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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세계사 (남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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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에필로그 에필로그: 서양문명의 전 지구적 이동으로 글로벌 문명 그리고 다음은 로컬 문명으로 보통 서양사라고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 다음은 역사라기보다 시사에 속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부터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서양이나 동양의 역사라기보다 세계사라 해야 할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기원전 300년경 고대 이집트 파라오는 국경을 수비하기 위해 누미디아 기병을 용병으로 고용했다.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은 갈리아 용병을 충원해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로마제국은 결국 게르만 용병대장인 오도아케르에게 멸망되었다. 용병mercenary은 상인merchant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은 돈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정치적 성격보다 경제적 성격이 강하다. 용병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누구의 명령을 ..
서양사 5 두 번째 세계대전을 치룬 연합국측은 1차 세계대전 후처리에 대한 학습으로 패전국에 대해서 과중한 징계와 무책임한 처리방식을 피했다. 패전국들에 점령된 나라들의 경우에도 예전 같으면 새로 정해진 국제질서에 따라 처리했겠지만, 이제 각국이 처한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처방이 취해졌다. 독일의 주권을 회복시켜주고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국으로 만든 시기가 전후 10년이 지난 1950년대 중반이었다. 현실의 변화 속도는 그들이 대처하는 속도를 앞질러갔다. 냉전체제로 현실화 된 시기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그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분단이다. 그 분단이 강력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종전이 되기 전에 루수벨트는 물론이고 처칠, 스탈린 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얄타에서 종전 후 독일을 처리하는 문..
서양사4 불안의 과도기 1차 세계대전은 모두에게 너무 큰 상처였고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비극이었다. 그래서 유럽열강과 미국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국제기구를 탄생시킨다. 국지연맹이다. 17세기 이래 세기마다 한 차례씩 대규모 국제전이 있었다. 왜 20세기에 국제기구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을까? 20세기에 와서 비로소 세계분할이 끝났기 때문이다. 열강은 더 이상 분쟁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중세이후 처음에는 종교로 30년 전쟁, 그 다음은 유럽영토를 두고 에스파니아와 오스트리아의 왕위 계승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또 그 다음에는 해외식민지를 두고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이제부터 분쟁은 조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게 국제연맹을 신설한 열강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자가 당착이요 자기모순이다...
서양사3 부가 급속히 늘어나자 서유럽 각국은 저마다 제 몫을 챙기려 들었다. 특히 합스부르크가 여기저기 전쟁을 벌이면서 흥청만청 돈을 쓴 것은 서유럽 전체로 보면 부의 국제적 재분배를 대신 해준 것이다. 절대주의 강력한 왕권을 유지하려면 관료와 상비군이 있어야 하고 그밖에도 국가기구들을 운영하기 위해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다. 그 재원을 확보하기 좋은 방법은 전쟁이다. 다른 나라를 집어삼키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서 엄청난 국가의 부를 단기간에 크게 늘릴 수 있었다. 그런 의도에서 서유럽 각국은 국가재정 상당 부분을 군사부문에 투입했다. 그러나 아무 나라나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 부유한 나라를 정복해야 하는데 그런 나라들은 힘이 세다. 따라서 전쟁이 아닌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무역이다...
서양사 2 신에게서 인간으로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부활’을 뜻한다. 그리스 문화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고 16세기 무렵 서유럽 전체가 르네상스 문화를 공유하게 되었다. 르네상스는 서유럽이 1000년에 달하는 오랜 중세를 끝내고 근대사회로 접어드는 이행기이다. 르네상스가 프랑스어인 이유는 후대 프랑스학자들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는 문화와 예술을 넘어 14-16세기 서유럽 지성운동이었다. 그리스 고전문화가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다가 어떻게 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 부활했을까? 서양역사는 오리엔트에서 씨앗이 그리스, 로마에서 뿌리를 내렸으며 중세에 줄기가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씨앗과 뿌리, 줄기는 같은 식물의 성장 단계이므로 연속적이고 순차적이다. 이 연속선상에서 르네상스와 ..
서양사-1 서양의 역사가들은 그리스를 서양문명의 요람으로 간주한다. 그 이전의 크레타와 더 이전의 오리엔트 문명이 그리스 문명의 선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 시대에 와서야 서양문명의 골격이 갖추어졌다는 주장이다. 유럽 중심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실제로 근거로 삼는 근거는 다음 두 가지다. 첫째는 그리스 민주주의이고, 둘째는 그리스 고전시대의 사상이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근대 민주주의로 부활했으며, 그리스시대의 철학과 정치사상은 오늘날까지 서양사상의 원류가 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발달시킬 만한 특별한 능력이라도 지녔던 것일까?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폴리스 체제를 취했기 때문이다. 지형상 항구중심도시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폴리스가 발달했다. 폴리스체제는 제국주의체제처럼 ..
서양사- 요약 문명의 빛이 처음 내리 쬐인 지역은 오늘날 터키에 해당하는 아나톨리아 고원으로 추정된다. 그와 동시에 남쪽 나릴 삼각주에서도 이집트 문명이 싹튼다. 구 문명의 초승달이 삼각주 일대를 환하게 밝힌다. 초승달의 양끝이 만나면서 오리엔트 문명이 생겨나고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국제사회가 형성되지만, 이 지역은 갈수록 확대되는 문명을 담당할 중심지가 못된다. 오리엔트 문명은 점차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유럽대륙의 동쪽 끝자락인 크레타와 그리스에 전해진다. 이후 오리엔트는 문자(알파벳)와 종교(그리스도교)의 두 가지 큰 선물을 서양문명에 전함으로써 뿌리의 역할을 다 한다. 크레타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오리엔트 문명의 한 자락을 거머쥘 수 있었으나 큰 문명을 담을 그릇은 못되었다. 그래서 서양문명의 뿌리는 곧바로 그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