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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퀘스천 (줄리언 바지니 지음, 문

카르페 디엠(carpe diem)

우리는 필멸하며 현재에 발목이 잡혀있고 어느 순간이든 죽을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가 가진 순간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전부이다. 오늘을 붙잡으라 ‘카르페 디엠’.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의 핵심에 있는 진실 하나는 경험과 순간이 최고의 가치이며, 소중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관념이다. 술집 철학자들의 카르페디엠은 '파티를 벌이라'는 식의 단순한 쾌락주의다. 더욱이 술집에 가는 것 말고 하는 일이 없다보니, 세상이 주는 다양한 쾌락을 경험하지 못한다. 쾌락주의자들은 선호하는 경향이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성적 쾌락을 , 어떤 사람은 좋은 음식을, 어떤 사람은 마약이 주는 쾌락을 추구한다. 음악이나 여행,예술처럼 육체적 감각에 덜 의존하는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미적 삶이 반드시 쾌락주의적일 필요는 없지만 쾌락주의는 심미적인 것의 부분집합이므로 그 둘은 기본 특성을 공유한다. 앨러스테어 해네이는 심미적인 삶을 즉시성에 전념하거나 사로잡힌 삶이라고 묘사한다. 현재만이 진정 중요하고 현실성이 있는 유일한 때다. 쾌락주의 역시 오로지 현재속에서만 존재하고 순간의 즉시성속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쾌락의 순간에 관심이 있다.

 

쾌락주의자들은 매일 아침 살아있음을 깨닫고 인생을 살 가치가 있도록 만들기 위해, 새로운 즉시적인 쾌락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쾌락의 삶은 일종의 고역이 된다. 마음껏 즐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순간들은 즐겁지 않으면 무가치해진다. 이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라도 만족을 얻을 수는 없다. 플라톤은 '고통과 쾌락은 모두 균형이 깨어져서 생기는 몸의 증상이므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똑같이 반대쪽으로도 쏠릴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처음의 쏠림을 상쇄한다는 것이다. 가령 술에 취해 느끼는 쾌락은 숙취로 대가를 치러는 셈이고, 병에 걸려 받는 고통은 몸이 회복되면서 쾌락으로 마무리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한 통찰은 '쾌락이 우리를 지배하게 두어서는 안된다' 점이다. 우리가 쾌락을 지배해야 한다. 쾌락이 우리를 끌고가게 내버려두면, 결국 쾌락의 유혹에 저항하지 못해 자신을 해치게 된다.

 

쾌락의 순간은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귀중하다. 우리는 그 순간을 더 오래 지속시킬 수 없다. 이것이 후회의 원인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이 쾌락 뿐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후회 뿐이고, 인생은 결국 정말로 소중한 것 하나 소유할 수 없는 슬픈 비극이 되고 만다. 카르페 디엠(오늘을 붙잡으라)라는 문구는 호라티우스의 ‘송시’에 그 기원을 둔다. 호라티우스는 '인생은 짧다. 희망을 크게 가지지 말라'고 했다. 희망을 품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는 말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애쓰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색하는 미래가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생각에 속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희망이 인생보다 길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계획을 가지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자기역량의 한계와 무엇보다도 자신의 필멸성을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이 생각은 '오늘을 붙잡으라'는 명령으로 이어진다. 호라티우스는 내일을 아예 믿지 말라고는 하지 않는다. '최소한만' 이라고 말한다. 오늘을 최대한 활용하는 까닭은, 인생은 짧으며 오늘은 우리가 가진 유일한 것이고, 내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성취할 수 있는 것만큼만 우리 희망을 제한해야 하고, 수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관계, 창의성, 배움, 심미적 경험, 음식, 섹스, 여행 등 우리가 인생에서 가치를 두는 것이 무엇이든 오늘을 붙잡으라는 말은 할 수 있는 동안 그것을 향유하라는 말이지, 언제까지고 옆으로 치워두라는 뜻이 아니다. 카르페 디엠의 진정한 정신은 공황에 빠져 내일이 없는 것처럼, 지금 당장 모든 것을 경험하려 덤비는게 아니라 모든 하루하루가 중요함을 확신하는데 있다. 오로지 순간만을 위해 살고 내일과 어제를 잊는 것은 만족의 비결이 아니다. 쾌락이란 왔다가도 가는 것이고 결코 오지 않을거라 상상하는 내일은 거의 언제나 찾아온다. 순수한 쾌락주의는 우리를 공허속에 남겨두고 끊임없이 더많은 쾌락을 갈구하게 만들고, 결코 충분하게 채워지지 못할 운명으로 만든다. 광고와 잡지를 지배하고 있는 쾌락 숭배에 맞서야 한다. 광고와 잡지는 근사한 외식, 휴식, 진미가 차려진 저녁 파티로 삶을 채우면,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에 충분한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하는 듯하다. 오늘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오직 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고작 쾌락에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오늘 할 일을 미루지 않고 오늘 할 때 오늘을 붙잡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허하거나 가치 없는 것을 붙잡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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