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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

인격적 자질

고독은 활력을 불어넣지만, 고립은 우리를 무기력 하고 메마르게 만든다. 공부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 자신의 위대함,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연대감을 느끼면서 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지성인은 언제나 보편자안에서, 역사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의 실생활은 박애를 계율로 삼는 공동생활, 어마어마하게 큰 가족생활이다. 덕목으로부터 많은 것을, 모든 것을 이끌어낼 수 있다. 도덕적 질서의 최상위에 있는 덕목은 도덕적 진리, 아름다움, 조화, 통일성과 관련되어 있고, 그런 까닭에 모든 것의 제1원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겸손한 길을 더 좋아한다. 인격적 자질이야말로 다른 모든 것에 앞선다. 지적능력은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지적능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효과의 본질이 결정된다지성을 올바로 규제하려면 당연히 지성과는 다른 자질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본성적으로 모든 우수성에는 정신적 우수성이 어느 정도 포함된다. 참되게 판단하려면 위대한 단계까지 올라서야 하는 것이다.

 

삶은 통일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다른 기능들을 무시한 채 한 가지 기능에만 전념하거나, 다른 기능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 없다. 이 삶의 통일성의 원천은 무엇인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참된 것과 선한 것은 같은 토양에서 자란다. 이 둘의 뿌리는 서로 통한다. 공통의 뿌리에서 동떨어져 그 토양과 덜 접촉하게 되면, 참된 것이나 선한 것이 고통받는다.영혼이 빈혈에 걸리거나 정신이 시드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정신에 참된 것을 먹이면 양심이 밝아지고 선한 것을 보살피면 앎을 얻는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우리가 아직 모르는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지성에는 생명의 원리부터 가장 작은 세포의 화학적 조성에 이르기까지 우리안의 모든 것이 포함된다.  망상, 환각, 무력증, 긴장 과다증 그리고 갖가지 현실 부적응증상 등 모든 종류의 정신질환은 정신만으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전체로 사유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어떻게 악덕에 의해 피폐해지고 정념에 휘둘리고, 난폭하고, 떳떳치 못한 사랑에 빠져 타락한 그런 병든 영혼과 심장을 가지고 올바로 사유 할 수 있겠는가?

 

공부에 쏟는 그 모든 노력은 특히 무엇에 달려 있는가?  먼저 집중력을 들 수 있다.  집중력은 탐구영역의 경계를 설정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그 영역에 쏟도록 이끈다.  그리고 판단력을 들수 있다. 판단력탐구의 열매를 수확한다. 그런데 정념과 악덕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흩뜨려서 정도에서 벗어나게 하고, 동시에 간접적인 방식으로 판단력도 해친다. 지성은 우리의 정념이 내리는 명령과 우리의 도덕적 습관에 의존한다. 정념을 가라앉히는 것은 곧 우리 에서 보편적인 것에 대해 감각을 깨우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바로잡는 것은 곧 참된 것에 대한 감각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앎의 적은 무엇인가?  가장 뛰어난 재능의 무덤인 게으름어떤가?  신체를 무기력 하게 만들고 상상력을 안개로 뒤덮고, 지성을 무디게 하고 기억력을 떨어뜨리는 육욕어떤가?  때로는 눈앞을 환하게 비추고, 때로는 어둠을 내려서 우리가 고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떠밀고, 그럼 으로써 보편적인 감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자만은 또 어떤가?  자신의 빛이 아닌 다른 빛은 고집스레 인정하지 않는 시기심은 어떤가? 비판을 쫓아버려 거대한 오류를 초래하는 짜증은 어떤가?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의 탁월한 직관과 꿰뚫어 보는 식견은 도덕적 진전의 성과이며, 자아와 일상의 평범한 것들에 초연한 결과다.  또한 겸손함과 간소함의 결과이자 감각과 상상력을 규율한 결과이며, 위대한 목표를 열정적으로 추구한 결과이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덕목은 분명 면학이다.  면학의 경우 두 가지 악덕이 훼방 놓는다. 태만이 하나요, 헛된 호기심이 다른 하나다.  인간의 의무는 공부외 다른 의무는 인간적 의무다. 절대적 관점에서 보면 앎은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선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말의 앎은 대개 장점만 따져보면, 앎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다른 가치들 아래에 놓인다. 능력을 넘어서는 목표를 잡아서 실패할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 가상의 역량을 얻기위해 실제 역량을 낭비하는 사람도 옛날 관점에서 보면 틸레탕트(전문적인 의식없이 애호가적인 입장에서 예술을 제작하고 즐기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아퀴나서가 공부에 관해 제시한 16가지 조언 가운데 2가지는 이런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너의 손이 닿지 않는 것을 구하지 마라, 곧장 바다로 뛰어들지 말고 먼저 개울에 몸을 적셔라’

 

현명한 사람은 처음부터 시작하며 첫째 단계를 단단히 다지기 전까지는 둘째 단계로 향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고유한 양과 질, 본성과 힘에 따라 행동하며, 따라서 평화롭다. 오직 인간만이 가식과 불만 속에서 살아간다. 스스로를 정직하게 판단하고 자신안에 머무는 것에는 얼마나 큰 지혜와 덕목이 있는가?  당신에게는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당신의 과업은 운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다. 공부는 그 자체로 성스러운 의무다.  공부하는 이는 자연이나 인류를 탐구하면서 창조주 혹은, 그 이미지의 흔적을 샅샅이 찾고 찬미한다. 정신이 질서는 만물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