관을 돌아갔고 장용영도 해체되었다. 그보다 더 명백한 과거로의 회귀는 노론 벽파가 권력의 일선에 등장한 것이다. 벽파가 권좌에 복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나 인물이 영조계비 정순왕후이다. 정조의 열 살짜리 둘째 아들 순조가 왕위를 계승했으며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맡게 된다. 시파 인물을 숙청하고 노론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들은 조정에 남아있는 시파 등의 세력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전국이 그리스도교를 색출해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린다. 그렇게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집권사대부들은 사상 처음으로 당쟁에서 벗어나 단일한 색깔을 띠게 되었다. 그렇게 최후에 남은 사대부 세력은 결국 성리학적 이념의 농도가 짙은 노론의 일색이었다. 이것은 한반도에 내려진 저주였다. 이상적인 사대부체..
한국사6 영조는 왕세자 시절 자신이 겪은 경험과 중종이래로 200여 년간 역사를 바탕으로 사대부 정치폐해를 익히 알고 있었다. 왕국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왕당파를 육성하는 길이다. 하지만 그것은 측권들이 훈구파를 형성해 권세를 휘두르는 폐해를 가져왔다. 다른 방법은 측근을 키우지 않으면서 당쟁을 막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대부들의 당파를 현실적으로 인정해 주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영조의 탕평책은 여기서 나왔다. 오늘날 양당 중심의 대통령제와 닮아있다. 영조의 치세에 서로 대립하는 두 당파는 노론과 소론이었다. 이들 간의 세력균형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사를 고르게 하면 된다. 영조의 즉위를 가장 반대한 세력은 소론이었다. 영조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탕평책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