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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 존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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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수학 우리는 어떤 그림이 진짜 실물처럼 보인다고 말하고, 또 그렇게 믿곤 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실물엔 깊이가 있는 반면, 그림은 평평하다. 그러므로 실재하는 물체를 평평한 그림으로 바꾸는 작업엔 일종의 약속이 개입한다. 언어처럼 말이다. 그리고 언어와 마찬가지로 그 약속도 배워야 한다. 아이들은 우리가 나무라고 부르는 복잡한 실체를 모든 색깔과 형태, 결, 부피, 명암속에서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중 어떤 성질을 어떤 방법으로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 아이들은 나무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알게 된 나무의 상징을 그렸을 뿐이다. 거대한 상형문자를 그리듯이 말이다. 베티 에드워드의 책 ‘우뇌로 그림 그리기’를 읽으면서, 나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그림을 못 그리는지,..
스포츠와 삶의 리듬 어린 아이들의 용기는 변동이 심하다. 두 살 정도 된 아기가 엄마와 산책을 하거나, 혹은 놀이터나 공원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면 이런 변동을 아주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얼마전 보스턴 시민공원에 갔을 때도 이런 장면을 보았다. 엄마들이 벤치에서 수다를 떠는 동안 아이들은 주변을 돌아다녔다. 처음 얼마간 아이들은 엄마를 무시한 채 대담하고 자유롭게 탐험에 나섰다. 그러다가 저장된용기와 자신감을 모두 써버리면, 다시 엄마에게 돌아와 마치 배터리를 충전하듯 옆에 착달라 붙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탐험을 할 준비가 되면 아이는 엄마 곁을 떠났고, 충전이 필요해 지면 또다시 돌아오길 반복했다. 이런 식으로 아기 또한 탐험과 후퇴, 충전의 시간을 반복해서 갖는다. 어린 자녀에게 헤엄을 가르치려는 부..
이탈리아어를 처음 배우는 과정에서 나는 간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시절에만 해도 대부분의 유럽상점들은 어릴 적 내가 본 뉴욕의 세탁소 처럼, 이 가계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알려주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단어들을 혼자 쉽게 익힐 수 있었다. 만약 아이들이 글쓰기는 말을 하는 한 방법이고, 읽기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 훨씬 더 즐겁고 생기발랄한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지 않을까싶다. 나는 아이가 처음 시도한 '알 수 없는 낙서와 글쓰기'의 관계가 아기의 첫 재잘거림과 말하기' 의 관계와 같다는 것을 이해한다. 아이의 글쓰기 옹알이를 격려하고 북돋워 주어야 한다. 그러면머지않아 그 아이는 자신의 글이 다른 사람의 것과 다르..
책을 읽어주기, 아이의 시간표 부모가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는 것은 많은 아이들이 읽기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마술 알약이 아니다. 만약 책읽기가 부모에게나 아이에게나 재미없는 소일거리에 불과하다면, 좋은 결과를 주기보다 해악을 끼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누군가 책읽어 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부모가 그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 역시 흥미를 잃게 된다. 아이들은 어른의 감정을 아주 예민하게 감지한다. 아이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서 책을 읽어준다면 아이는 훨씬 더 듣기에 집중하고 즐기게 될 것이다. 또 한가지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점은 아이에게 책을 사주면 십중팔구 그 책을 읽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어른들의 얘기를 듣는 것을 즐긴..
희미한 감이 확신이 되기까지 우리는 아기가 아는 것, 혹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에 너무나 익숙해서, 새롭고 낯선 것을 배운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잊어버렸다. 우리는 실제와 관념의 세계를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 이 두 개의 범주로 딱잘라 나누고, 많은 것들이 모르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 바로 옮겨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름이나 전화번호 처럼 간단한 것조차 방금 듣고 그것을 안다고 확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다 잊어버리고서 말이다. 아이가 자신의 감에 확신을 갖기까지 올바른 감을 잡고, 그걸 시험하여 확인하는 절차를 여러번 반복해서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맞다는게 증명될 때마다 아이의 감은 점점 더 강해지고 확실해진다. 하지만 이 감이 우리가 생각하는 확실한 지식이 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익숙해질 시간을 주라 아이가 자기식으로 막대를 가지고 놀도록 놔두었어야 한다. 아이는 거기서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아내고 오직 자신의 눈과 손가락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천천히 그 막대들의 가능성을 탐색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아니 이해할 수 있거나 할 줄 아는 일이 얼마나 적은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 이런 자극은 굉장히 겁나고 치욕스러운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아이들에겐 자신의 무지와 서투름이 고통일 때가 많으므로, 아이들에게 자신의 약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교사보다는 자기보다 약간 나이 많은 아이들에게서 더 잘 배우는 이유는 단순히 그 아이들이 어린 아이들의 말을 잘 알아듣고, 그런 방식으로 말할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
아이의 자존심과 긍지 아이들은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를 배울 수 있으며, 실제로 그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말하게 된다. 이른바 표준언어로 말하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네 말은 어딘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건 오로지 해만 끼칠 뿐이다. 아이 말을 듣는게 너무 즐거워서 그와 같은 실수에 대해서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는 이라면, 누구나 사람들이 자기 없이는 아무것도 해나가지 못할 거라고 믿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은 사람들이 제 발로 일어설 수 있다는 증거를 보고 듣는 일을 제일 싫어한다. 아이들의 감각은 예민하며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른들처럼 하게 되길 원한다. 따라서 우리가 능숙하게 말을 잘하면, ..
진실하게 반응하라 우리는 흔히 단어가 언어를 이루는 기본단위이자 가장 간단한 요소이므로 말을 배울 때 단어를 제일 먼저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단어를 제일 나중에 배운다고 하는 편이 더 맞다. 아이들은 말은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큰 개념을 먼저 배운다. 우선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에는 뭔가 뜻이 있으며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사람들의 음색과 말하는 당시의 전후 상황에 비추어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대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다음단계로 문법의 윤곽을 대강 눈치 채게 된다. 그러고 나서야 마침내 아기들은 단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문법에 관해 자신이 세워둔 대강의 모델에 맞추어 이 단어들을 조립하게 된다. 아이가 여러 물건들을 가리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