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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퀘스천 (줄리언 바지니 지음, 문

승리자 되기

바이올리니스트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연주 또는 레슨으로 생계를 꾸릴 정도가 되길 바라거나,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되기를 바라거나,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 등을 원한다면 이 사람은 상대적 목표를 세운 것이다.  이때 성공은 얼마나 성공한 바이올리니스트인가에 대한 절대적 척도가 아니라, 자신이 할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기대하는 바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의된다. 상대적 성공이든, 절대적 성공이든 성공을 보는 두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어떤 것을 해냈음을 중시한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기행위의 총합이며, 자신의 삶 자체이다' 라고 말했다. 다른 시각에서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성취를 이룬다. 수석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환희하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류 연주자가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되는 과정 자체, 즉 자아의 잠재력을 최대한 펼치고 있다는 점이지 그에 따르는 직위가 아니다.

 

실행만이 중요한 것도 아니며, 특정 종류의 사람이 되는 것만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실행을 통해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소중한 사람들이 자기 가치를 알아주고 높이 평가해 주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성공 역시 매우 중요한 성공이다. 성공이 예술적 성공이나 직업적 성공만을 말하는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된다. 상대적 성공과 절대적 성공 사이에는 자신에게 맞는 기준을 설정하느냐 아니면, 무엇을 하든 최고가 되기 위해 분투하느냐 하는 차이가 있다. 어떤 일을 해냄으로써 달성하는 성공과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됨으로써 달성되는 성공이 다르다. 양쪽 요소를 결합한 관점도 있다. 심리학자들이 관찰했듯 자존감은 주로 자기를 동료들과 비교하는 데서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보지 않고, 자기보다 잘나가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몇몇 천재들만 유의미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천재들 말고는 의미있는 인생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평범한 삶과 비범한 삶을 혼돈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제각각 다른 능력이 있으며, 성공이란 단지 아이들이 최선을 다해 그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다성공을 모든 사람이 성취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 성공은 무의미해진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나면, 인생에 어떤 의미가 남을 것인가. 위대한 배우로 인정받지 못하고, 비중 없는 배역을 맡으면서도 연기로 먹고살기 위해 투쟁을 하는 중이라는 면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늘 꿈꾸던 배우가 되는 데는 성공했다. 중요한 것은 명예와 영광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모습 즉 배우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현은 결코 끝날 수 없는 과정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실현과정이 계속되어야 한다. 절대적인 성공만이 인생을 유의미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적인 성공이든 절대적인 성공이든 일정 수준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 단순히 어떤 행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일반적으로 인생에 의미를 주기에 충분하지 않다. 성취는 이루고 나면 지나가는 것인데 만약 우리가 사는 목적이 성취를 이루는 것이라면, 그걸 달성하고 난 다음 무엇이 남겠는가?

 

사람들은 여전히 하루하루 목적있게 살기 위해 무언가 할 필요를 느낀다.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성공에 대한 가장 타당한 인식은 우리는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되는데 성공할 수 있으며, 실행을 통해서만 이를 이룰 있다는 인식이다. 이런 종류의 성공은 성취의 결과라기보다 과정이다.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면 인생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여기에서 핵심은 우리 자신이 자기 존재의 저자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성공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인 관념은 일과 예술은 물론이고, 인생과 사랑에까지 적용 못할 곳이 없다. 각자가 자기 삶에 내리는 판단은 무엇을 해냈는가에 못지않게, 궁극적으로는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있다. 우리는 오직 실행을 통해서만 실현하며, 이때 어떤 실행은 눈에 보이는 성취로 이어진다. 예외적인 소수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공을 들여야 한다. 세간의 인정은 가시적 성공의 필요조건이지만, 그것이 성공을 가치있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외부적인 성과를 이뤘다면, 매우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다. 부분적으로는 자신의 실현이 외부의 검증과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필요없이 우리가 무엇인지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배우는게 현명하다.

 

자유의지는 보통 행동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선택을 하는 능력이라고 생각된다. 이를테면 홍차나 커피를 권유 받았을 때,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것은 둘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우리는 모든 물리적 사건에는 물리적 원인이 있는 우주에 살고 있다. '물리영역의 인과적 폐쇄성'이라고 알려진 원칙이 있다. 이는 물리세계 안에 있는 만물은 오로지 물리적 사건만을 원인으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그 원인이 전적으로 물리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리적 인과관계는 결정론적이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위한 자리는 없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를 행사한 결과가 아니라, 그에 앞선 물리적인 사건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된 것이 된다. 모든 사건이 선행하는 원인에 수반된다는 형이상학적 주장에서부터 인간의 통상적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결론으로 비약되어서는 안된다는 점만은 지적해야겠다. 자유의지는 의사결정 과정이 방해받지 않고 작동하는 것이지, 이 과정 자체가 정상적인 인과법측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관점은 아니다. 형이상학자들이 자유의지에 관해 뭐라고 말하든, 우리는 세상을 선택과 딜레마가 있는 곳으로 경험해야하며, 곰곰이 생각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로서 선택하고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

 

서점의 자기계발 코너 서가를 가득 채운 책들과 어떻게 해서든 '자기자신을 향상'하라는 현대의 집착은 위험할 만큼 가깝다. 자기계발류의 책들이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비생산적인 방향으로 돌린다. 이런 책들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인생은 필연적으로 어려운 결정과 타협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위대한 탐험가인 동시에 이상적인 부모가 될 수는 없다. 이런 책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약속하며 그것을 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동시에 이 책들의 다양한 메뉴, 온갖 종류의 방식으로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약속 때문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진정한 성공이 불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 책들은 결핍감을 조장하며, 더 나쁜 점은 파트너가 이미 충분히 훌륭한 데도 '조금 더 괜찬아질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자기자신 탓이며, 이 모든 것을 얻는데 방해되는 것은 자기자신말고는 없다고 부추긴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갸 아니라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 건강과 경력과 인간관계에서 실패하는 것은우리가 자기계발책들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형편없는 인간이어서가 아니다. 그런 일들은 대개 그냥 일어날 뿐이다무엇인가 더 실현해야하고 더 성취해야만 한다는 생각하고, 행복한 가정을 가꾸든 자신의 열정을 쫓으며 살든, 어떤 종류의 인정을 받든 상관없이 성공한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존재의 저자로 살고싶다면 3주안에 군살을 빼야 한다거나, 6개월안에 승진해야 한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자기계발로 해석될 수 있는 충고를 무조건 거부할 일은 아니지만, 우리 스스로 의제를 정하고 자기자신에게 성공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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