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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E.H. Carr, 김택)

지평선의 확대(1)

세계의 파국을 예언하는 소리가 모든 이들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들은 사실로 증명되지 않을 수도 있고, 증명될 수도 있다. 우리를 위협하는 위험들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것이며, 또한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해 보겠다.  21세기의 중반의 세계는 15세기와 16세기에 중세가 몰락하고, 근대세계의 기초가 놓여진 이래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변화가 과학적인 발견과 발명의 산물이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 변화가 눈에 띄는 측면은 사회혁명으로서의 측면인데, 그 혁명은 금융과 상업에 기반을 둔 그리고 나중에는 산업에 기반을 하나의 새로운 계급을 권좌에 오르게 한, 15세기와 16세기의 사회혁명에 버금갈만한 것이다. 사람들이 시간의 경과를 자연적 과정- 계절의 순환이라든가 사람의 일생과 같은- 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의식적으로 연루되고, 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정한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역사는 시작된다역사는 이성의 발휘를 통하여 환경을 이해하고,  그것에 작용해 인간의 오랜 투쟁이다. 이제 인간은 환경뿐만 아니라 그 자신까지도 이해하고, 그 자신에게까지 작용을 가하려 애쓴다.

 

현대인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자기를 의식하며, 따라서 역사를 의식한다.  그는 자기가 지나온 희미한 어둠 속의 가날픈 빛이 그가 앞으로 가려고 하는 어두컴컴한 곳까지 밝혀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서 열심히 그 희미한 어둠 속을 뒤돌아 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끝없는 역사의 사슬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자기의식의 발전이 보여준 근대 세계에서의 그 변화는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는 사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유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즉 관찰행위를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지위를 최초로 확립했고,  그 결과 인간은 사유와 관찰의 주체이자 동시에 객체가 되었다. 독특한 사건들은 17세기와 18세기에 인간은 이미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그것의 법칙들을 충분히 의식했다. 그것들은 어떤 불가사의한 신의 섭리가 아니라, 이성으로 다가설 수 있는 법칙이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개인은 자신만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지만 그러는 가운데 그 이상의 어떤 즉, 비록 그들의 의식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의 행동에 잠재해 있는 어떤 것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세계정신의 합리적인 목적에 관해서 헤겔은 사람들은 그 목적을 실현하는 바로 그 행위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데, 그 욕망의 의도는 '세계정신의 합리적인 목적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의식하지도 않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에서의 발전은 자유의 개념을 향한 발전을 의미했다. 애덤스미스와 헤겔 모두의 제자인 마르크스는 합리적인 자연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계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마르크스의 견해를 최종적으로 종합해 보면 역사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일관된 합리적인 전체를 구성하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를 의미했다.

 

객관적이고 주로 경제적인 법칙에 일치하는 사건의 운동, 그것에 조응하면서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사유의 발전, 그리고 그것에 조응(원인에 따라 나타나다) 하면서 혁명의 이론과 실천을 일치시키고 결합시키는 계급투쟁의 형태의 행동. 마르크스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인 법칙과 그 법칙을 실천으로 전환시키는 의식적 행동의 조합, 때때로 결정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과 주의주의 (일반적으로 지식이나 지성보다는 의지를 우선시 사고방식)  라고 부르는 것과의 조합이다.  마르크스는 지금까지 인간이 의식하지 못한채 복종해온 법칙들에 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 한다. 현대사 시대로의 이행은 20세기로 넘어와서 완결 되었는데, 이 시대 이성의 일차적인 기능은 사회속의 인간행위를 지배하는 객관적인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행위를 통해서 사회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을 개조하는 것이 되었다. 마르크스에게 이데올로기는 부정적인 용어 - 자본주의적 사회질서에 대한 허위 의식의 산물- 이다. 레닌에게 이데올로기는 노동자 대중에게 불어넣는 신념이다.

 

이성에 새로운 차원을 붙여준 위대한 사상가는 프로이드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을 사회적 실제로서가 아니라 생물학적 실재로서 연구했으므로, 사회적 환경도 인간 자신에 의해서 끊임없이 창조되고 변형되는 과정속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주어진 어떤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프로이드가 한 일은 의식과 합리적인 탐구에 대해서 인간 행위의 무의식적인 근원을 폭로함으로써, 우리의 지식과 이해의 범위를 확장시킨 것이었다. 이것은 이성영역의 확장이었고 인간 자신을 따라서 인간의 환경을 이해하고 지배할 수 있는 인간 능력의 증대였다. 인간행위의 근원을 보다 깊게 이해함으로써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인간의 행위를 의식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했다는 의미에서, 그는 현대세계에 속하는 인물이다. 경제인이란 시종일관 경제법칙에 따라서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오늘날의 경제학은 일련의 이론적인 수학방정식, 아니면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밀어내는가를 연구하는 실용적인 학문이 되었다. 이 변화는 주로 개인적인 자본주의에서 대규모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산물이다. 개인적인 기업가와 상인이 지배했던 동안에는 경제를 통제하거나, 경제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날 석유나 비누의 가격이 공급과 수요의 어떤 객관적인 법칙에 따라서 변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불경기와 실업이 인위적이라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으며, 혹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자신이 그 문제의 해결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 그것을 주장한다. 자유방임에서 계획으로의, 무의식적인 것에서 자기 의식적인 것으로의 객관적인 경제법칙에 대한 신념에서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경제적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서의 이행이 이루어진 것이다. 사회정책은 경제정책과 나란히 추진되었다.  1910년도에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사회개혁을 실현할 수 있다는 신념은 유럽정신의 지배적인 경향이다. 대공항이 있은 후 30년이 지난 오늘날, 이러한 것은 평범한 신념이 되었다. 그리고 합리적이라고 생각되기는 했지만, 인간이 통제할 수 없었던 객관적인 경제법칙에 대한 복종으로부터 의식적인 행동을 통하여 자신의 경제적 운명을 지배할 수 있는 인간능력에 대한 신념으로서의 그 이행은, 내가 보기에는 인간사에 대한 이성의 적용에서의 발전을, 즉 자기자신과 환경을 이해하고 지배할 수 있는 인간능력의 증대를 나타내는 이라고 생각되므로, 나는 필요하다면 이러한 것을 기꺼이 '진보'라는 진부한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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