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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그 창조적인 역사 (피터 투이

권태란?(2)

스펙스에 따르면 실존적 권태는 한 개인이 스스로를 타인으로부터 고립시키면서 생겨나는 일종의 공허함이다.  전통과 공동체가 사라져버린 세상이다. 현대의 개인은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나태나 여유를 즐기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권태 내지는 실존적 권태라고 부른다. 또 멜랑콜리 내지는 우울증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존 안소니 쿠던의 ‘문학용어 및 이론사전’을 보면 잉여인간이라는 장르가 나온다.  잉여인간이란 이상적이지만 소극적인 인간, 즉 도덕적,  사회적 문제에 민감하나 어떤 행위도 취하지 않는 인간을 말한다. 이런 상황은 개인의 나약함과 나태함 때문이기도 하고 행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적, 정치적 제약 때문이기도 하다.  잉여인간, 멜랑콜리, 실존적 권태, 경미한 우울증, 이 모두는 저마다 다른 시대에 등장했으나 사실은 다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좌절, 과잉, 혐오, 무관심, 무감동, 갇혀있다는 느낌과 더불어 우울증, 멜랑콜리, 잉여, 권태,  이 모두가 실존적 권태와 관련이 있는 감정이다.

 

로버트 플루칙은 단순한 권태를 하나의 감정으로 생각한 학자들 중 하나이다. 그에 따르면 권태는 행복과 슬픔, 공포, 분노, 놀람, 혐오와 같은 1차적 정서와는 거리가 좀 있다. 그보다는 공감, 당혹, 수치, 죄책감, 자부심, 질투, 시기, 감사, 동경, 경멸 등과 같이 파생적 정서 또는 2차적 정서에 가깝다.  이런 감정은 종종 사회적 정서라 불린다. 그 이유는 이런 종류의 감정이 표출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어떤 행위가 사전에 있어야 하기 때문 이다.  반면 1차적 정서는 완전히 독립된 감정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2차적 정서보다 사회적인 배경을 덜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생명이 없는 사물, 이를테면 쓰러지는 나무를 보고 겁먹을 수는 있지만, 그 광경에 공감을 느끼거나 질투를 느끼는 일은 거의 없다. 1 차적이든 2차적이든 대부분의 감정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을 바깥 세상에 적응시키고 스스로 보호하는 법을 배운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혐오감이란 해로운 음식에 대한 자동적이고, 유익한 거부와 함께 진화된 1차적 정서라고 했다. 그러므로 '권태'라는 이 적응적 정서는 해로운 사회적 상황을 이로운 방향으로 거부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관계에 보다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는 단순한 권태를 바로 이렇게 이해해야 할 듯 싶다.  단순한 권태는 결코 하찮거나 유치하지 않다.  그러나 이를 마치 철학적인 질병처럼 여겨 과대 평가해서도 안된다. 권태는 그 나름의 역할이 있다. 권태는 혐오감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보호한다.

 

실존적 권태에 빠지면 좀처럼 가시지 않는 깊은 공허함과 소외감과 경멸감을 느낄뿐만 아니라, 현 상황에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한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이를테면 우울처럼 주어진 감정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이를 기분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실존적 권태도 그와 같이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느낌'이란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현재 감정을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상태로 설명하기도 한다그러니까 감정적 자기성찰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더 쉽게 말하면 자신안에 존재하는 감정을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실존적권태는 자기성찰의 성격이 가장 강한 상태이다. 멜랑콜리와 권태는 매우 비슷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권태는 사회적 정서이고 외부의 갑갑하거나 따분한 상황과 관계가 있다. 

 

데이비드는 감정이 인지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감정에는 반응뿐만 아니라 평가가 따른다는 얘기다. 데이비드와 같은 많은 인지주의자들은 감정의 평가적인 요소가 특정한 사회, 역사적 시대, 언어 심지어 성별의 성향에 의해 형성된다고 믿는다.  권태를 정의하자면 대략 이렇다. 권태란 피할 수 없고, 불쾌하도록 식상한 어떤 환경에 의해 갑갑함이나 속박감을 느끼고, 그 결과 주변 환경과 시간의 정상적인 흐름으로부터 괴리되는 감정이다. 간단히 정리 하면 권태란 일시적으로 피할 수 없고 식상한 환경에 의해서 생겨나는 경미한 혐오감이라는 사회적 정서이다.

 

도파민은 뇌의 보상 설계이다.  도파민이라는 뇌 화학물질은 기쁨과 흥분의 감정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기쁨과 흥분의 반응을 뇌에서 끌어낸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이런 감정을 경험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도파민은 멍한 상태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와 같은 과다행동의 원인이 된다. 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도파민 수치가 낮아 시간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받으므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으면, 극도로 따분해 한다.  한가하게 가만히 있는 시간이 더 느리게 간다고 느끼기 때문에 도파민 수치가 정상인 아이들보다 훨씬 더 쉽게 지루해진다. 유독 남들보다 권태가 더 문제시 되는 사람들, 즉 권태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권태는 만성적인 문제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기타 다양한 문제들이 따른다. 특히 약물복용,음 주, 분노, 무분별한 성생활과 같은 위험이 따른다. 권태는 그 자체로는 유익한 감정이자만 만성적인 양상을 띠면 상황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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