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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E.H. Carr, 김택)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2)

카톨릭 사상가들은 '신부는 어떤 연구자든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고 말함으로써, 역사의 모든 문제를 대답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을 불러낼 수는 없다.  크로체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다.  ‘역사를 쓴다는 구실로 재판관처럼 부산을 떨면서 여기에서는 유죄 판결을 내리고, 저기에서는 용서해주는 사람들,  역사의 직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 일반적으로 역사 감각이 없는 자들이라고 인정된다’  개인에 대해서 도덕적인 유죄를 매우 열렬히 주장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집단과 사회 전체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고 있다. 러시아인, 영국인, 미국인들은 스탈린, 네빌 체임벌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수상으로서 히틀러의 침략정책을 방조했음) 매카시 등의 개인을 공격하는 일에 기꺼이 가담함으로써,  이들을 자신들이 저지른 집단적 범죄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을 찬양하는 도덕적 판단도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 만큼이나 그릇되고 해로운 것일 수 있다.  일부 노예 소유주가 개인적으로는 고결한 사람들이었다고 인정하는 일은, 노예제를 비도덕적인 것이라고 힐난하지 않기 위한 변명으로서 끊임없이 이용 되었다.

 

역사적 사실은 상당한 정도로까지 해석을 전제로 한다. 역사란 투쟁의 과정이며, 그 과정속에서의 결과는 우리가 그것을 좋다고 판단하건 나쁘다고 판단하건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다른 집단들을 희생시킨 어떤 집단들이 성취하는 것이다.  패배자들은 대가를 치른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더 작은 악을 선택하는 일에 혹은, 어쩌면 선을 낳을지도 모를 악을 행해야 하는 일에 우리가 때때로 인정하고, 싶어하는 보다 더 자주 말려들고 있다. 역사에서는 이 문제가 진보의 대가라든가, 혁명의 특별한 제목 아래 종종 토의 되고 있다. '누군가의 행복은 다른 누군가의 재난을 정당화 한다'는 명제는 모든 통치 형태에 잠재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것은 급진적인 것만큼이나 보수적인 교리이다. 영국 문학가 존슨박사는 보다 더 작은 악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현존하는 불평등의 존속을 정당화 했다.  ‘보편적인 평등상태에서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을 터이므로, 그것보다는 누군가가 불행한 것이 더 낫다. ’

 

역사가라면 누구나 산업혁명을 아마도 이론의 여지없이 위대하고, 진보적인 하나의 업적으로 취급할 것이다. 역사가는 또한 도시로부터의 농민추방, 더러운 공장과 불결한 거주지, 아동노동 착취 등을 이야기 할 것이다. 그는 그 제도의 운용에서 폐해가 발생했다 할 것이고, 또한 어떤 고용주는 다른 고용주보다 더 잔인했다고 말할 것이며,  강제와 착취의 수단들이 적어도 그 최초의 단계에서는 공업화의 대가의 불가피한 일부 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역사가들은 19세기 서구국 가들에 의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화를 용서하면서,  그 근거로 그것이 세계경제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뿐 아니라,  그것이 그 두 대륙의 후진 국민들에게 가져다준 장기적인 결과까지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들이 이익을 거두는 일은 거의 없다.  엥겔스의 화려한 글은 기분 나쁠만큼 적절하다.  

 

‘역사는 모든 여신들 중에서 가장 잔인한 여신일 터이니, 그녀는 전쟁 시기뿐 아니라, 평화로운 시기에도 시체더미 위로 승리의 전차를 몰아댄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인간은 너무 어리석은 나머지, 견디기 어려울 만큼의 고통을 당하여 내몰리지 않고서는, 진정한 진보를 위해서 결코 용기를 내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역사 속에서 태어난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없는 선택권이 있는 입장권을 제공받는 경우란 결코 없다. 선이나 악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 더구나 거기에서 더 복잡하게 발전한 개념들이 역사의 영역 밖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추상적 개념들은 연과학에서 수학공식이나 논리학 공식이 수행하는 역할과 똑같은 역할을, 역사의 도덕성에 관한 연구에서 수행한다. 그것들은 사유하는데 필요한 범주들이지만, 특정한 내용으로 채워지기 전까지는 전혀 의미가 없거나, 응용될 수 없다.  우리는 역사가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도덕적 교훈들은 은행의 수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인쇄된 부분과 써넣을 부분이 있다. 인쇄된 부분에는 자유와 평등, 정의와 민주주의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이 있다.

 

일정한 시간에 혹은 일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가치나 이상이 출현하는 것은 장소와 시간이라는 역사적 조건들로서 설명할 수 있다평등, 자유, 정의,  자연법 등과 같이 절대적이라고 추정되는 것들의 실제적인 내용은 시대 혹은 지역에 따라서 변한다. 모든 집단은 그 자신만의 가치가 있으며 그 가치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진정한 역사가란 모든 가치의 성격이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이지,  자기가 생각하는 가치야말로 역사를 초월하는 객관성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강연에서 역사란 고전보다 더 어려운 과목이고, 어떤 과학 못지않게 정말로 딱딱한 과목이라는 인상을 전달하고 싶다. 과학자나 사회과학자, 역사가는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가 동일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과 환경에 관한 다시 말하면 환경에 대한 인간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환경의 영향에 관한 연구이다. 역사가는 여느 다른 과학자처럼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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