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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보리스 시륄니크지음, 정재곤 옮김)

아버지의 존재

암놈 펭귄은 알을 낳고나서 수놈을 둥지에 밀어넣고 떠나 버린다. 그러면 수놈이 둥지에 웅크리고 앉아서 널찍한 아랫배로 알을 품는다. 수놈은 암놈이 돌아올 때까지 두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로 체온을 유지하고, 폭풍설에 살아남기 위해 떼지어 지낸다. 초식동물의 새끼들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신경생물학적 매카니즘에 따라 어미 뒤를 따라다닌다. 먹을 것이 곳곳에 늘려있어니 어미를 쫓아다니면서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때로 포식동물이 나타나면 커다란 수놈 들소들은 새끼를 거느린 암놈 무리를 앞에서 지켜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수놈들은 암놈과 새끼들 무리에서 떨어져서 자기들끼리 무리지어 생활한다. 이처럼 초식동물은 사방에 먹이가 늘려 있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조건 지어진 대로 살아가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이들은 부모에 의존하기보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직접 먹이를 사냥해야  하는 육식동물은 다르다. 육식동물은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생물학적 아버지, 즉 실제의 아버지란 정자를 제공하는 수컷을 일컫는다. 하지만 씨 뿌린 아버지는 반드시 필요할까? 동물계에서 단성 생식도 있지만 포유류에서는 수컷이 개입하지 않고 어미만으로 태어나는 포유동물은 있을 수 없다.

 

복제라는 방식으로 번식을 할 때는 필요한 것은 암컷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수컷의 존재는 이질성을 가져옴으로써 개혁과 적응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환경이 좋을 때는 암컷에 의해서만 번식하는 복제번식이 경제적이며 환경이 열악할 때는 태어난 개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성적 결합이 필요하다. 한편 인간은 모든 점에서 불리한 환경에 놓여 있다. 우선 인간은 미숙한 존재로 태어나는 까닭에 오랜 기간동안 자기를 보호해줄 성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끊임없이 보살핌과 사회적, 심리적 보호장치를 찾아나서야 한다. 이처럼 취약한 존재인 인간은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성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그토록 성에 집착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탄생과 동일화, 짝짓기, 또 이런 것들에 수반되는 모든 사회적 제약 등의 성적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온 평생을 소비하는 셈이다. 물론 그런 문제들은 어느정도 해결되고 있지만 대신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아기가 발달과정 중에 접하게되는 환경에서 아버지란 존재가 어떻게 나타나고, 어떤 형태를 취하며 어떻게 지각되고 또 감각적으로나 의미면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포유류든 처음 접하는 환경은 엄마의 몸이다. *아이가 발달 과정 중에 접하는 두 번째 환경은 바로 엄마의 주변세계로 엄마의 주변환경과 가족, 가까운 사람들 등이다. *아이가 접하는 세 번째 환경은 원거리에 위치하는 환경으로 사회망, 제도 혹은 문화적으로 할당된 역할 등 이다.

 

태아는 처음에 바깥세계와 전혀 상관없이 자세를 바꾸고, 빳빳하게 있거나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태아는 25주가 지나면 바깥 세상으로부터 오는 감각정보에 따라 자세를 바꾸기 시작한다. 의미를 띤 사건이나, 엄마에게 공격이 가해지는 상황이 오면 태아에게도 생물학적인 영향이 가해진다. 엄마가 애착을 보이는 남성은 엄마를 매개로 하여, 태아의 생물학적 정보에 영향을 미친다.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성에게 병이나면, 엄마에게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의미가 부여된다. 엄마의 바뀐 태도는 새로운 감각정보가 되어 태아에게 전달된다. 아빠란 곧 엄마에게 의미를 지닌 남성으로 엄마는 이런 사실을 감각정보를 통해 태아에게 전달한다. 아빠는 엄마가  자신에게 의미를 갖는 남성으로 해석하며, 또 이러한 감각적인 해석은 배속의 태아가 접하는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아기가 생후 6개월 경에 이르면 얼굴의 시각적 이미지가 촉각적 이미지나 후각적 이미지, 혹은 청각적 이미지보다 우선시 된다. 아기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신경심리학자적 발달과정에서 아기는 매우 친숙한 시각적 이미지(엄마의 이미지)와 여타 이미지를 구분해낼 수 있다. 바로 이때 아기의 행동양식에 변화가 찾아온다. 6개월째 아기는 새로운 대상이 나타나면 이 대상을 탐구하기 전에 엄마를 먼저 쳐다 본다. 6개월이 되기전까지는 아기는 엄마가 아닌 사람도 엄마를 대체하는 인물로 받아들인다.  7개월이 지나 시각적 이미지가 뇌의 후두엽에 전달될 정도로 성숙해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 시기에 아기는 새로운 대상을 쳐다보기 전에 엄마를 쳐다 봐야 하며, 낯선 사람에게 팔을 내밀기 전에 엄마한테 안겨야하고 새로운 대상에 호기심을 갖기전에 엄마로부터 마음을 진정시키는 애기를 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대상으로 부터는 극심한 공포감을 드러낸다. 아버지의 존재는 우선 시각을 통해 지각된다. 하지만 아이는 이전에 엄마로부터 받은 여러 감각정보를 이미 내면화 했기 때문에 낯설면서도 익숙한 아버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처럼 아버지의 존재가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이 만나는 중간 단계에서, 다시말해 엄마를 매개로 하여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감각의 역사를 통해 탄생하면서 아이는 엄마의 주변 세계를 탐색하는 첫발을 내디디게 된다.

 

새끼원숭이들은 9개월이 되기전 까지는 성별에 무관하게 행동한다는 것이 확인 되었다. 하지만 16개월째가 되면 놈들은 동성의 친구들을 선택했다. 그러다가 24개월 째부터 암컷들은 수컷들에게, 수컷들은 암컷들에게 모여 들었다. 2년째 접어들면서 수컷들은 무리의 중심을 이루는데 ,이때부터 수컷들에게 모든 이목이 집중된다. 우리는 이상의 관찰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즉 포유류는 성별과 연령에 따라 선호를 달리한다. 새끼들은 처음에는 장성한 암컷들에게 이끌리다가, 그 후로는 동성의 또래에게 관심을 보인다. 나중에 원숭이들은 성차를 지각하고 점차 수컷들에게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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