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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세계사 (남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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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2 걸출한 군주인 명 태조는 자신의 사후에 대비했다. 원래 건국자가 죽으면 후계를 둘러싸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는 법이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태조는 아들들을 모두 변방 요지를 지키는 번왕藩王으로 만들어버렸다. 태자가 일찍 죽은 탓에 태조는 손자를 태자로 책봉해 두었다. 태조가 죽자 손자가 건문제로 즉위했다. 호랑이 같은 태조가 죽자 건문제의 삼촌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가장 강력한 삼촌인 연경의 번왕이 군대를 이끌고 난징으로 쳐들어와 조카를 손쉽게 제압하고 제위를 차지하였다. 그가 영락제 성조이다. 영락제가 즉위하자마자 맨 먼저 한 일은 수도를 난징에서 북쪽 연경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자신의 세력근거지를 전국의 중심지로 만든 것이다. 영락제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고 베이징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동양사-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1 한족은 북방민족을 미개하게 여겼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최초 유목민족국가가 생긴 것은 한족漢族 최초의 통일국가가 생긴 것과 때를 같이 한다. 진秦제국이 중국을 통일했을 때 북방에서는 강력한 흉노제국이 탄생했다. 흉노는 한漢제국 초기만 해도 조공을 받을 정도로 강성했으나 기원전 2세기 중반 한 무제의 공략에 밀려나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 그 후 1세기 무렵에 중국주변에서 흉노는 이리저리 갈라져 본래 형체는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유럽에서 사정은 다르다. 동유럽에 자리 잡은 흉노는 신의 재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아틸라의 지휘아래 유럽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당시 로마는 게르만족 일파인 고트족과 반달족 등의 유목민족들의 침략을 받은 사실이 있었지만 동방에서 온 흉노는 막강한 상대였다. 흉노의 최대의 무기..
동양사 -일본 3 30년에 가까운 고려의 치열한 항쟁을 물리치고 1258년에 고려를 정복한 몽골의 쿠빌라이 칸은 일본에 사신을 보내 국교를 맺자고 했다. 바쿠후는 거부했다. 1274년 몽골과 고려연합군은 900척의 함선과 3만3천명의 병력으로 원정을 출발했다. 원정군은 쓰시마와 이키를 순식간에 정복하고 규슈에 상륙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태풍은 산더미 같은 해일을 동반하면서 정박해 있던 몽골군의 선박을 궤멸시켜버렸다. 군대는 남은 함선을 추슬러 간신히 귀환했다. 하지만 원세조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송을 정복한 뒤 다시 일본에 사신을 보냈다. 일본에서는 사신을 참수해 버렸다. 2차원정이 결정되었고 원정을 담당하는 조직을 구성했다. 정동행성이다. 4만 명의 몽골군과 고려연합군이 선발대였고 남송군 10만여명이 후발대로 편성..
동양사 -일본2 일본은 645년 다이카 개신으로 고대국가 기틀을 갖추고 당대의 동북아시아 여러 민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중국의 당제국은 동북아시아의 패자 일뿐 아니라 세계적 선진국으로 일본이 모방모델로 삼은 것은 당연했다. 한반도가 고대 삼국으로 분리되어 있을 때 백제로부터 당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섬이란 양면적 조건이다. 외부의 침략을 막기에 더 없이 좋지만 폐쇄적일 수 있게 때문이다. 곧 일본민족은 열도에 갇혀 지내려하지 않고 외부의 영향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뒤 일본은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당의 문물과 제도를 직수입하기 시작했다. 당의 제도를 모방해 율령을 만들고 당의 수도인 장안을 모방해 헤이조를 건설했다. 다이카 개신으로 탄생한 율령체제의 경제적 토대는 모든 ..
동양사- 인도 2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인 마우리아왕조는 기원전 322년부터 기원전 187년까지 불과 150년밖에 존재하지 못했다. 마우리아를 비롯해 인도의 역대 통일왕조들은 중국이나 유럽의 제국에 비해 그다지 강력한 힘을 지니지 못했다. 남인도까지 포함한 인도대륙 전체를 강역疆域으로 하는 국가가 출현한 것도 근대에 와서이다. 인도의 역사에서 중국처럼 대륙전체를 통일하려 애쓴 제국이 없었다. 여기에는 지리적 요인이 크다. 중국대륙에는 중원이라는 중심이 있으나 인도대륙 한복판에는 중원 같은 곳은 없고 거대한 데칸고원이 교통을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인도는 고대부터 해안을 중심으로 많은 소국가가 발달했다. 인도 역사를 지역으로 구분하면 북인도와 남인도 그리고 데칸고원이 자리 잡은 소국가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중세에 이르기..
동양사-중국3 중원에 진출한 북방민족들은 유연이 한漢을 부활시킨 것을 필두로 전통적인 국호들은 총동원해 나라를 세웠다. 조趙, 연燕, 진晉, 진秦 등 춘추전국시대 유명한 국호들이 부활했다. 이 10여개 나라들 원조와 구분하기 위해 후대 역사학자들은 국호 앞에 전, 후, 동, 서, 남, 북 등의 접두사를 붙었다. 이후 50년간 분열이 이어진 끝에 마침내 439년 선비족이 세운 북위가 북중국 거의 전역을 통합하였다.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 왕조는 아니라 해도 남중국과 북중국에 각각 통일왕조가 들어선다. 약 150년 동안 중국은 중원의 북위와 강남의 송이 공존하는 남북조 시대를 겪게 된다. 북부의 이민족 정권들은 5호 16국 시대부터 기본적으로 중국화 정책을 추구했다. 둔전제는 국가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
동양사- 중국2 기원전 221년 최초로 중국대륙을 통일한 진秦의 왕인 정政은 과거 제후들의 호칭인 王이나 公은 적절 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황제皇帝로 바꾸었다. 진시황은 강력한 중앙집권을 실시하였다. 각 지방을 독립국처럼 다스리던 제후들이 사라졌으니 통치할 행정기구가 필요했다. 황제를 권력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성립되었다. 행정기구만 갖추었다고 통일제국 기틀이 확립된 것은 아니었다. 정치행정만이 아니라 사회경제 측면에서도 지역마다 달리 쓰던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하고, 문자도 예전부터 진이 사영하던 전서체篆書體만 사용하게 하였다. 진시황은 만리장성은 단지 물리적 용도만이 아니라 중화세계의 범위를 한정하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시황제는 기원전 210년 지방순례 중 급사하자 권력을 차지한 사람이 환관인 조고였다. ..
동양사- 일본1 우리나라 역사를 처음 배울 때 신석기시대의 유물로 빗살무늬토기가 나온다. 일본의 신석기 시대도 이와 비슷한 줄무늬 토기가 있었다. 빗살무늬는 한자로 즐문櫛文이지만 줄무늬는 새끼줄로 만들기 때문에 승문繩文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식 발음으로 조몬이다. 그래서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된 일본 신석기 문화를 조몬문화라고 부른다. 중국은 문명의 발상에서부터 씨족국가, 고대국가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자생적이고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인도는 인더스문명이라는 발달한 자생적인 문명이 있었으나, 아리아인들의 침입으로 파괴되고 이후에는 새로운 역사다 시작되었다. 일본은 조몬시대가 수천년 동안 이어지다가 기원전 3세기경 외부에서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면서 토착문화와 합쳐지게 된다. 이 외부문화가 유입된 지역에서 생산된 토기가 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