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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E.H. Carr, 김택)

지평선의 확대(2)

과학조차도 지금에 와서는 자연의 객관적인 법칙을 탐구하고 확립하는 일보다는  인간이 지신의 목적에 맞게 자연을 이용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해줄 실용적인 가설을 만드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이성의 의식적인 발휘를 통해 자신의 환경뿐 아니라,  자기 자신 마저도 변화시키기 시작 했다는 점이다. 우리는현 시대에 들어와 인간의 노력으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세대간 인구의 균형이 변화된 것을 보았다. 우리는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약품에 관한 이야기와  인간의 성격을 변화시키려는 외과수술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인간과 사회 모두는 우리의 눈앞에서 변화 했고,  또한 의식적인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변화하기도 했다.

 

오늘날 교육자들은 특정형의 사회를 형성하는 데에 기여하는 일과 성장하는 세대에 그런 형태의 사회에 적합한 태도, 견해를 가르치고 있는 일에 더욱 더 의식적으로 관심을 쏟고 있다. 교육 정책은 합리적으로 계획된 모든 사회정책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인간에게는 합리적인 과정을 적용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을 더 잘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이 고양된 것은 내가 보기에는 20세기 혁명의 주요한 측면들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이러한 이성의 확장은 내가 지난번 강연에서 '개별화'라고 불렀던 과정의 단지 일부분일 뿐이다. 다른 국민이 우리 자신이 그랬던 것보다 더 빨리 우리를 따라 잡고 있을 때, 그 속도가 기술적인 변화로 인해 모든 분야에서 가속화 되었을 때  그것은 더 큰 문제가 된다.  사회혁명과 과학혁명, 기술혁명은 동일한 과정하는 중요한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소련의 공군력 강화사업에 관계하고 있는, 한 소련관리에게서 다음과 같은 시사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 우리 러시아인은 아직도 원시적인 인간이라는 재료로 일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조종사의 타입에 비행기를 맞출 수 밖에 없어요. 우리가 새 타입의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성공적으로 양성하는가에 따라서, 그 물체의 기술적 발전도 완성 되겠지요. 그 두 요소는 서로를 조건 짓습니다. 원시적인 인간을 복잡한 기계에 집어넣을 수는 없어요’  생산의 합리화는 인간의 합리화를 의미한다. 교육은 개인의 능력과 기회의 확장을 촉진시키고, 따라서 개별화를 증대시키는 필수적이고도 강력한 하나의 도구이지만, 동시에 이익집단의 손아귀 안에서는 사회적인 획일성을 촉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방송과 텔레비전은 이내 강력한 대중 설득의 도구를 이용하여 바람직한 취향과 의견 -  바람직한의 기준은 그 사회에서 인정되고, 있는 취향과 의견 안에서 발견된다-을 주입하라는 호소로 바뀐다. 그것을 추진하는 자들의 손아귀 안에서는 사회의 구성원들을 적합하게 변화시켜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만들어 보려고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이 되는 것이다.

 

전문적인 광고주들과 거대한 정당의 간부들은 사업을 위해서라면 모든 합리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대단히 영리한 사람들이다. 전문적인 광고주들과 선거 사무장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현존하는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소비자나 유권자가 지금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또는 그것을 그들이 최종적으로 이끌어내고자 하는 결과로 전환시켜 주는  오직 그런 사건,  다시 말하면 능숙한 조작으로 소비자나 유권자를 유인하여 그들이 무언가를 믿게 민들거나, 원하게 만드는 오직 그런 사건에 대해서 흥미를 가진다. 호소가 주로 이성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건 지배 집단은 여론을 조직하고 통제하기 위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강제적인 수단을 사용한다.

 

역사의 과정에서 눈에 띄는 모든 발명, 혁신, 새로운 기술에는 긍정적인 측면뿐만아니라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항상 누군가는 희생을 당하는 법이다. 오늘날에도 교통사고 사망자 명부를 만들어낸 것은 자동차 출현이라고 한탄하는 일이 흔히 있다.  이런 식의 반대는 새로운 발견과 발명의 진전을 멈추게 하는 데에는 소용이 없었고, 또 앞으로도 소용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중세 세계가 최종적으로 붕괴되고, 근대세계의 기초가 마련된 15세기와 16세기의 그 위대한 시대를 특징지었던 것은, 신대륙의 별견과 지중해 연안에서 대서양 연안으로의 세계중심의 이동이었다. 20세기 혁명이 이룬 변화는 16세기 이래의 어떤 변화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것이다.  16세기로부터 약 400여년이 지난 후 세계의 중심은 완전히 서유럽을 떠났다.  오늘날 세계의 문제를 조율하는 것은 동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뻗어있는 거대한 땅덩어리라고 생각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세계대전이 아니라,  세계적 규모의 결과를 낳은 유럽의 내전이었다.  그 결과 다수의 아시아 국가들의 산업발전과 중국에서의 반외세 감정과 인도의 민족주의가 촉진되었던 것, 그리고 아랍민족주의가 탄생했던 것까지 포함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그 이상의 결정적인 충격을 가했다. 나를 불안하고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의 진보의 행군이 아니라, 이 나라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지배집단이 보여주고 있는 경향,  즉 그러한 발전에 대하여 못 본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초리를 보낸다거나,  그것에 대해서 불신에 가득찬 채 경멸하거나 상냥하게 겸손을 떨거나 하는 자세 사이에서 동요하는 태도를 보인다거나 또는 과거를 향한 무기력한 향수에 몸을 돌려 빠져들려는 그 경향이다. 

 

20세기 혁명에서의 '이성의 확대'라는 것은 역사가에게 특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성의 확대는 본질적으로 지금까지 역사의 밖에 있던 집단과 계급, 인민과 대륙이 역사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민 대중은 선사시대 사람들처럼 역사가 아닌 자연에 속했다. 더욱 더 많은 인민들이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을 가지게 되고,  각자의 집단들을 과거와 미래가 있는 역사적 실제로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완전히 역사속에 들어올 때 그럴 때 근대사는 시작된다. 사회의식, 정치의식, 역사 의식이 웬만큼 인구의 대다수에게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소수의 선진국가들에서 조차 기꺼해야 최근 200년 이내의 일이었을 뿐이다. 학문에서든 역사에서든 사회에서든,  인간사에서의 진보는 기존질서의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일에 스스로를 제한시키지 않고, 현존질서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의지하고 있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전제들에 대하여,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인간들의 그 대담한 자발성을 통해서 주로 이루어진 것이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충만한 감각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서 진행되는 변화에 관한 피상적인 이야기들이 요즘처럼 자주 들었던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변화가 더 이상 성취로, 기회로, 진보로 생각되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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