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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그 창조적인 역사 (피터 투이

만성적 권태

평범한 사람들은 시간을 어떻게 소비할까 생각하지만, 지성인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궁리한다.

(쇼펜하우어)

 

2003년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의 국립약물중독 및 오남용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십대 절반 이상이  스트레스, 잦은 권태감, 지나친 금전 소비중 하나에 빠질 경우 약물을 남용할 수 있다고 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아이처럼  만성적 권태를 겪는 사람도 자극적인 행동으로 스스로를 치료하는 경향이 있는 걸로 보인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도파민 조절 수용체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뇌는 도파민 수치를 평균 만큼 효율적으로 조절하지 못한다. 도파민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는 수용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위험하거나 짜릿한 행동을 할 때 매우 큰 자극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안나 고슬린은 2007년 한 가사에서 이렇게 썼다. 만성적인 권태에 빠지면 우울증, 근심, 약물중독, 알코올중독, 도박중독, 섭식장애, 적대감, 분노, 대인기술 부족, 학업성적 및 업무실적 저조가 나타날 위험성이 크다. 그러나 어떤 것이 먼저일까?

 

만성적 권태가 병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걸까?  아니면 부족한 도파민이 곧바로 병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걸까? 만성적 권태는 원인 인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만성적권태와 병적행동을 인과관계로 연결시켜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도파민 불균형에 의해 만성적 권태와 그 밖의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권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아무 것도 일으키지 않는다. 특히 만성적 권태는 개인 성격이나 생리와 같은 근본적인 요소에 의해 생겨나는 결과이다. 그러므로 내향적인 사람보다는 외향적인 사람이 권태에 더 취약하고 권태를 유발하는 요인은 바로 그 사람의 외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연구를 보면 내부적 자극보다 외부적 자극에 더 많이 의존하는 사람들이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일, 즉 지루한 일에 서투르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환경으로부터 더 큰 자극을 받기 원하고, 스스로는 자극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남성이 여성보다 외부자극에 더 많이 의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만약 자극이 더 이상 가해지지 않으면 남성은 쉽게 권태를 호소하게 된다. 자기기분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정서적 삶이나 상상력이 메마른 사람도 권태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만성적 권태는 분노, 위험 행동, 자극추구, 약물복용과 같은 불온한 무리와 어울려 다닌다. 그런데 만성적 권태가 자주 어울리는 또다른 벗이 잇다. 그건 바로 편집증이다. 연구심리학자 미첼 J. 폰 게밍겐에 따르면 권태 성향은 특히 남성의 경우 편집증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 특성은 타인을 향해 적개심을 품거나 타인을 위협적인 상대 내지는 우정을 가장한 잠재적인 적으로 보는 경향이다경미한 편집증을 보이는 사람은 만성적 권태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여행은 권태를 해소하는 하나의 탈출구다.  권태는 대개 어떤 새로움을 시도하는 것으로로 충분하다. 그러나 만성적 권태의 경우에는 종종 어떤 관습을 깨는 행위가 필요하다. 여기서 관습이란 낡고, 진부 하고, 권태로운 것, 이를테면 굴곡 없이 무기력한 중산층의 삶 따위를 말한다.

 

세계 어디서나 중년의 보수적인 백인 남성들이 청바지에 가죽재킷 차림으로 모여 기타밴드를 결성한다. 이들은 인디언 부족이나 오토바이족 클럽의 이름을 본 따 밴드명을 짓고, 요란한 기타 리프를 연주하고, 도수 낮은 맥주를 마시거나 페이스북을 하면서 음담패설을 나눈다. 저들 나름대로 관습을 깨고 있는 것이다. 미국 예술가 듀안 핸슨은 권태와 진부함이 현대인의 삶의 특징이라고 했다. 관습을 깨고 충격을 일으키는 행위는 종종 개인주의를 표출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관습 깨기의 목적은 현대 중산층의 평탄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에 다시금 기복을 일으키는 것이다.  관습 깨기는 주기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금세 또다른 무언가로 대체되는 중산층 권태의 한가지 특징이 된다.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 엠마는 이렇게 묻는다. ‘ 왜 미소 뒤에는 늘 권태의 하품이숨어있고, 쾌락 뒤에는 어김없이 혐오감이 찾아오는 걸까? ’  한편 그녀는 화려하게 품위를 유지 하느라 큰 빚을 진 상태다. 권태로 삶이 무료해지면 대개는 성과 관련된 극적이고 충격적 사건이 삶의 기복을 어느 정도 되찾아줄 수 있다. 다시 말해 도파민의 흐름이 왕성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충격적이고 관습을 거스르는 행위에 대한 욕구가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런 행위가 어떤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섹스는 이미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 이제 섹스는 일요일에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커피와 같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호주의 심리학자이자 사회논평가인 로널드 콘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시대는 미디어로 뜨겁게 달궈진 섹슈얼리티를 흔하고, 식상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역사상 최초의 시대다’  모든 권태가 도파민에 의한 만성적 권태는 아니다. 보통은 단순한 권태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산택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권태가 지속되고 피할 수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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