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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 존 홀

희미한 감이 확신이 되기까지

우리는 아기가 아는 것,  혹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에 너무나 익숙해서, 새롭고 낯선 것을 배운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잊어버렸다. 우리는 실제와 관념의 세계를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 이 두 개의 범주로 딱잘라 나누고, 많은 것들이 모르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 바로 옮겨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름이나 전화번호 처럼 간단한 것조차 방금 듣고 그것을 안다고 확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다 잊어버리고서 말이다. 아이가 자신의 감에 확신을 갖기까지 올바른 감을 잡고, 그걸 시험하여 확인하는 절차를 여러번 반복해서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맞다는게 증명될 때마다 아이의 감은 점점 더 강해지고 확실해진다. 하지만 이 감이 우리가 생각하는 확실한 지식이 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이들이 가지는 맨처음의 감은 극도로 희미하고 시험적인 것이다.  내가 악보 읽는 법을 익히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이유중 하나는 자신의 감을 믿으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시험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은 희미한 감을 반복적으로 확인 함으로써, 확실한 지식으로 바꾸어가는 아이들의 더딘 과정을 중간에 끊어버린다. 압력을 받으면 아이들은 자신의 희미한 감을 튼튼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그만둬버린다. 그냥 포기하는 것이다.  바보같은 질문은 아이들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하고,  화를 불러 일으킬뿐 아니라 아이들을 혼란에 빠뜨려 이미 배운 것 까지도 파괴한다. 아이들은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때 조차,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이 모든 일이 아이들의 자신감과 자존심을 무너뜨린다. ‘ 내가 스스로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이 믿고 있구나, 그러니 나도 나 자신을 믿을 수 있겠구나’하는 느낌이 아이 안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테스트는 학습자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배운 것을 일일이 누군가 체크한다는 것은, 그가 당신이 정말로 그걸 배웠는지 의심하며 염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이와 같은 불신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참혹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걱정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무너져 버린다.  어떻게 안 무너질 있겠는가?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믿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가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겠는가?  또 초조함에 사로잡힌 어른들의 끊임없는 시험이 그 아이를 무능력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아이들은 자신이 옳을 때도 여전히 틀렸다고 느낀다. 그들은 결코 ‘그건 이러할 것’이라는 자신의 감을 걸고 도박하지 않으려 한다. 그 감을 확신으로 바꾸려 들지도 않는다. 나는 아이가 책을 읽다가 실수 했을 때 그걸 바로 잡거나 지적하려는 유혹에 저항했다. 만일 내가 그렇게 했다면, 아이를 불안하고 소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는 자신의 감을 시험할 용기를 잃고, 나에게서 답을 받아낼 궁리를 하는 데 더욱 몰두했을 것이다.

 

지적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소수의 어른들만이, 그리고 더욱 소수의 아이들만이 다른 사람의 지적을 태평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적은 그들의 불안정한 자부심에 상처를 입히는 강력하고도 고통스런 타격이다. 아이의 실수를 지적해서 안되는 이유는 아이 스스로 자기가 한 실수의 대부분을 알아차리고 고쳐나갈 줄 안다는 점이다. 물론 그건 아이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뇌둘 때 부담감을 주지 않고 불안하게 만들지 않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많은 교사들은 자기가 없어도 아이들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아니 믿기 싫어한다. 아이들이 독서를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최대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정보다. 그러나 학교에서 사용하는 읽기 독본은 점점 더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더 쉽게 글을 배우도록 도와주겠다는 명목 아래, 무조건 읽기 쉬운 책들만을 주어 결과적으로 읽기를 더더욱 재미없고 거짓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아이들의 손이 닿는 곳에 너무 많은 정보를 가져다 놓는다 해서 아이들이 성처를 받지는 않는다. 그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 한 아이들은 필요한 정보를 골라서 쓰고, 나머지는 나중을 위해 미뤄둘 줄 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너무 적은 정보를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주 쉽게 아이들을 지루함과 혼란스러움에 빠뜨릴 것이다. 아이들은 실수를 알고 찾아내 고친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할 것은 이 능력이 발휘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며, 더욱이 아이가 부담과 불안을 느낄 때는 전혀 발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사의지지와 인정을 받는 것을 목표로 훈련되어온 아이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든 것이다. 어쨋거나 이런 반응을 통해 아이는 자신이 멍청한 짓을 했으며, 주변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런 상황에 놓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아이는 엄청난 수치심과 당혹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사고마저 마비되어 버린다. 일관성에 대한 감각 그러니까 사물이 서로 잘 맞아떨어져서 올바른 의미를 드러내는지, 그 여부를 감지하는 능력은 스스로 실수를 찾아내 고치는 경험에 의해 발전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지성을 사용하는 자신의 방법이 잘 통한다고 느끼고, 점점 더 거기에 능숙해져 이윽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이치에 맞고 어긋나는지, 알아낼 수 있게 된다. 반면 아이가 실수를 하자마자 그것을 지적하고 아이 대신 그 실수를 고쳐주기까지 한다면, 스스로를 점검하고 바로잡는 아이의 능력은 발전은 커녕 점점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하다. 교사들이 학습자에게 해주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하나는 학습자가 교사로부터 독립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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