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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E.H. Carr, 김택)

사회와 개인(2)

나는 첫번째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라'.  이제 나는 이렇게 덧붙이려고 한다. '여러분은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영국의 여류역사가 웨지우드는  ‘개인으로서의 인간행동은 집단이나 계급으로서의 행동보다 나에게 흥미롭다. 역사는 저런 경향 못지 않게, 이런 경향으로도 쓰여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더 잘못될 것도, 덜 잘못 될 것도 없다 ....’라고 했다. 이 말은 틀린 데가 없다. 엄격한 역사가인 제임스 닐경 조차 튜더 왕정의 성격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하는 일보다,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그의 존경심을 표시하는 일에 더 열중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개인은 당연히 한 사회의 혹은 하나 - 그 하나를 집단, 계급, 종족, 민족 등으로 부르건 아니면, 그 밖의 무엇으로 부르건 상관없이- 이상의 사회구성원이다. 개인의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지 않는 심리학자는 큰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심리학자들은 개인의 기능을 하고, 사회체제 안의 한 단위로 다루지 않고, 먼저 개인이

존재하고 난 다음에 사회체제를 형성하기 시작한다고 생각되는 구체적인 인간으로 다루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 견해에 찬성한다. " 역사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전투를 벌이지도 않는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클라렌던이  ’이름도 없는 비천한 인간들‘이라고 부른 건 개인들이었다. 이름도 없는 수백만은 다수간에 무의식적으로 함께 행동함으로써, 하나의 사회적 힘을 이루었던 개인들이었다. 역사가는 일상적인 상황속에서라면, 불만을 품고 있는 한 사람의 농민이나 하나의 촌락에 관해서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천개의 촌락에서 수백만 명의 농민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역사가라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된다. 크리스트교도들은 의식적으로 자신만의 이기적이기 쉬운 목적을 위해서 행동하지만, 실은 신의 목적의 무의식적인 대행자라고 믿고 있다. '사적인 악행은 곧 공적인 이익' 이라는 영국작가 만데빌의 말은 이러한 생각을 포착하고, 그것을 일찌감치 그리고 일부러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든가, 헤겔의 이성의 간계(cunning of reason)가 말하고 있는 것은 비록 개인 스스로는 자기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성취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그 보이지 않는 손이나 이성을 위해서 알게 되고, 그것들의 목적에 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속에는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역사의 경로를 틀어버리는 어떤 성질이 존재한다어떤 개인이 1930년대의 대공항을 일으키려고 했다거나 혹은 그것을 원했다고 믿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비록 개인들 각각은 전혀 다른 어떤 목적을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더라도, 그들의 어떤 행동에 의해서 공항이 발생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미국 정치가인 로지는 28대 미국 대통령 윌슨에 관해서  '그는 전쟁에 나설 뜻이 없었지만, 나는 그가 여러 사건 들에 의해서 떠밀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사의 사실이란 사회속에 있는 개인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 그리고 개인의 행동에서 본인들이 의도했던 것과 자주 모순 되거나 가끔 상반되는 결과를 생겨나게 하는 사회적 힘에 관한 사실인 것이다. 역사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행동의 배후에 있는 것을 연구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행위자 개인의 의식적인 생각이나 동기와는 전혀 무관할 수 있다. 완전히 동질적인 사회란 없다.  모든 사회는 갈등의 장소이며, 현존하는 권위에 반대 입장을 취하는 개인은 그것을 지지하는 개인만큼이나 그 사회의 산물이자 반영물이다.  군주와 반역자는 똑같이 그들 시대와 나라의 특정한 조건의 산물이었다.  

 

그들이 역사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추종한 대중 덕분이며,  따라서 그들은 사회적 현상들로서 중요한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에서 위인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위인은 한 사람의 개인이지만 탁월한 개인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비스마르크가 18세기에 태어났다면 그는 독일을 통일시키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결코 위인이 될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톨스토이 처럼 위인을 ‘사건을 이름에 붙여주는 꼬리표’에 불과한 존재로 취급하면서 평가절하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반대하고 싶은 것은 위인을 역사 밖에 놓아둔 채, 그들은 위대하기 때문에 역사에 간섭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위인은 항상 기존세력의 대변자이거나 아니면, 현존하는 권위에 도전할 생각으로 그가 힘을 쏟아 형성시키려는 세력의 대변자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인을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자 대리인이면서 이와 동시에 세계의 모습과 인간의 생각를 변화시키는 사회적 힘의 대변자이자 창조자인 탁월한 개인으로 인식하는 일이다. 

 

역사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며, 개인은 그 과정에 사회적인 존재로서 참여한다.  내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라고 불렀던 그 과정은 추상적이고 고립적인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이다.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빌리면,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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