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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보리스 시륄니크지음, 정재곤 옮김)

부부의 성

애착은 교묘하게도 일상적으로 엮어진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애착은 매일매일 그 흔적을 각인해 놓는다. 애착을 쌓아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그것에 무감각해지고,  애착대상을 상실했을 때라야 비로소 그 위력을 실감한다.  “나는 내가 남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 남자가 얼마나 절실 했는지를, 그 남자가 곁에 있을 때는 의식조차 하지못했지만 지금은 그 빈자리가 너무나 휑하다.”

 

원숭이의 경우 문제가 있는 어미는 새끼의 양식을 빼어먹고, 새끼의 머리를 밟고 지나가는가 하며 새끼가 다가오면 밀어낸다. 새끼는 고약한 자기 어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불안스럽게 과도한 애착을 보였다. 이 때문에 새끼는 제대로 놀지 못하고 사회화 과정을 겪거나 그룹의 의식을 배우지도 못했다. 청소년기가 지난 다음에도 새끼는 암컷에게 구애할줄 몰랐다. 자연스럽게 애착경험을 해야할 시기에 장애가 오는 것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어미 때문이다. 이처럼 어릴때 겪은 애착결핍은 놀이와 사회화의 정착을 방해하고 성적 실패를 가져온다.

 

결함을 가진 아동들은 학교에서 과도하게 행동을 하는 탓에 눈에 띄곤한다. 이 아이들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소란을 피우거나 아니면 완전히 고립된 채 지내거나, 애정면에서의 무관심을 은폐하는 극도의 진중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런 아동들은 애정결핍을 느끼고 있는 만큼 성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하지만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사회화 과정 때문에 욕망 못지않게 억압도 강하다. 그래서 아이는 상반된 두 충동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불안감에 사로 잡히거나, 충동적으로 자해행위를 감행 하기도 한다. 결함을 가진 여자 아이들은 흔히 다음과 같은 욕망을 품곤 한다. 즉 어떻게 하면 남자가 보잘것 없는 존재인 자기를 사랑하게 만들것인가?, 여자 아이들은 진하게 화장을 하기도 하고 도발적인 의상을 걸치기도 한다.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에 비해 잠을 덜 자고, 많이 울고, 보다 활발하게 움직인다. 반면에 여자 아이는 잘 웃고, 소리도 좀 더 많이 내고, 공간 이동도 적게 한다. 어른을 쳐다 볼 때도 여자 아이들은 미소를 띠며 쳐다보는데 반해, 남자아이들은 불안감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본다. 여자아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미소를 띠는데 반해, 남자아이들은 점점 적대감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여자아이들은 2-3명의 다른 여자아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경향을 보인다. 여자 아이는 서로 접촉하고, 웃고, 말하고, 제스처나 놀이, 몸치장에서 또래를 잘 흉내낸다. 이에 반해 남자 아이들은 사회화 유형이 다르다. 10-20개월 된 남자들은 서로 간에 접촉하는 일이 거의 없고, 경쟁이나 공격성에 근거하여 무리를 지어 행동한다.

 

인간이나 동물을 불문하고 실험에 의하면, 아기들이 보이는 자기 중심적 행태는 불안감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고립감이나 애정 결핍감을 느낄 때, 엄마와 분리되어 있을 때, 이 같은 자기중심적 행태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의 행동방식은 아주  일찍부터 분화된다. 우리는 아기가 태어난지 불과 몇 달 지나지않을 때부터 이미 성별에 따른 차별화된 행동방식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에 비해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세상을 접하고, 더많이 불안해 하는가 하면, 보다 집단적이고 경쟁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반면에 여자 아이는 남자아이에 비해 소리와 말에 좀더 민감하고, 좀더 안정적이며, 좀더 관계 지향적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 성별에 따른 차별화가 이처럼 일찍부터 나타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 성은 생물학적 생존과 심리학적 삶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남녀가 서로 만나고 쌍을 이루는 모험을 감행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