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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퀘스천 (줄리언 바지니 지음, 문

이성이 전혀 알지 못하는

직관, 계시, 미신에 호소하지 않고 이성에 근거한 논증을 따른다는 점에서 합리주의적이며, 인간의 삶이 스스로 가치의 원천과 기준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인본주의적이다.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자들이 우리가 스스로 의미와 목적을 창조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선택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도 주지 읺는다고 주장한다.  내 일관된 진술은 인생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야 하며, 그 가치는 그 삶을 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시도했던 일은 모든 것을 인간 지성의 범위안으로 편입하고, 어떤 의미로든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들은 거부하는 방식이었다. 인생이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꼬여 돌아가며, 우리는 종종 자기자신 조차 신비하기 때문이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기 위해, 우리가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님에 감사하기 위해, 반드시 신을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신비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것은 신이나 내세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그런 것들은 필멸하는 인간보다 더 큰 존재라는 등 매우 모호한 생각이다. 니는 이런 종류의 신비를 옹호하고자 하는 욕망의 배후에는 일종의 두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이나 내세, 영혼 우리가 가지지 못한 다른 가치들에 의지할 수 없다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삶을 스스로 만들어아야 하는 책임을 져야한다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을 느낀다면 우리는 그것에 맞서 싸워 극복해야 한다. 우리는 현세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반드시 우리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쾌락과 세속적인 성공이 충만한 삶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에 직면하고, 책임을 진다.

 

이성 자체는 인간은 물론 다른 어떤 것을 위해 선한 방향으로 기울어지지 않는다. 이를 흄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 내 손가락에 생채기가 나느니 세상 전체가 파괴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은 이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욕구는 이성에 뿌리를 두지 않는다. 삶을 진실하게 살 책임과 그에 따르는 어려움이 타인과의 밀접한 관계에서 보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은 없다. 일상에서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철학은 이성적이고 통제 가능한 것, 선택의 대상인 것, 그리고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것들을 성찰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이다. 사랑은 반이성적이기는 해도 이성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인생을 이해하고 삶의 주인이 되는데 드러나는 인간능력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사랑은 삶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것이지만, 깨지기 쉽고 불확실한 것이기도 하다. 사랑은 넘치는 기쁨과 환희의 원천이지만, 위험과 실망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초월론자들은 더 상위의 법칙과 명령에 따라는 것이 인생에서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인생의 의미라는 모호하고 신비로운 질문을 무엇이 인생에 목적과 가치를 주는가라는 더 구체적이고 전혀 신비롭지 않은 질문들로 환원하여 삶의 의미에 대해 거품을 뺀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내가 제시한 설명에 특별한 것이 없다. 그러나 결론이 단순하다고 해서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삶의 의미가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견해에 도전하는 것은 특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셈이다. 진실성과 행복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 조화를 이룬 삶일 때,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현재에 충실한 삶일 때,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끝없기 노력하고 그런 면에서 성공을 거둔 삶일 때, 더욱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란 간단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어떤 사람은 고독을 사랑한다. 아떤 사람은 강렬한 경험, 스릴을 찾아다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조용한 삶을 선호하며, 그러한 긴장이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정신적인 삶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댄스음악의 격렬한 비트를 느끼기 위해 살며, 어떤 사람은 두가지 욕구를 다 강하게 느낀다. 주변을 둘러보면 유의미한 삶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충족되지 않을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도 인생의 쾌락을 음미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잡아둘 수 없는 순간을 붙잡아두려고 몸부림치지 않고서도 오늘을 붙잡는 일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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