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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저항과 체념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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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으로 정의되는 나 노화의 고통 탓에 나의 자아가 무수히 분열해 버린다. 내가 가진 몸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스럽게도 나를 가진 타인으로, 사유실체와 연장실체로, 기묘하게 더불어 사는 이웃들의 반응으로 추론해낸 ‘나’, 곧 사라진 시간으로 보존되는 ‘나’와 매일 변화하며, 늙어가는 나로의 분열은 정말 불가사의 하다. 우리가 그리는 자신의 그림은 혹시 사회가 강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도대체 내가 그리는 나의 모습이 가상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아는가? 우리가 처한 운명을 두고 성찰할 때, 부조리함과 혼란스러운 생각에 빠질 위험은 피할 수 없다. 늙어감은 우리에게 그런 성찰을 피할수 없게 만든다. 논리는 세계를 모사하려 안간 힘을 쓰지만, 세계는 늘 논리로 부터 멀리 달아나지 않는가. 모순으로 점철된 세상을 극복하고, 논리로..
나는 누구이며, 내가 아닌 나는 또 누구인가? 오르고 싶으나 너무 힘들어 지레 주저앉을 수 밖에 없는 산은 이제 노인에게 반反자아다. 뛰어들어 마음껏 헤엄치고 싶은 물은 특정 온도가 되어야만 견딜수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산에 오르고,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며, 계곡을 거닌다. 노인은 내쫓긴 것만 같은 우울함을 맛보며, 그저 자신에게 되돌려진 채 외로울 뿐이다. 이제 자연은 그에게 전혀 낯선 것으로 소외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부정하게 된 세계가 어디 한번 도전해보라고 을러대는 것이 항상 굴욕적이지만은 않은 공간, 곧 자신의 방으로 후퇴했다. 건장한 노인은 여전히 세계와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맛보려 흥을 붇돋운다. 이러한 노인은 덜 병들었을 따름이다. 객관성을 중시하는 의학과 과학까지 고려할 때, 늙어가는 사람에게 세상이 등을 돌린다는 ..
노화 늙어가는 인간, 즉 남자든 여자든 노화를 맞이하는 인간이 인생의 모든 정황에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태도는 늘 보기에 따라 달라지는 양면의 의미를 갖는다. 늙어간다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에게 그 어떤 경우에도 정상 상태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상이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을 뜻한다. 그러니까 노화와 죽음은 그 누구도 받아들일수 없는 사실일 뿐이다. 그런데도 오롯하게 사실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게 노화와 죽음이다. 노화와 죽음은 다른 사람이나 맞아하는 사건이라며 자신은 전혀 늙지도, 죽지도 않을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곁에 있는 사람이 늙어 죽어가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반면 우리 자신만큼은 살고 늙어가며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한사코 들어내려..
시간 속에서 나는 홀로 있다. 정신과 의사는 '정신병을 앓는 사람이 공간과 시간에서 방향을 잃는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공간에서는 실제로 정신적 손상을 입은 사람만 방향을 잃고 헤매지만, 시간에서는 건강한 사람도 얼마든지 방향감각을 상실할 수 있다. 시간을 헤아리기 위해 필요한 눈금표가 기실 노인에게는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다. 5년전이라고 해서 15년전과 다르게 느껴지는게 아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다시 바깥으로 나가는 일, 공간으로 나서는 일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죽음만 두려웠다. 나의 것으로 차지하는 내 공간은 동시에 타인의 공간이기도 하다. 공간은 서로 의사소통해 가면서 파악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시간에서 나는 그저 홀로 있다. 나는 내 시간과 더불어 혼자 있을 따름이다. 살아낸 시간, 그것은 그의 ..
시간의 무게와 죽음 지금은 피곤한 나머지, 길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좀 쉬고 싶다. 한때는 이제 위대한 미래가 나를 맞아주리라 믿었다. 나는 바램과는 다르게 바뀐 세상에 나를 맞추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내가 달라지기를 원했으며, 너무나도 불평등한 싸움을 치르게 하며 승리를 앗아갔다. 소신만으로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유혹만 남발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숨 좀 돌리며,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보리라. 가야할 길은 갈수록 더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며, 그에 반해 다리는 계속 짧아지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숨 쉬기가 힘들며, 근육은 허약해지고, 머리는 멍하기만 하다. 그러나 멍한 머리로도 얼마든지 살아있음과 헛되이 흐르는 시간을 이마에 갈수록 선명하게 새겨지는늙음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시간은 공간과 달리 현실의 논리를 알지..
늙어가며 시간을 발견한다. 생물의 시간은 구조를 만들어낼 뿐 구조를 해체하지는 않는 시간이다. 쉽게 말해 소멸이 아니라, 계속 생명을 빚어내는게 생물시간이다. 노인은 허망하게 사라져 가는 세월을 , 죽음의 무게를 이야기할 따름이다. 죽음은 시간의 순전히 시간적인 것에만 느낄 수 있다. 내가 공식으로 파악하는 시간과 공간? 정의를 내릴 수 있고, 공식으로 포장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이게 다 무엇인가? 20년전만 하더라도 청운의 뜻을 품었건만, 하지 않고 남은 게 없도록 어떻게든 안간힘을 썼거늘. 지금이라도 시간이 허락만 해준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련마는.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버렸고, 남은 시간은 거의 없구나. 시간과 공간은 낯설기만 하다. 시간은 내적 감각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니까 시간은 우리 자아와..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세월 인간이 나이를 먹는다는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이 글에서 밝혀보려 한다. 이 주제를 두고 벌이는 내 성찰은 이른바 노인의학과는 전혀 상관없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물음은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 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하는 점이다.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근접하게나마 충실하게 그리려는 노력은 성찰이라는 방법으로만 감당할 수 있을 따름이다. 속절없이 늙어가는 사람에게 그 쇠락을 두고 귀족같은 우아한 체념이라든가, 황혼의 지혜 혹은 말년의 만족이라는 말 따위로 치장해 위로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굴욕적인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미리부터 피할수 없다고 치욕스럽지만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게 늙어감이라고 둘러대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