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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프로파간다 propaganda

추석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근처 광교호수를 찾았다. 우리 세대는 좋은 시대를 살고 있고 대한민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다. 나는 운運 좋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후손들의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들이 살게 될 세상은 내가 살았던 세상보다 모든 측면에서 훨씬 더 나쁜 세상이 될 것 같다. 우리는 시대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나름대로의 소명에 대한 책임감을 키워나가야 한다. 우리 각자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만이 아닌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배워야 한다. 이제 누군가 다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할 여유가 없다. 우리 각자는 자기 몫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을 던지고 지식인이 속한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지식인의 정의, 그리고 그 기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한 분야에 대해 깊은 학식을 갖추거나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졌다고 해서 그를 지식인이라 부르진 않는다. 각종 전문자격증을 취득한 의사, 판사, 변호사 등등의 직업군과 각 학문 분야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는 교수, 연구원, 어떤 분야에서 최고에 이른 언론인, 작가, 예술가 등은 지식인이 될 가능성을 가졌을 뿐. 그 자체로서는 전문가에 불과하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존재는 기성사회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이끌어 나가는데 필수적이다.
 
그래서 지배층은 이런 전문가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교육시스템과 이들 전문가들에게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 전문가들은 완전한 지배계급에 포함되는 것이 아닌, 지배계급의 밑에서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기 위한 말단 관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자신의 학문과 지식, 능력을 지배층의 지배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논리개발에만 사용하거나, 지배층의 논리에 타협하는 수많은 가짜 지식인들이 바로 이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그들을 "집 지키는 개"라고 표현한다.
 
이제는 누구에게나 보편화된 교육시스템에 의해 이러한 전문가들이 기존의 피지배계층에서 나오게 되면서 이들 전문가들은 자신이 습득한 전문분야에 대한 폭넓고 깊은 지식 등을 도구로 삼아, 그 사회의 계급구조 안에서 자신이 처해있는 모순된 위치- 피지배계급으로서 지배계급의 말단에 봉사하는 역할을 하는 위치-에 대해 인식하고, 자신의 전문지식과 능력을 활용하여 '지식인'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들은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문제를 제기한다. 지식인의 기능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며, 지식인은 자신이 교육받으며 습득한 보편타당한 철학, 학문적 진리, 인류 보편의 가치들이 자신의 삶을 넘어 사회전반에서 실현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식인은 고독하다. 그들에게 그러한 역할과 기능을 누구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은 그들을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존재로서 양성했을 뿐이므로 그들로부터 추방되고, 혜택 받지 못한 계급으로부터는 수상적인 불신의 눈길을 받는 스스로의 존재 자체가 사회의 부조리함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가 된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지식인들에게 다음 태도를 제안한다.
 
‘세상에는 전문가가 많다. 그중에는 지식인으로 불릴만한 사람도 있고, 가짜 지식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있다. 진정한 지식인은 끊임없이 자신이 지식전문가로서 자신의 계급적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는 지배적 사고체계를 형성할 위험이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여야 한다. 그 모순을 계속해서 인식하고, 스스로가 그 상태에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혜택 받지 못한 계층의 행동에 대해 연대를 맺어야 한다. 지식인은 이론과 판단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천과 행동 속에 자신을 통합시키고, 행동이 스스로를 이끌어가는 존재여야 한다. 하지만 그는 역시 지배계급으로도 피지배계급으로도 완전히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지식인의 정의에 부합되는 세계적인 인물이 노엄 촘스키다.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힘은 언제나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대부분의 민주국가의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民主라는 말은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말이다. 그래서 지배자는 여론이외에는 그들을 지배할 수 어떤 수단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정부는 여론을 방패로 내세울 뿐이다. 이 원칙은 가장 자유롭고 민중적인 정부만이 아니라, 가장 전제적이고 가장 군사적인 정부까지 확대될 수 있다. 촘스키는 많은 집단들이 부와 권력을 극대화하는 데 힘쓰고, 반인간적이며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약탈적 자본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어떤 형태의 집단이나 조직보다 개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개인이 그런 우월성을 포기하도록 끊임없이 기만책을 획책한다고 생각한다.
 
민중이 그들의 운명과 직접 관련된 일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사람들을 촘스키는 ‘전문가계급’이라 부른다.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등에 관련된 모든 것을 분석하고 실행하며 의사결정을 내리고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보통사람들은 텔레비전 앞에 멍청히 앉아 삶의 유일한 가치는 ‘더 많은 더 좋은 편의품을 마련해서 텔레비전에 비치는 부유한 중산층이 살아가는 것’이란 메시지를 머릿속에 주입시킨다. 미국이 대표적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는 ‘보통 사람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보다 필연적 환상과 감상적인 단순화를 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폭력으로는 안된다. 프로파간다 propaganda가 최선이다. (프로파간다란 일정한 의도를 갖고 여론을 조작하여 사람들이 판단이나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전체주의 체제는 몽둥이가 있듯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프로파간다가 있어야 한다. 여론조작이다. 지배계급은 프로파간다 모델을 이용해서 여론을 조작하며 지배관계를 재확인한다. 프로파간다 모델은 뉴스범위를 조절하는 뉴스필터로 구성된다. 허만과 촘스키 교수가 제시한 4가지 뉴스필터는 다음과 같다.
필터 1: 매스미디어의 규모와 소유권 그리고 이익의 추구
매스미디어기업의 존재 이유도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이윤추구다. 미디어 소유권은 소수 거대기업에 집중되어 있다. 소수의 미디어가 광범위한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최고의 권위를 누리고 있다. 그들이 커다란 틀을 결정하고 군소미디어기업은 그 틀 안에서 운영될 뿐이다. 대형미디어 기업이 군소미디어 기업에 대부분의 뉴스를 제공해준다. 군소기업이 그러한 틀에서 벗어나려 애쓰더라도 오랫동안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기존의 틀은 확실한 권력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도 소수 포탈을 통해야 가능하다. 포탈 사이트도 대형미디어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 삶에서 피상적인 것, 유행을 쫓는 소비에 관심을 기울이고 조작된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만족하도록 만들고 싶어 한다.
필터2: 광고
대형미디어 주된 수입원은 광고다. 미디어는 ‘독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책임도 있지만, 광고주 비위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광고가 뉴스를 왜곡시킬 수 있다. 노동자계급을 주된 독자층을 겨냥한 미디어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에게 등을 돌리고 싶은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필터3. 매스미디어 뉴스의 출처
세 번째 필터는 정부가 기업 그리고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를 믿게 만드는 집단이다. 정부나 의회 혹은 대기업에서 제공하는 뉴스는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전문가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부관리나 보수적인 싱크탱크의 역할을 한다.
필터 4. 플랙(Flak), 협박하는 사람들
미디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뉴스를 그들 입맛에 맞게 요리하려는 목적으로 기업이 사용하는 모든 수단을 '플랙'이라고 한다. 미디어를 훈련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플랙이다. 플랙의 주장을 확산시킬 목적으로 결성된 조직들도 있다. 그들은 대기업 자금 지원을 받고 있어 대기업이 정책에 동조하라며 미디어에 압력을 가한다.
광고는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광고 탄생 후 줄곧 대중의 정신을 통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춤스키는 대중정신을 통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소개한다. 텔레비전 황금시간에 맞추어 사건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뉴스가 관심을 가져야 할 방향까지도 정부가 조종할 수 있다. 여론조작에서 연구된 사례는 ‘가치 있는 희생자’와 ‘무가치한 희생자’였다. ‘무가치한 희생자’는 미국정부와 미국 종속국가들에 의해 학대당한 사람을 뜻하는 반면 ‘가치 있는 희생자’는 적국에서 학대당한 사람이다. 공산주의 세계가 붕괴되기 이전 적국은 공산주의국가였다. 오늘날 미국 적국은 ‘불량국가’다. 미국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국가들이다.
 
촘스키는 미국 정책입안자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미국 요구에 종속되고, 정치적인 면에서도 미국 요구에 종속되어 미국 영향권 내에 있는 세계질서를 구축하려 한다’라고 했다. ‘국제공동원칙과 가치를 무시하는 국가가 있다면 주권보호에 연연치 않고,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다’고 보는 생각으로 세르비아에 개입한 것은 비도덕적이고 부당한 짓이다. 밀로세비치의 살상은 사실이라고 보기보다 적의 야만적 행위를 병적으로 과장하는 프로파간다의 전형적 수법이다. 1990년대 들어서면 불량국가는 국제규범을 지키지 않는 나라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미국은 자국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국제법을 위반할 수 있는 나라다. 미국이 불량국가로 지정하는 나라는 시시때때로 달라진다. 특정한 때에 미국의 입맛대로 행동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불량국가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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