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과 프랑스혁명
경상도 경주의 몰락한 양반 중 최제우는 1860년에 동학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 동학이란 서양학문인 서학에 반대하는 목적을 담고 있었다. 서학은 천주교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학은 서양세력의 동양침략에 반대했다. 또한 동학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평등사상에는 조선의 신분제를 부정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조선 정부는 조선 사회 근본틀인 신분제를 부정한다는 이유로 동학을 금지했다. 또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백성을 속인다는 죄목으로 그를 사형에 처했다. 신분제 때문에 고통 받고 있던 백성들은 동학에 빠졌다. 서양세력의 침략과 신분제 때문에 이중으로 고통 받던 농민들이 동학에서 희망을 찾은 것이다. 동학 농민군은 나쁜 관리를 제거할 것, 신분제를 폐지할 것, 일본인과 내통자를 처벌할 것을 주장했다.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은 신분제 철폐였다. 농민들은 신분제 때문에 조선시대 내내 양반관리들에게 시달렸던 것이다. 신분제 폐지는 새로운 근대사회는 만드는데 가장 먼저 필요한 개혁이기도 했다. 양반들 때문에 겪은 고통 때문에 화가 난 농민군을 관군은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정부는 심하게 썩어 있었기 때문에 반란을 진압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조선정부는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왔다. 그러자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청나라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일본군이 조선에 상륙했다. 두 나라 군대는 조선 땅에서 전쟁을 벌였다. 일본은 전쟁 와중에도 우리나라 내정에 간섭하자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다시 전쟁을 벌여 나갔다. 동학농민군은 용감히 싸웠지만 일본군과 관군 연합군에 패배했다. 그런데 일본군은 동학농민군을 무찌른 뒤에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조선에 머물기 위한 구실로 우리에게 개혁을 강요했다. 그 결과 조선정부는 신분제를 폐지하는 등 근대적인 개혁을 실시했다. 이를 갑오개혁이라고 한다. 동학농민군이 목숨을 내놓으며 부르짖어도 끄떡없던 신분제가 외세의 간섭으로 폐지된 셈이다. 동학농민군이 꿈꾸던 신분제 폐지는 실현되었으나 조선은 점점 더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방향으로 떠밀려가고 있었다.
동학농민운동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 역시 신분제였다. 혁명전 프랑스 사회는 신분제가 유지된 사회였다. 이 사회의 지배층은 제1신분인 성직자와 제2 신분인 귀족이었다. 이 두 신분은 전체 인구의 2%밖에 되지 않는데도 토지를 무려 54%나 소유하고 있었다. 성직자와 귀족은 모든 관직을 독점하고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반면 제 3의 신분이라는 98%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농노였다. 이들은 이사도 마음대로 못하고 거의 노예처럼 살고 있었다. 농노 중에는 귀족 영주가 지배하는 장원을 벗어나서 자유를 찾아 도시로 도망친 사람들도 많았다. 도망에 성공한 농노들은 도시민이 되었다. 그들은 주로 상업과 공업에 종사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경제적으로 힘을 키운 이들을 부르주아지라고 불렀다. 이들은 자신들만 세금을 내는 세상, 자신들을 차별하는 세상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부르주아지는 자기들과 비슷하게 차별받고 있던 제3신분은 힘을 모아 신분제를 폐지하는 혁명에 성공했다. 혁명이 성공한 뒤에 권력을 잡은 부르주아지는 국가에 세금을 내는 부자들에게만 투표권을 주었다.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도 투표권을 얻지 못했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고 약속했지만 권력을 잡고 나서는 힘없는 사람들을 배신하고 자기들만 잘 사는 사회를 만들었다.
배신당한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여성들은 투쟁에 나섰다. 힘들고 긴 투쟁 끝에 이들의 노력은 열매를 맺었다. 1928년 영국에서 일정 연령에 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보통 선거가 실시되면서 모두가 투표권을 갖는 평등한 세상이 시작되었다. 중세 봉건제에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신분제가 폐지되어야 했다. 똑같은 인간인데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 되고 누구는 노예가 될 수는 없었다. 불평등을 없애고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했다. 조선에서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신분제를 폐지하기 위해 싸웠다. 썩어빠진 조선정부는 성난 농민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군이 들어와 농민군을 진압했다. 결국 신분제 폐지는 우리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일본의 간섭을 받아 겨우 이루어졌다. 신분제를 없애고 근대사회로 나아간 과정이 달랐던 만큼 조선과 프랑스는 극단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조선은 근대화 과정에 간섭한 일본의 뜻에 따라 일본의 식민지가 된 반면 프랑스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 발돋움했다. 아무리 좋은 개혁이나 혁명도 스스로 이루지 못하고 남의 힘을 빌리면, 결국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그 영향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3.1운동과 인도의 비폭력저항
갑신정변, 동학 농민운동 등 자주적 근대국가를 건설하려는 숱한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조선은 점점 힘이 빠졌다. 1897년 고종은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자리에 올라 국가 차원에서 근대화를 주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일본은 날카로운 침략의 이빨을 드러내고 고종을 꼼짝 못하게 압박했다. 일본은 1907년에 고종황제를 강제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군대까지 해산시켰다. 결국 1910년 우리나라는 일본에 주권을 완전히 빼앗고 말았다. 3.1운동이 일어날 때까지 10년 동안 일제는 우리 민족을 무척 괴롭혔다. 이 시기에 보통 경찰이 라니라 헌병 경찰이 질서를 유지했다. 헌병경찰은 군인들의 경찰이다. 일제는 민간인을 군인처럼 강압적으로 다스린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도 없었다. 그리고 죄인에게 매질하는 법이 다시 생겨났다.
일제의 수탈도 가혹했다. 일제는 토지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토지를 빼앗았다. 또 회사령이라는 법을 만들어 조선인이 회사를 세우기 힘들게 했다. 이밖에도 산림, 어업, 광업에 관한 법령을 만들어 우리의 자원을 수탈해 갔다. 이 같은 무단정치 아래에서 10년간 숨죽여 지내던 우리 민족은 드디어 1919년 3월1일 독립을 요구하며 만세를 불었다.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탑골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온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우리 민족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국가이기 때문이었다.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는 독일 같은 패전국이 점령한 식민지에게만 적용되었다. 그러나 3.1운동은 일본과 우리민족 모두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먼저 일본은 3.1운동에 놀라 이전의 무단 통치를 부드럽게 바꾸었다.
산업혁명이후 기계로 옷을 생산하자 싼값에 엄청나게 많은 옷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옷의 원료인 솜과 양털이 부족해졌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원료를 구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로 눈길을 돌렸다. 또한 기계가 대량으로 생산한 물건을 그 나라 국민이 전부 소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남는 물건을 팔기위해 다른 나라의 소비자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조선이 그랬듯이 아직 자본주의 사회가 되지 않은 나라들은 선진국과 상품이나 원료를 사고파는 것을 싫어했다. 선진국들은 후진국을 강제로 굴복시키려 했다. 그 결과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가 생겨났다. 제국주의의 국가는 식민지의 원료를 약탈하고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식민지에 판매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에 성공하여 제국주의 국가가 된 선진국이 영국과 프랑스였다. 두 나라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라는 거대한 땅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고 그곳 국민들을 노예처럼 부렸다. 영국은 아시아에서 간디의 조국인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프랑스는 인도와 중국의 중간 지대인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오늘날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이 모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다음으로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이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했다. 후발 주자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를 거의 다 차지한 다음 식민지를 얻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들은 식민지를 확보하기위해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그 이후 다시 독일에 일본과 이탈리아가 합세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것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은 식민지 쟁탈전에 늦게 뛰어든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미미 많은 식민지를 차지한 영국, 프랑스를 상대로 벌인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인도에서는 영국의 식민지지배를 맞선 반제국주의 투쟁이 일어났다. 바로 간디가 그 지도자였다. 간디는 이 싸움에서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간디는 폭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인도인의 저항을 한데 모았다. 불복종 운동을 벌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남의 나라를 힘으로 굴복시키고 착취하고 억압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배에 맞서 유관순과 간디는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러한 사람들의 투쟁 덕분에 우리는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침략국가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용기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사 시간에 세계사 공부하기 (김정 지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반도의 남북 분단과 세계의 동서 냉전 (0) | 2024.09.08 |
---|---|
우리나라를 만들어 갈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다. (1) | 2024.09.07 |
조선, 중국, 일본의 개항 (0) | 2024.08.22 |
제후국 조선과 황제국 명明 (0) | 2024.08.18 |
무신정권과 세계의 무사들 (0) | 2024.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