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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시간에 세계사 공부하기 (김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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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왜 통일되어야 할까? 북한 현대사와 세계 사회주의 체제김일성은 북한을 세우고 약 50년간 북한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북한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현대사의 유일무이한 인물 김일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 김일성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을 무렵 평안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만주로 건너가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무장투쟁을 했다고 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그는 소련군과 함께 북한에 들어왔다. 소련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잡은 그는 북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공장 등의 생산수단을 국가소유로 했고, 지주의 토지를 빼앗아 토지가 없는 농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1950년 남북한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다. 북한 인민군이 남침을 개시함으로써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김일성의 큰 잘못이었다..
한강의 기적과 세계 경제 한강의 기적과 세계 경제1964년 한일협정 당시 대통령은 박정희였다. 1961년 총과 탱크를 앞세운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사람이다. 그는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을 경제를 부흥시켜 만화하려 했다.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대신 경제를 성장시킴으로써 국민들의 불만을 없애려고 한 것이다.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공장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는 가난해서 돈이 없었다. 가난한 나라니까 다른 나라들도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이런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박정희 정부가 들고 나온 정책이 바로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였다. 만일 일본과 국교를 수립한다면 식민지지배에 대한 보상금으로 일본에서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반대했다. 왜냐하면 일본이 식민지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았기 ..
반공기지가 된 남한 6.25 전쟁의 미군과 중국군 6.25전쟁은 1950년 새벽에 시작되었다. 북한의 인민군이 남쪽으로 탱크로 밀고 내려오면서 전면전이 벌어진 것이다. 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난 것일까? 분단된 나라를 북한 중심으로 통일하여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대전으로 도망갔다. 이승만은 자기는 도망가면서 서울 시민에게는 국군이 잘 싸우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인민군이 서울에 나타나자 그제서야 서울 시민은 피난길에 올라 한강을 건너려 했다. 이때 국군이 한강다리를 폭파했다. 미군이 주도한 유엔군이 참전을 결정했고, 이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국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인민군을 북한과 중국의 국경까지 밀어붙이자,..
한반도의 남북 분단과 세계의 동서 냉전 일제로부터 해방된 우리 민족은 이제 우리 손으로 정부를 수립하여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것이 순진한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우리에게 미처 생각하지 못한 크나큰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방은 우리 손이 아닌 연합군 덕으로 이루어졌고 이후 우리 민족의 운명은 연합국의 결정에 따라 정해졌다. 그러나 해방이후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려면 먼저 당시 연합국의 우두머리인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해방 직후 미군은 남한 땅에 진주해서 중앙청에 걸려 있던 일장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게양했다. 같은 시기 소련은 평양에 진주하여 자기네 국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아니 왜 우리 땅에 외국군대가 그것도 두 나라의 군..
우리나라를 만들어 갈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다. 한국의 신간회와 중국의 국-공 합작 사회주의자는 자본주의를 뒤집어엎으려는 사람들이었다. 민족주의자는 사회주의를 제거하고 자본주의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었다. 1919년의 3.1운동은 온 민족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나로 단결하여 일제에 반대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3.1운동이 끝나고 민족운동은 분열의 시기를 맞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세력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3.1운동전까지 독립운동을 이끌어온 세력은 민족주의자들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는 민족주의자 외에 다른 세력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세력이 등장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제국주의란 자본주의의 발전된 형태였다. 그러므로 사회주의는 제국주의를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에 고..
동학농민운동과 프랑스혁명 동학농민운동과 프랑스혁명 경상도 경주의 몰락한 양반 중 최제우는 1860년에 동학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 동학이란 서양학문인 서학에 반대하는 목적을 담고 있었다. 서학은 천주교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학은 서양세력의 동양침략에 반대했다. 또한 동학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평등사상에는 조선의 신분제를 부정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조선 정부는 조선 사회 근본틀인 신분제를 부정한다는 이유로 동학을 금지했다. 또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백성을 속인다는 죄목으로 그를 사형에 처했다. 신분제 때문에 고통 받고 있던 백성들은 동학에 빠졌다. 서양세력의 침략과 신분제 때문에 이중으로 고통 받던 농민들이 동학에서 희망을 찾은 것이다. 동학 농민군은 나쁜 관리를 제거할 것, 신분제를 폐지할 것..
조선, 중국, 일본의 개항 조선, 중국, 일본의 개항  1863년 조선에서 고종이 임금 자리에 오르면서 그동안 일부 가문이 나랏일을 좌우하는 세도정치가 끝났다. 그러나 고종은 왕 노릇하기에는 아직 어려서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모든 나랏일을 맡아보았다. 선진 자본주의 열강 가운데 프랑스가 조선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1866년 조선 정부가 프랑스 신부 9명과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사건이 그 구실이었다. 다음 차례는 미국이었다. 미국의 아시아 함대 사령관 로저스 제독이 콜로라도호를 앞세우고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났다. 미국에게도 핑계는 있었다. 병인양요가 일어났던 1866년 대동강에서는 제너럴 셔먼호가 행패를 부리다가 불에 탔다. 미국은 이를 트집 잡아서 1871년에 강화도를 공격했다. 외국군대를 두 번이나 물리친 조선은 축..
제후국 조선과 황제국 명明 제후국 조선과 황제국 명明  조선은 이성계가 세운 나라다. 고려 말,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신진사대부의 혁명파와 손을 잡았다. 조선왕조의 설계자라고 불리는 정도전과 권근이 혁명파의 대표인물이었다. 고려시대가 끝나고 조선이 탄생할 무렵, 중국에서는 몽고족의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등장했으나 조선과 명나라는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조선이 요동을 정벌하려했기 때문이다. 요동을 정발하자는 주장은 고려 말, 명나라가 철령 부근을 자기네 땅이라고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철령부근은 원나라가 빼앗아 간 것을 고려 말에 되찾은 것인데 명나라 내놓으라고 하자 이성계에게 요동을 정벌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성계는 압록강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와 우왕과 최영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