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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 존 홀

진실하게 반응하라

우리는 흔히 단어가 언어를 이루는 기본단위이자 가장 간단한 요소이므로 말을 배울 때 단어를 제일 먼저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단어를 제일 나중에 배운다고 하는 편이 더 맞다. 아이들은 말은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큰 개념을 먼저 배운다. 우선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에는 뭔가 뜻이 있으며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사람들의 음색과 말하는 당시의 전후 상황에 비추어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대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다음단계로 문법의 윤곽을 대강 눈치 채게 된다. 그러고 나서야 마침내 아기들은 단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문법에 관해 자신이 세워둔 대강의 모델에 맞추어 이 단어들을 조립하게 된다.  아이가 여러 물건들을 가리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물건의 이름을 묻는 법을 하나 알려주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말을 많이 하는 가족 사이에서 태어난 관찰력 있는 아이라면 굳이 마음먹지 않아도 물건의 이름을 쉽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궁지에 몰아넣어서 아이가 틀리는 경우 자신은 잘못하고 있고, 그래서 잘못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테스트는 아이로 하여금 배움의 의미를 오해하게 만든다. 배움이란 사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단지 어른들을 기쁘게 하는 해답을 알아내서 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명심해야할 또 하나는 아이들, 특히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이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하거나 날카롭게 묻는다면 아이들의 이해는 오히려 약화될 가능성이 많다.  반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그대로 놔둔다면 아이의 이해력은 더욱 빨리 성장할 것이다. 아이들은 인쇄된 글자와 실제 말을 할 때 나는 소리와 연관성에 대해 막연하지만, 풍부한 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충분한 시간을 주면 아이들은 재미로 글을 읽으면서 서서히 그런 감들을 시험하고 확인 해서 자신이 진짜로 알고 있는 것으 일부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어른들이 이 글자는 뭐고 저 글자는 뭐냐는 식으로 끊임없이 물어서 아이들에게 부담을 준다면 그런 감마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 결과 아이들은 결국 자기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해할 수 없으며, 모든 정보를 어른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믿게 되기 쉽다.

 

아이들이 물건의 이름을 배우도록 도울수 있는 좋은 방법 하나,는 아이와 함께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아기는 말로 표현하지는 못할지언정 여러 단어들 사이의 차이를 알고 있을 수는 있다.  아기가 같은 단어를 끈덕지게 반복하거나, 어떤 표정과 음색으로 뭔가를 엄청나게 말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릴 때면, 우리는 그 얘가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그만큼 열심히 알려고 노력해야한다. 어떤 사람들은 한두 번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면 ‘도대체 뭘 말하는건지 모르겠다’며 금세 포기해 버린다. 하지만 그건 아기에게 좋지 않다. 브루노 베텔하임은 여러번 지적했다. '세상과 주변사람들에게서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아이의 노력이 몇 번 이상으로 좌절된다면, 아이는 그런 시도 자체가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 다고. 아직도 IQ를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능력이 아닌 선천적인 능력으로 보고 있는게 틀림없다. 말을 잘 할줄 아는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나누는 풍부한 이야기와 말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는 아이들로 하여금 말하기를 시도해 보도록 격려하는 자극제가 된다. 진짜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 아이들은 더욱 더 용기를 갖게 된다. 그들의 부모가 끈기있고 재간있게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반면 언어능력이 뒤떨어지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다. 아이가 말하기를 시도할 때에 이해와 격려를 받는 횟수가 더 적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의 말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느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해 받는다'는 것의 중요성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절절하게 와 닿는다.  8주 정도 밖에 안 된 아기들도 울음소리에 대해 응답을 받으면, 눈에 띄게 호기심이 왕성해지고 더 잘 웃으며, 오랜 시간 깨어있게 된다는 내용이다.  엄마가 아기에게 반응을 잘해줄수록 아기는 덜 울고 확실히 더 사람을 따르며 더 빨리 신뢰감을 형성하게 된다. 나는 격정적으로 울어대는 두세 살짜리 아이들의 노여움은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더 나쁘게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려 하지 않는다는 느낌, 혹은 자신의 말이 의도적으로 무시되거나, 아니면 무심결에 모욕적으로 밀쳐지고 있다는 느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아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려 할 때는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들어주어야 한다. 우리가 때로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는 더 깊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이들은 너무나 작고 어설프고 똑똑히 말도 못하고, 어수룩하면서도 너무나 귀엽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의 질문과 관심사의 중요성을 과소평가 하고는 그저 관대하게 웃어넘기거나, 무시해 버리기가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