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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노예(로버트 라이시, 오성호

개인의 선택(1)

학교나 대학, 아동보호, 의료보험, 세금, 투자수익 등에 있어 최고의 계약을 이끌어낼수 있는 사람들, 다시말해 협상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들의 주가는 이미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교육수준이 높으며 건강하고 돈이 많고, 경제적인 안정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협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 경제적인 변화로 가장 큰 부담을 지게되는 사람들은 자식들이 가장 형편 없는 학교를 어쩔수 없이 다니고, 대학진학은 거의 생각하기 힘들다. 또 이들이 점점 사회적으로 고립되면서 인맥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은 신경제와의 끈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결과를 의도적으로 계획한 사람은 없다.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각 개인이 내린 결정이 함께 모여서 비롯된 결과다. 자의에 의해 자신보다 더 못사는 지역을 선택했다고 해보자. 이럴 경우에는 편안한 이웃, 좋은 학교, 명문대 진학의 기회, 양질의 의료서비스, 귀중한 인맥 그리고 더 배타적인 자역에 속해있는 데서 오는 여러 가지 혜택, 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 합리적인 사회라면 사람들이 이렇게 숭고한 판단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된다. 분류과정의 효율성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의 회원권이 주는 혜택과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 살 수 밖에 없는 데서 오는 비용의 푹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판돈이 더 올라가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대부분 과거보다는 더 잘살고 있다. 가지고 있는 것도 많다. 여러면에서 구매자의 천국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풍요의 시대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우리 삶의 여러 면에 대한 걱정이다. 가족의 붕괴, 배우자나 부모로서 우리 자신의 부족함, 지속되기 어려운 진정한 우정, 언제 깨질지 모르는 우리 사회, 우리 자신의 도덕성 유지 등에 관한 걱정이다.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정신적인 노력을 돈 버는 것에 집중하고 있으며, 일 외의 생각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일하는 중이나 심지어 잠잘 때에도 우리는 일만을 생각하고, 일 때문에 기뻐하고, 때로는 걱정한다. 항상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 새로운 것을 만들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확신을 심어주고, 판매해야만 하는 상태는 우리를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만든다. 일에 너무 빠져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위해 우리의 힘을 할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삶의 나머지 부분 역시 구조조정 당하고 외주업체에 맡기는 등의 분류과정을 겪고 있다. 과연 이것이 우리의 선택이란 말인가? 과연 이것이 성공의 미래란 말인가?

 

경제학자나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은 어떤 사람이 원하는 것을 측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라 한다. 심리학자나 정신분석 학자들은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실재로 무엇을 원하는지는 그 사람이 선택하는 것을 보면 안다고 한다. 만약 다른 사람과는 다른 중요한 가치에 따라 살기를 원하고, 그러한 선택이 가져다 줄 희생을 기꺼히 감수할 수 있다면, 아마 그렇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 많이 벌면 벌수록 더 열심히 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 열심히 일한다고 돈을 더 벌어서가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함으로써 벌 수 있는 것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대학생들도 더 열심히 일해 더 많은 돈을 버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의 자녀가 자신의 인생을 준비하면서 습득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는 조사가 매년 실시 된다. 보기로는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 복종, 열심히 공부하는 것,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 다른 사람들을 좋아하고 인기가 많은 것 이렇게 다섯가지가 주어진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자신이 원하기 때문에 자신과 자녀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삶의 균형유지는 잊어야 한다. 가족과 친구, 지역사회와 개인적인 소명 등이 중요하며 , 이러한 삶의 나머지 부분을 위한 공간을 만들라는 말은 카메라를 의식한 껍데기 같은 '척' 하는 태도일 뿐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은 그 선택에 따른 결과가 있기 때문이고, 그 결과는 사회가 내린 선택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한 죄수가 철조망이 처진 높은 담을 기어오른다고 해서, 그 죄수가 그런 행동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의 주변환경이 그를 이렇게 위험한 행동을 하는 쪽으로 유도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왜 30년전보다 더 열심히 일할까? 과거보다 일을 더 헌신적으로 받아들인다거나, 진화단계에서 한단계 발전했기 때문은 아니다. 왜 오늘날 부모들은 불과 몇년전의 부모들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까? 다시 말하자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때' 올 결과에 대해 부모들을 더 걱정시키는 어떤 상황이 발생했음이 틀림없다. 사람들이 왜 아기를 덜 낳을까? 과거보다 아기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다. 어느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몇 년 전보다 그렇게 더 중요해졌을까? 

 

지금 예로든 모든 상황에서 한 개인의 일과 삶에 대한 선택은 개인의 차원보다 더 큰 사회적인 변화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여러가지에 의해 영향을 받는 매우 복잡한 생명체다. 기술과 경제의 변화가 우리 일의 구성 및 보상방식을 어떻게 바꾸었고, 또 이로 인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앞으로 수입은 더 예측하기 어렵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게되면, 현재 행동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햇볕이 내리쬘때 건초를 만들어야 한다. 미래에는 수입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위험이 있으므로, 지금 직업이 있을 때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한 수요가 높다면, 더 많은 돈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봉급외 푸짐한 고용혜택과 함께 사무실 아래 층에 헬스클럽이나, 사우나 시설이 있을 정도로 근무환경이 뛰어날 가능성도 있다. 단순직에 종사하고 있다면 과거보다 봉급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지금 받아오던 고용상의 혜택도 없어질지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생활수준에 상대적으로 못미칠 경우 가정의 수입을 지탱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반대로 잘 풀리지 않는 경우는 물론이고,  돈을 많이 버는 경우에도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는 다르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을 때 감수해야 할 희생, 일이 주는 도전정신과 재미 외에도 포기해야 할 추가수입과 각종 부수입 등의 혜택은 과거 경제 때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현재 잘해 나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상태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시장 상황은 빨리 변하고, 고객은 쉽게 옮겨갈 수 있는 다른 여러 조건이 제시되고 있으며, 경쟁은 치열하기 때문이다. 고객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인맥을 개발하고, 자신의 분야를 새로운 기술에 항상 보조를 맞추어 야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수입이 대폭 줄어들고, 하는 일도 재미가 훨씬 덜할 것이다. 능력있게 일을 처리한다고 해서 꾸준히 승진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게 해주는 대기업 소속이 더 이상은 아니다. 점점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확장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친구나 심지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까지 모든 인맥을 동원해야 할지도 모른다. 특정 회사나 조직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대신 자신의 이름을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분류과정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자신을 효과적으로 판매하고,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벌어들인 수입을 자신처럼 성공적인 사람들과 함께 관계를 묶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매력적이고 안전한 지역에서 이들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편안한 시설을 갖춘 헬스클럽 회원이 되고, 합리적인 가격에 여러 보험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으며, 환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의사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와 명망있는 의료기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면, 분류과정의 풋대접을 받을 수 있다. 과거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다른 이유로는 모든 면에서 성패에 따른 득실의 폭이 훨씬 더 커졌기 때문이다.  젊은 대학생들이 과거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더 관심을 두는 것은, 앞으로 거둘 경제적인 보상이 과거보다 더 커졌기 때문이고, 경제적인 부를 더 성취하지 못했을 때의 결과는 과거보다 더 힘들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들의 학습에 더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기를 덜 낳는 것도 일로 인해 아기가 뒤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선택은 아직도 자신에 달려있다. 아무도 돈을 벌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하라거나, 일에 매달리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한편으로 보면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 보면 전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왜냐하면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얻거나 잃을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더 열심히 일했을때 얻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 잃게되는 것이 과거보다 크며, 특히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심하기 때문이다. 이제 개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에 과거보다 더 불굴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되고,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삶을 단순화 시킨다면, 우리가 원하는 그 균형은 우리 능력안에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지금과 같은 구매자의 천국의 시대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걱정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경제와 사회라는 큰 틀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이는 진실의 많은 부분을 놓치는 것이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를 불필요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는지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정확히 알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일을 떠나서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고, 또 내가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다.  뭔가 부족하다는 막연하고 불안한 느낌은 가질 수 있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인식한다 말인가?

 

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총을 발사했다는 사고에 충격을 받지만, 그 사건이 잠잠해지고 신문기사가 사라지면, 우리는 다시 돈 버는 일로 돌아간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이 더 압박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과연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가계를 꾸려 나갈 뿐아니라, 아이들이나 남편 , 노인을 돌보는 커다란 책임까지 떠맡고 있다. 남자의 경우는 삶의 무엇인가가 폭발했을 때, 그런 고통의 순간이 찾아온다. 결혼일 수도 있고, 자신의 건강일 수도 있으며 갑자기 문제를 일으킨 아이일수도 있다. 아니면 일에 대한 압박감으로 한밤중에 식은 땀을 흘리며, 잠을 깰때도 이러한 순간이 찾아온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있다고 가정을 하고 과연 어떤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때 가서 되돌아볼 때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무엇일까? 아마  죽을 때 사무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선택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선택으로 인해 잃게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삶에서 무엇인가가 바뀌어야 한다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도 더 어려운 것은 정확히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