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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퀘스천 (줄리언 바지니 지음, 문

행복하기만 하다면

행복하기만 하다면, 아이가 커서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다. 이 말은 보통 진심이지만, 자식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우리 대다수에게 행복이 인생의 전부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암묵적인 이해가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또한 행복은 규정하기 어렵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도 보여준다. 아이가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부모라도 아이의 행복이 스트리퍼나, 마약상, 사채업자로서 일한다면 불안해진다. 행복은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행복은 가질 가치가 있지만 소유하기 어렵다. 좋은 음식을 먹는 쾌락은 식사를 하는 동안만 지속되지만, 만족해하는 사람의 행복은 평온한 순간 속에 지속된다. 쾌락이 전경을 차지한 흘러가는 잠깐 동안의 경험이라면, 행복이란 좀 더 배경같은 상태이다. 행복이란 언제나 그 자체를 위해서만 선택되며, 그 밖의 다른 이유로는 결코 선택되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한편으로 행복이 가치 있는 삶의 목표라는 것,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무엇이라는게 분명한듯 보이지만, 다른 한편 행복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복을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자명함과 난해함이 섞이는 이유는 행복이란 말이 명확한 의미나 지시 대상을 가진 단어가 아니라, 일종의 모호한 지칭이어기 때문인 듯하다. 행복이란 인간에게 지속적인 만족을 주는 상태이고, 그 자체로 선한 것이다. 정의상 불특정적이다,

 

인간은 더 낮은 요구만을 추구하면서도 만족하며 살 수 있지만, 전적으로 그렇게만 사는 삶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될 수 없다. 축구 매니아들은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을 두고, 그들이 왜 그런지 이해를 못한다고 한다. 지적 자극이 없는 행복은 믿을 수 없다는 지식인들도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실제로 행복에 대한 심리학 연구를 보면, 만족의 열쇠는 안정되고 애정있는 관계, 심신의 건강, 그리고 일정 수준의 재정적 안정성에 있음이 나타난다. 인간의 가장 고등능력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인간의 진보된 지능은 복잡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더불어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 다. 그러나 우리는 지능과 언어를 이론화하거나, 읽는 것 이상의 일을 하기 위해 사용한다. 사랑이 깃든 관계 또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능력, 느끼는 대로 행동하기보다는 옳다고 판단하는 것을 실행하는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 행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지적인 행동이 필요한지는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보다는 개인의 성향 문제이다.

 

그러므로 판단의 기초를 우리의 세계관에 둔 채, 어떤 종류의 행복이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행복에 다양한 강도와 다양한 질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살 것인지 선택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가지 방향을 정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방향은 정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가상으로 좋은 인생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좋은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 경험기계 안에서 살 기회를 거부할 때, 우리가 행복보다 우위에 놓는 것은 무엇인가? 현혹되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일이고, 자기 삶의 저자가 되는 일이고, 자기의 성취가 자신의 진정한 노력과 능력의 결과이기를 바라는 일이고,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다.  마약 중독자들은 마약을 주기적으로 복용하며 행복을 유지한다. 마약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대신 장밋빛 색안경에 비친 세상을 보여준다. 이렇게 얻은 행복은 자기의 노력과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생화학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세계에서 고문을 당해야 한다면, 경험기계 안의 세계를 선택할 것이다. 먹을 것도 잘 곳도 없이 가장 기본적인 필요가 채워지지 못할 때,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은 분명 훨씬 덜 중요해질 것이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에게는 자기 운명의 저자가 되는 게 우선 순위가 아니다. 그 사람은 밥을 원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 만큼 행복에 대한 약속은 대단한데 반해, 현실은 너무나 실망스러운 시대는 없었다. 소비지상주의와 광고 및 미디어 권력은, 행복이 우리 손이 미치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도록 조장한다. 현실과 우리가 열망하는 것 사이의 불일치는 우리가 더 행복해 지는 것을 막는다. 핵심은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이 따라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행복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치 있는 삶을 살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행복을 취하는 편이 더 낫다. 살다보면 불운은 찾아오기 마련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험난한 시절이 닥쳤을 때 헤쳐나갈 수 있는 태도와 인생관을 갖는 게 전부이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지속되는 행복은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조지 버나드쇼는 '평생동안 행복이라니! 아무도 그런 것은 견딜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픽토테스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어떤 일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라고 주장했다. 행복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으면, 다른 사람들이 타당하게 바라는 것이상을 가져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우리는 인생에서 당연하게 여길 수 없는 것들을 거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잊었고, 갖지 못하는 것을 원망할 줄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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