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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저항과 체념사이에

노화

늙어가는 인간, 즉 남자든 여자든 노화를 맞이하는 인간이 인생의 모든 정황에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태도는 늘 보기에 따라 달라지는 양면의 의미를 갖는다.  늙어간다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에게 그 어떤 경우에도 정상 상태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상이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을 뜻한다. 그러니까 노화와 죽음은 그 누구도 받아들일수 없는 사실일 뿐이다. 그런데도 오롯하게 사실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게 노화와 죽음이다. 노화와 죽음은 다른 사람이나 맞아하는 사건이라며 자신은 전혀 늙지도, 죽지도 않을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곁에 있는 사람이 늙어 죽어가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반면 우리 자신만큼은 살고 늙어가며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한사코 들어내려 한다. 늙은 여인이 류머티즘을 노화의 정상적인 과정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지 않았듯, 노화라는 것은 그 자체로만 보면 정상이 아니라 일종의 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늙어가는 인간으로서 병에 걸렸다가 다시 의학이 말하는 의미에서 건강해질 수는 있다.  그렇지만 다시금 건강을 회복하였다 하더라도, 유기적인 생명이 나선형을 그리며 기능을 상실하는 모습에서 더 낮은 점으로 떨어질 뿐이다. 그러니까 예전처럼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는 경우는 결코 없다.

 

노화는 불치의 병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아픔인 탓에, 우리가 인생을 살며 그 어떤 단계에서 빠질수 있는 절절한 고통과 현상적으로 같은 법칙의 지배를 받게 마련이다.  자신이 젊게 느껴진다고 주장은 하지만, 실제로 절대 청년일 수 없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건강이 좋은게 아니다. 좋든 나쁘든. 느낌을 가진다는 말은 그 자체가 별로 신뢰성이 있지 않다. 건강한 사람은 세상의 일과 사건에 충실할 따름이다. 건강한 사람은 자기 바깥에 머무른다. 늙어가는 사람은 갈수록 세계를 잃어가는 '나'가 된다. 늙어가는 사람은 갈수록 자신을 몸으로만 바라보며, 몸은 더욱 주의를 기울인다.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거울을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핏줄이 불거진 손을, 축 늘어져 주름이 잡힌 배를 ,정성들인 손질에도 두꺼워지고 갈라져 버린 발톱을 보는 것을 피하기만 할 수 없다. 비늘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내리는 피부를 만질 때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럴수 없다.

 

몸은 당연하게만 여겨온 기능을 잃어버릴 때에만 소중히 다가온다아프기만 한 다리, 무거운 숨결, 염증으로 시달리는 관절은 세계와 공간을 우리에게 막아버리는 장애물이다. 이렇게해서 몸은 감옥이 된다. 이 감옥이 마지막 안식처이다. 몸은 껍데기가 된다. 몸은 인간이 지닌 가장 지극한 진정성이다. 결국에 가서 생명의 권리를 담보하는 것은 언제나 몸이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우리 자아의 부분이자 지분으로서 세계 였던 몸은 시들어가며 졸아든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 시드는 몸이 우리 자신의 분명한 부정이 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