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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

현실 감각을 유지하라.

우리는 무작정 고독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형제들과의 교류와 공감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보상을 받는다. 우리의 권리인 은거생활은 반드시 빛나는 고독이어야 한다. 현명하게 선택한 동료들과의 교제를 통해 우리가 은거생활에서 추구하는 더 고차원적인 접촉이 가능해지다면 은거생활이 훨씬 더 풍성해지고 더 많은 성과를 거두지 않을까? 개인주의와 사회적 무질서가 팽배한 이 시대에 동료의식은 얼마나 드문가? 지적 작업장이나 공동체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두 열정적이고, 근면하고, 자유롭게 단결하고, 소비하고, 평등하게 살아가고, 아무도 지배 하려 들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가 우위를 인정받더라도 그것은 집단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홀로 공부하려면 아주 강하게 단련된 영혼일 필요하다. 자기 혼자서 지성인 공동체가 되는 것, 홀로 자신을 격려하고 지우너하는 것,  다수의 자극이나 불가피한 필요에서나 솟아날 법한 힘을 초라하고 고립된 개인의 의지에서 발견하는 것은 얼마나 드문 영웅적 자질인가?  열정적으로 시작하더라도 이내 어려움이 닥치고 게으름이라는 악마가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속삭인다. 우리의 멍한 감각은 쉽게 현혹된다.  어떤 경우든 설령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더라도 정신안에서 참된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모임을 찾아라. 육체는 혼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반면 정신은 혼자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의무를 경시하거나 필요를 등한시하는 것은 사상가의 고독에 포함되지 않는다. 교제는 지성인의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런 교제가 단순히 지적인 삶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는 데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적인 삶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의무와 필요를 고려하는 것은 소명의 일부이다. 프랑스 철학자 비랑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시간을 최고로 활용하는 유일한 방법이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고요하게 정신노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현재 위치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마땅히 제 역할을 수행할 때마다 우리는 삶을 선용하는 것이다’ 

 

있어야 할 곳에 있고 해야 할 일을 한다면, 관조하고픈 마음이 생길 것이다. 우리의 의무를 위해 지성을 양보하더라도 도덕적 진보가 이루어지는 경우처럼, 때로는 간접적으로 지성에 도움이 될 것이고, 때로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평범한 일상의 만남일지라도 다른이들과의 교제에는 무언가 얻을만한 것이 있음을 잊지마라. 지나친 고독은 당신을 피폐하게 한다. 공부를 고려하면서 공동정신과 삶에 대한 감각을 유지해야한다.  지나치게 고립된 사람은 점점 소심해지고, 추상적으로 변하고, 약간 괴짜가 된다. 그는 막 배에서 내린 선원처럼 현실 한가운 데서 비틀거린다. 그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현실과 거리를 두기보다는 관조하는 정신을 지니고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 똑똑한 사람보다 진중하고 박식하고 소신이 뚜렷한 사람을 우선해야 하고, 사회에서 틀림없이 똑똑하다고 통하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지성을 죽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시회는 비록 비망록일지라도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다. 고독은 걸작이다. 그러나 얻을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나쁜 책은 없다고 말한 라이프니츠를 기억하라. 당신이 지성으로만 사유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은 홀로 사유하지 않는다. 지성은 다른 기능과 협력한다. 말을 절제하면 끊임없이 묵상할 수 있고, 현명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할 말만 하고 때에 맞는 감정이나 유용한 생각을 표현한 후에는 침묵해야 한다.  침묵은 말 이면에 숨겨진 중요한 내용이다.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는 정신이 가치있는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