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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보리스 시륄니크지음, 정재곤 옮김)

한쌍의 커플이 만들어 지기 위해

한 쌍의 커플이 만들어지기 위해 우선 환경의 제약을 통과해야 한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지리적 공간이다. 발달한 교통수단 등은 이같은 지리적 공간에 문화의 색채를 더해 놓았다. 경제적 수준이 높을수록 커플을 형성하는 시기가 늦어진다. 사회적 독립을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한 그룹에서는 만남이 더디게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있는 공간에서 만남을 갖는다. 문화적, 정치적 공간 등에서 동류의 사람들과 만난다. 이런 장소에 드나듦으로써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신체적, 지적, 사회적 제약을 피할 수 없으며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상대 역시 극도로 한정되어 있다.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제시하는 미끼를 관찰해 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여성들은 육체의 매력을 부각시킬 줄 안다. 여성들은 가슴을 들어올리고, 둔부의 움직임이 드러나는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입술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눈꺼풀에 색을 칠한다. 이와 같은 최소한의 성 전략은 모든 문화권에서 유사하다. 아름다움에는 기분좋은 감각을 일깨우는 힘이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은 그룹에 따라 다르다. 문명화된 아프리카 여성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코에 구멍을 뚫는다. 여성들은 삶의 방식에 이끌리지만 남성들은 여성의 육체에 이끌린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여성은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몸을 가꾸고 매력을 다듬는데 반해 남성은 애정의 시장에서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멋진 자동차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한다.

 

동공의 확대는 성적으로 흥분할 때 신경전달물질인 아트로핀이 분비됨으로써 야기되는 생물학적 현상이다. 신경생물학자들은 애무를 받을 때 몸에서 천연 모르핀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세한 엔도르핀 세포는 고통을 감지하는 골수의 뉴런에 달라 붙는다. 이렇듯 엔도르핀은 회로를 끊음으로써 고통이 전달되지 못하게 한다. 넘어진 아이를 쓰다듬어 주는 행위는 상호접촉의 의미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진정 효과도 유발한다. 두 사람이 근접거리를 유지하는 경우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나 싸움을 할 때 뿐이다. 근접거리에서는 격렬한 감정이 교차한다. 사람들은 불편한 개입을 피하기 위해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인간은 성관계를 통해 상대의 공간안에 자리를 잡고 또 그와 같은 터 잡는 방식이 상대방과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여긴다. 인간뿐만 아니라 그 어떤 동물도 타 개체가 자신의 민감한 부위에 직접 접촉하도록 용인하지 않는다. 상호작용의 의식을 통한 선별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타개체는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의미로 충전된 내밀한 부위와 접촉할 수 있게 된다. 수놈과 암놈은 점차로 거리가 좁혀지는 공간에서 점점 더 내밀성을 향해 치닫는다. 인간 커플도 지리적, 사회적 제약을 거치고 의복의 제약까지 넘어서도록 가까워지면, 마침내 내부적 공감각이라 불리는 동작의 일치를 나타내는 단계에 다다른다. 

 

남성들 중 3분의1은 여성이 느끼는 쾌감의 시기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대개가 조루문제다. "남편이 저에게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저는 남편이 미워요. 오르가즘을 느끼게 되면 남편에게 굴복당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나는 남편에게 신세지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어요. 나는 감당 못할 쾌락을 느낄까봐 겁이 나요.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쾌감에 빠져들었다가 나 자신을 억제하지 못할까봐 두려워요. 내가 쾌락의 노예가 될까봐 두려워요." 이런 여성의 파트너라면 당연히 조루를 보일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남성들도 좀더 부드럽고 쾌감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과 만나면 관계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여성과 관계를 하다가 그 여성이 나에게 커다란 쾌감을 안겨주면, 나는 모든 것들을 그 여자에게 바치고 말 것 아닙니까. 여자 때문에 행복을 느낀다는건 결국 그 여자의 노예가 되는 겁니다. "

 

여성은 이상적인 배우자를 사회적, 비교행동학적 제약에 따라 선택한다. 알콜 중독자 아버지를 둔 딸이 알콜중독자 남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 여성들은 무의식적 욕망과 사회적, 비교행동학적 힘에 의해 알콜중독 남성에게 마음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신경증적 증상을 가진 커플들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준다. 마약중독자, 충동적인 기질의 사람, 공항장애를 가진 사람, 우울증을 앓는 사람 등이 동류와 커플을 이루는 사례는 매우 많다. 이들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편집증을 가진 남편은 아내가 방에 들어오면 일어선다. 남편은 성관계를 가질 때도 말 한마디 하지않고 냉담하지만, 아내를 대하는 태도는 지극히 공손하다. 이런 남성은 여자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기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아내를 배신하지 않는다. 이런 부부는 냉담하지만 오랜 기간동안 커플을 유지해간다. 뜨거운 혈기를 가진 피가학적 증상의 남성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는다. 여성에게 얽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행동이 반듯하고 엄격한 여성과 결혼한다. 이런 커플들은 도저히 합쳐질 수 없는 너무나 다른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결혼으로 맺어진 두 사람은 함께 어우러져 살지는 못해도 한 사람은 조용히 춤을 추고, 또 한사람은 냉담한 꼭두각시처럼 나름대로 떼려야 뗄수 없는 탄탄한 애착관계를 엮어간다. 그리고 남성의 포악함에 시달려본 여성중 많은 수가 공포감을 주지 않는 연약한 남성들과 결혼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난 다음 이런 여성들은 너무나 나약하다고 불평한다.바로 이런 성격 때문에 결혼했으면서...

 

여성의 권리가 신장된 오늘날, 새로운 커플이 등장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지적이고 활동적이며 수줍은 성격의 여성이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키도 작고 무난한 성격의 남성과 짝을 이루는 경우다. 자기보다 못한 남성과 맺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여성은 사랑하지도 않는 이 남성을 아주 상냥하고 너그러운 태도로 대한다. 이 여성이 이같은 결합을 선택하게 된 심리의 기저에는 지나온 삶의 역사가 깔려 있다. 즉 이 여성은 자신의 어머니와는 달리 남성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정어린 삶의 중요성을 과소평가 했던 것이다. 이 같은 욕망은 이 여성이 성장하면서 획득한 무의식의 흔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성적 매력은 주로 신체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신체가 문제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신체가 의미 작용을 하기 때문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신체가 성적매력을 발산하는 까닭은 무수히 많은 신호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군집을 이루어 살도록 되어 있는 종은 개체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 이 개체가 구애를 펼칠 때 구애행위를 통해 표현되는 것은 사회적인 신체다. 다른 개체가 아름답게 보인다면 이는 곧 그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개체는 유전적으로나 애정적인 관점에서 볼때 적당한 거리에 있다고 봐도 좋다. 내가 그 개체를 신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기기 때문에 접근한다. 그 개체의 신체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으며 의상을 비릇해 화장, 제스처는 수 많은 정보를 세공한다. 왜냐하면 성적 매력을 발산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개체가 내가 좋아하는 방식의 성적 매럭을 발산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 내가 그 개체에 적합한 파트너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여인이 입은 옷에서 풍기는 자태며, 자연스럽거나 짙은 화장, 멋부린 구두만 보고도 함께 살면 행복해 질 수 있는지 대번에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옆이 터진 드레스며, 목이 깊게 드러나 보이는 상의. 보석, 제스처만 보고도 첫눈에 우리가 사회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짝을 이룰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이같은 정보들은 우리가 이제 만나게 될 존재에 대해 말해주고 그 존재의 사회적 담론과 삶의 비젼을 엿보게 해준다. 이 여인의 모든 비교행동학적 무의식이 감각적 의사소통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인의 드레스를 쳐다보고, 향수를 음미하고, 보석에 감탄하는 비교행동학적 찰나에 그 어떤 장황한 말도 전하지 못할 수 많은 정보를 얻는 셈이다.

 

우리는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매우 제한된 선택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연이 멋진 만남을 만들어 낸다고 믿는다. 하지만 비교행동학적 여건과 의미를 갖는 미적 기준, 그녀의 옷입는 방식이며, 치장하는 방식 등에 의해 공간적 접근성은 더욱 줄어든다. 마침내 그녀의 곁에 다가설 수 있지만 그녀가 추는 춤, 억양, 목소리와 향수의 관능성, 눈빛, 의미로운 자태 등으로 선택의 공간은 더욱 좁아지며 이제 그 공간은 도로표지판 못지않게 명확하다. 이제 우리는 그녀를 품에 안고 접촉하고 애무한다. 서로의 욕망이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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