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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E.H. Carr, 김택)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1)

사회과학중의 하나인 역사의 개념은 19세기를 통해 점차 발전했다.  그리고 자연계의 연구에 적용되었던 과학의 방법론이 인간의 문제에 대한 연구에도 적용되었다. 사회는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기계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회과학자들은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법칙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18세기와 19세기 동안 과학자들은 자연에 관한 여러 법칙들이 발견되어 명확하게 확정되었다고 생각하고, 과학자의 직무는 관찰된 사실로부터 귀납적인 추론과정을 통해서 그러한 법칙들을 더 많이 발견하고 확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치경제학자들이 그레셤의 법칙과 애덤 스미스의 시장법칙을 가지고 가장 먼저 무대에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맬서스는 인구법칙을 제시했다.

 

영국정치가 버클은 그의 ‘문명사’의 결론에서 인간사 행로에는 보편적이고 일관된 규칙성이라는 영광스러운 원리가 스며들어 있다는 확신을 표명했다.  표준적인 교과서에 과학의 방법론이란 본질적으로 순환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경험 자료,  즉 사실이라고 생각되는 것의 도움을 빌려서 원리들을 위한 증거를 획득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원리들을 기초로 하여 경험자료를 선택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모든 사유는 관찰에 기초하는 일정한 전제를 받아들이게 마련인데, 그 전제는 과학적 사유를 가능케 하지만 그 사유에 비추어 수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검증'이란 어떤 경우에서든 경험적인 것으로서 그 가설이 새로운 통찰을 진전시키고, 우리의 지식을 증가시키는 데에서 실제로 유효한지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자나 역사가 모두 겸손한 희망, 즉 자신의 해석을 매개로 하여 사실을 분리하고,  그 사실로써 자신의 해석을 검증하는 가운데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로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나는 강연에서, '역사란 결코 사실 그것이 아니라,  일련의 인정된 판단들'이라는 베러클러프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어느 물리학자는 BBC방송의 한 프로에서 과학적 진리를 전문가들에 의해서 널리 인정되어온 견해라고 정의했다.

 

홉스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 이 세계에는 이름이외에 보편적인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데 왜냐하면 이름 붙여진 것들은 모두 그 하나하나가 개별적이고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과학에 관해서는 확실한 진리이다.  역사가의 진정한 관심은 특수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안에 있는 일반적인 것에 있다.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의 관계를 다룬다.  여러분이 역사가라면 사실과 해석을 분리시킬 수 없듯이 그 두가지를 분리시키거나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우월한 것으로 취급할 수 없다. 일반화의 진정한 핵심은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역사로부터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는 것, 즉 어떤 일련의 사건들에서 이끌어낸 교훈을 다른 일련의 사건들에 적용하고자 한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일반화를 할 때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렇게 해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이른바 과학의 법칙이란 실제로는 경향에 관한 설명, 즉 다른 조건이 동일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을 개연성만을 취급한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과학에서는 귀납법이 논리적으로 이끌어낼 있는 것이란,  그저 개연성이나 합리적인 신념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는 경향이 더욱 더 증대하고 있다. 

 

역사가는 비록 특정한 예언은 아니더라도,  미래의 행동에 대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준다. 그러나 그는 특정한 사건을 예언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특정한 것은 유일하기 때문이며, 또한 거기에 우연이라는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만일 한 학교에서 2-3명의 아동이 홍역에 걸린다면 여러분은  유행병이 퍼질 것이라고 추정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것을 예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예언은 과거의 경험으로 부터의 일반화에 근거한 것이며,  타당하고도 유용한 행동의 지침이 된다. 그러나 여러분은 찰스나 메리가 홍역에 걸릴 것이라는 식의 특정한 예언을 할 수는 없다.  역사가가 하는 일도 이와 똑같다. 인간은 어디로 보나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복잡한 자연의 존재물이며, 그래서 당연히 인간 행위에 대한 연구에는 자연과학자들이 직면하는 어려움과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자연적 존재물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변화무쌍할 뿐 아니라, 다른 종의 독립적인 관찰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인간들에 의해서 연구 되어야만 하는 존재물이기도 하다.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나 역사가는 인간행동의 여러 행태들을 통찰하고 어째서 자기의 연구대상인 인간들이 그렇게 행동하려고 했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다. 역사는 그야말로 상대성으로 가득 차 있다. 경험을 포괄하고, 수집하고, 정리하는 범주마저도 관찰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17세기, 18세기 그리고 19세기는 인간과 외부세계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당시는 과학이 탄생하고 발전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인식론은 과학의 선구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인간은 분명하게 외부세계의 반대편에 놓였다. 인간은 다루기 힘들고 장차 적대적일 수 있는 -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루기 힘들고 정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차 적대적이 될 수 있는- 어떤 것과 싸우듯이 외부세계와 싸웠다. 고전적 인식론보다 지난 50년 동안 철학자들이  그 인식론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그것들의 상호관계와 상호의존을 일정 정도 포함하는 과정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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