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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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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연속적이어야 한다. 기도는 욕구의 표현이다. 욕구를 없애면 기도는 멈춘다. 욕구를 바꾸면 기도는 변한다. 아무 말없이 유리창 너머로 상점안에 있는 장난감을 간절히 바라보다가 엄마를 보고 미소짓는 아이는 가장 감동적이 기도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기도는 욕구이고 욕구는 끊임없이 생기기기 때문에, 시종일관 계속 기도를 할 수 있듯이, 공부 또한 욕구이자 참된 것에 대한 기도이기에 공부도 시종일관 계속 할 수 있지 않을까? 지식은 우리의 지성을 활력으로 규정한다. 우리는 빵을 구하듯이 본성적으로 앎을 구한다. 세속적인 갈망에 사로잡힌 상태에 머무르는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사유하는 이들은 알려는 욕구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발전기는 터빈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터빈은 물줄기를 맞으며 돌아가야 한다. 알고자 하는 욕구..
내면의 고요함을 유지하라 사회적 교제활동을 할때에도 내적생활과 외적생활, 침묵과 말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엄밀히 말하면 지적소명과 활동은 대립한다. 사유에서 비롯하는 관조적 삶, 열망에서 비롯하는 활동적 삶은 줄곧 대비 되어왔다. 관조는 안으로 거둬들이고, 활동은 밖으로 내보낸다. 관조하는 이는 빛을 찾고 활동하는 이는 자기가 가진 것을 다른 이들에게 주려 한다. 의식의 규제를받는 활동은 다시 의식으로 하여금 진리의 규칙을 따르게 하고, 적절한 때에 묵상하게 하고, 진리의 근원이기도 한 섭리와 하나가 되게 한다. 사유하는 이는 언제나 시간과 정신의 일부를 활동적 삶을 위해 떼어두어야 한다. 예술가는 전시회를 열고, 모임에 참여하고, 여행을 가고 강연을 한다. 고요는 영혼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반면, 외적활동..
현실 감각을 유지하라. 우리는 무작정 고독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형제들과의 교류와 공감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보상을 받는다. 우리의 권리인 은거생활은 반드시 빛나는 고독이어야 한다. 현명하게 선택한 동료들과의 교제를 통해 우리가 은거생활에서 추구하는 더 고차원적인 접촉이 가능해지다면 은거생활이 훨씬 더 풍성해지고 더 많은 성과를 거두지 않을까? 개인주의와 사회적 무질서가 팽배한 이 시대에 동료의식은 얼마나 드문가? 지적 작업장이나 공동체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두 열정적이고, 근면하고, 자유롭게 단결하고, 소비하고, 평등하게 살아가고, 아무도 지배 하려 들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가 우위를 인정받더라도 그것은 집단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홀로 공부하려면 아주 강하게 단련된 영혼일 필요하다. 자기 혼자서 지성인 공..
고요하게 묵상하라 삶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다른 무엇보다 필요한 핵심적 보호장치는 우리가 안팎으로 고독해질 수 있도록 현명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이것을 아주 깊이 확신해서 지성인에 게 전하는 16가지 조언 가운데 7가지를 교제와 은거생활에 할애했다. ‘천천히 말하고 응접실에 갈 때는 천천히 가라’ ‘다른 사람의 행동은 궁금해하지 마라’ ‘모두에게 공손하라’ ‘그러나, 누구와도 친밀하게 지내지 마라. 지나친 친밀함은 경멸함을 낳고,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원인이 된다.’ ‘세상 사람들의 언행에 분주히 참견하지 마라’ ‘ 무엇보다도 무익한 외출을 피하라’ ‘ 포도주 저장고에 들어가고 싶다면, 너의 작은 방을 사랑하라’ 여기서 포도주 저장고는 영감의 안식처이자 열정, 천재성, 발명, 열성적인 탐구가 퍼져나가는 중심이며, ..
일상을 단순하게 만들어라 우리는 학문이 근언들에 대한 앎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되풀이 해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자연의 삶을 이루는 것들 즉 의존성, 영향의 전파, 연결고리 , 교환이다. 각각의 진리는 고립된 것이 아니라, 사방과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하나의 조각이다. 특정한 진리가 무대를 차지할지 모르지만, 그 너머에는 무한한 공간이 있다. 실제적인 것은 우리가 보는 영역에서만, 우리가 앎으로 분석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소한 일을 하느라 바쁠 때에도, 우리는 삶을 덧없어 보이게 하는 진리에 의존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무한한 존재와 무한한 시간에 둘러싸인 공부는 참으로 영원성에 대한 공부가 된다. 인간의 복합적 본성 때문에 순수한 사유와 가장 관련이 적은 육체적 기능까지도 정신적 기능과 분리할..
인격적 자질 고독은 활력을 불어넣지만, 고립은 우리를 무기력 하고 메마르게 만든다. 공부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 자신의 위대함,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연대감을 느끼면서 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지성인은 언제나 보편자안에서, 역사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의 실생활은 박애를 계율로 삼는 공동생활, 어마어마하게 큰 가족생활이다. 덕목으로부터 많은 것을, 모든 것을 이끌어낼 수 있다. 도덕적 질서의 최상위에 있는 덕목은 도덕적 진리, 아름다움, 조화, 통일성과 관련되어 있고, 그런 까닭에 모든 것의 제1원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겸손한 길을 더 좋아한다. 인격적 자질이야말로 다른 모든 것에 앞선다. 지적능력은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지적능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효과의 본질이 결정..
지성인은 신성한 부름을 받는다. 모든 사람은 공부할 의무가 있다. 일찍부터 고된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도 정신을 무지상태로 추락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지혜롭게 행동할 수 없다. 공부하는 삶은 금욕과 의무를 엄격하게 지킬 것을 요구한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궁핍과 오랜 훈련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더러는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끈기를 보여야 한다. 지적소명은 다른 모든 소명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본능과 능력에 이성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종의 애적 충동에 새겨져 있다. 우리의 기질은 신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화합물을 결정하는 화학적 특성과 같다. 소명은 요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명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고, 우리의 제1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선호와 자연스러운 충동이, 신이 준 재능 그리고 신의 섭리와 연..
자기완성을 위한 공부 이 책에는 아퀴나스의 ‘16가지 조언’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저술에서 제안한 정신을 수양하는 방법이 담겨있다. 빛이 간절히 필요로 할 때는 공부를 통해 빛을 얻고, 나아가 빛을 발산하기 위한 조건에 관해 자주 생각하자. 먼저 우리 자신을 비옥하게 하는 정신과 그 후에 우리 자신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정신은 동일한 정신이다. 이 경우에 사용은 오히려 우리의 저장고를 풍요롭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 질 것이므로, 각각의 과정에서 지적활동을 풍요롭게 하는 원칙들이 서로 같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저자는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신학대전으로 카톨릭 신학을 집대성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연구로 유명하다. 세르티양주는 저술에 필요한 노트를 메모지에 적어두고, 각각의 메모지에 주제에 상응하는 번호를 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