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욕구의 표현이다. 욕구를 없애면 기도는 멈춘다. 욕구를 바꾸면 기도는 변한다. 아무 말없이 유리창 너머로 상점안에 있는 장난감을 간절히 바라보다가 엄마를 보고 미소짓는 아이는 가장 감동적이 기도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기도는 욕구이고 욕구는 끊임없이 생기기기 때문에, 시종일관 계속 기도를 할 수 있듯이, 공부 또한 욕구이자 참된 것에 대한 기도이기에 공부도 시종일관 계속 할 수 있지 않을까? 지식은 우리의 지성을 활력으로 규정한다. 우리는 빵을 구하듯이 본성적으로 앎을 구한다. 세속적인 갈망에 사로잡힌 상태에 머무르는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사유하는 이들은 알려는 욕구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발전기는 터빈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터빈은 물줄기를 맞으며 돌아가야 한다. 알고자 하는 욕구는 간헐적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뇌의 의식적, 무의식적 활동을 촉발해야 한다. 습관이 아주 중요하다. 습관은 현명한 규제를 받으면, 제2의 본성과 같은 역할을 한다.
‘지혜가 거리에서 외치고, 장터에서 목청을 돋우며 떠들썩한 네거리에서 소리치고, 성문 어귀에서 말을 전한다. 철부지들아 언제까지 철없는 짓을 즐기려느냐? 거만한 자들아 언제까지 앎을 거절 하려느냐? 불러도 너희는 들은 체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도 아랑곳하지 않는구나.‘ (잠언1장 20절- 24절)
당신이 이제까지 가구에 관해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파리의 거리들을 돌아다녀도 수집가의 흥미를 끄는 가구점을 보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욕구에 눈을 뜬다면, 모든 가구가 당신을 붙잡을 것이다. 당신은 일생동안 배우지 못한 것을, 거대한 가게와 같은 파리에서 일주일 안에 배우게 될 것이다. 진리는 거리의 가구보다 흔하다. 진리는 거리에서 외치며 우리가 등을 돌릴 때도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는다. 관념은 대화에서 우연한 사건에서, 극장에서, 방문에서, 산책에서, 가장 평범한 책에서 나온다. 모든 것은 보물을간직하고 있는 데 모든 것 안에는 모든 것이 있고, 인생과 자연의 몇 안되는 법칙들이 다른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모든 현실은 위대한 사유를 낳는다. 모든 관조에는 심지어 파리나 지나가는 구름에 대한 관조에도 끝없는 성찰을 위한 적절한 계기가 있다. 영감을 받은 정신으로 만물을 바라본다면 어디에서나 교훈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프랑스 종교철학자 라므네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내가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지만, 아무도 내가 보는 것을 보지는 않는다.’ 마을에서 주택만 보지 말고 인간의 삶과 역사를 보아라.화랑이나 미술관에서 작품만이 아니라, 예술과 삶의 양식, 운명과 자연의 개념, 기법과 영감과 감성이 계승되거나 바뀌는 추세를 보아라. 인간의 재산, 노동, 고대와 현대의 사회경제에서 계급관계가 말하는 것을 들어라. 여행을 하면서 인류에 관해 들어라. 픙경을 보면서 세상의 위대한 법칙을 떠올려라. 별들에게 무한한 시간에 관해 들어라, 한가족을 보면서 지난 세대들을 생각하라.
듣는 법을 배워라. 우선 누구의 말이든 들어라.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곳이 시장이라면, 정신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곳 또한 시장, 곧 일상생활이다. 가장 단순한 대화에서도 수많은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어떤 순간에는 농민이 철학자보다 훨씬 현명하다. 외부의 미약한 자극으로도 무한한 충동을 일으키는 계기를 발견하는 사상가만이 진정한 사상가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호기심, 모든 대상을 신비로운 측면을 발견하는 성향, 어디에서나 의미로 충만한 경이를 발견하는 재능은 인성 덕분이다. 잘못하면 그들은 바보로 취급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들 고유의 드문 자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자질을 본다. 구경꾼은 보물이 앞에 있어도 자물쇠를 열 생각은 하지 않고 열쇠만 만지작 거린다. 위대한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죽은 후에야 위대함을 인정받는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당신옆에 데카르트 만큼이나 위대한 인물이 앉아 있더라도 당신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에게 질문하지 않고, 트집이나 잡으려는 마음으로 그와 논쟁하고, 시시한 말로 그의 말을 가로막는다. 당신은 관찰하고 경청함으로써 성찰하는 법을 배울 것이고, 당신이 얻은 것을 흡수하여 당신 필요에 맞게 바꿀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길을 무수히 지나가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한 천재가 우리가 모르는 것과 매순간 우리 눈 앞에 있는 것 사이의 연관성을 알아차린다. 우리는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발견한다. 구하는 자만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정신은 끊임없이 성찰하고 끊임없이 보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어디에나 진리가 있고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각각의 의문은 서로 맞닿아 있는 의문과 함께 공부해야 한다. 우주는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화가는 어디에서나 형태와 색, 움직임과 표현을본다. 음악가는 리듬과 소리를 감지한다. 시인은 은유의 대상을 발견한다. 사상가는 활동에 담긴 관념을 본다. 뉴턴처럼 언제나 그것을 생각함으로써 나중에 내놓을 탐구의 요소들을 모아야 한다. 정신 한켠에서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비결이다.
의식적으로 찾지 않고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맹목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훈련하는 것만 으로도 획득하는 관념, 저절로 획득하기 때문에 대개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그런 관념은 탐구자의 용기를 크게 북돋운다. 그런 관념은 그를 깨어있게 하고, 즐겁게 한다. 공부와는 전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던 것이 이제 공부의 기본이 된다. 현명한 사람의 정신은 언제 어디서나, 보통사람들이 간과하는 것도 습득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에게 산책은 발견하러 떠나는 여행이다. 그가 조용히 듣는 것과 대답하는 것은, 그의 내면에서 진리와 나누는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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