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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노예(로버트 라이시, 오성호

하나의 상품으로서의 지역사회 (1)

지역사회는 가족이 다 못해주던 것을 해주곤 했다. 가정교육은 그 지역의 공립학교에 길을 내주었고, 아픈 사람은 집에서 돌보다가 지역 병원으로 옮겨갔고, 도서관과 운동장이 주민에게 개방되면서 이런 것을 갖추고 살 수 없는 대부분의 가정이 혜택을 입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이웃과 같이 하지 않는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자기 판매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보니 이웃과 어울릴 여력도 없다. 그래도 더 이상 이웃과 같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 같이 하고 있다. 아동보호, 노인보호, 학교, 의료서비스, 헬스클럽, 오락시설 등에 우리는 소비자로서 참가한다. 상품과 투자에 있어서 우리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가져다 준 통신, 운송,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누구와 함께 하고 또 무슨 목적으로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버리고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다른 지역사회로 바꿀 수 있다. 개인적인 관심과 마찬가지로 지역사회 역시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내는 돈만큼 얻게 되고, 우리가 얻는 것에 대해 정확히 필요한 액수만 지불할 뿐이다.

 

산업화 시대로 들어서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대부분 대가족 제도 하에서 함께 살았으며. 이웃이라는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에는 최소한 한 두 세대 동안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지 않고 그 지역에서 계속해서 살았다. 이런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은 지루함과 기회의 제한이라는 대가를 치르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편안하게 서로를 돌보며 살아갔다. 현재는 자신이 태어난 지역을 떠나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를 선택하며 함께 어울린다. 운명으로 받아들이던 것에서 선택으로 바뀜에 따라 공동체생활이 더 풍성해지고, 더 조화롭고 헹복해질 것이다.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때는 어느 지역 사회에 속해 있느냐 하는 것이, 개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회의 참여자로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 기여했으며, 각 개인에게 할당된 만큼을 취했다. 지역 전체를 위한 생산이었고 서로의 아이들이나 환자와 노인들을 보살펴 주었다. 이제 자신의 경제적 여건하에서 적절한 지역사회를 선택한다. 그 사회에서 나가는 것도 쉽고 얻을 수 있는 혜택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회에 헌신할 필요도 없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과거와 같은 도움이나 안정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언제든 그 관계는 끝날 수 있다. 물론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선택이 자유롭고 다른 조건으로의 이동이 쉬워지면서 자신과 거의 비슷한 수입능력, 리스크, 욕구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스스로를 분류하고 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어디에 사는지와 얼마를 버는 지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입이 줄어든 사람은 결국 가난한 지역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이 지역의 학교는 최하수준이다. 의료 시설도 낙후되어 있다. 이렇게 수입에 따라 지역사회가 분류되는 현상은 몇 년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분류과정을 거쳐서 사회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지역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정작 도움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자신이 어떤 지역으로 집을 사서 들어갈 때에는 그 투자에 대해 높은 수익이 돌아오길 원한다. 가격도 최고, 서비스도 최고, 같이 사는 이웃도 , 이렇게 자신의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상태를 원한다. 자선 사업이 아니라면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결국에는 그 사람들을 도와줄 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살던 사람들이 굳이 앞장 서서 이사 오게 되면, 자신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야 할 사람을 끌어들이거나그런 사람들을 위해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각 개인은 자신에게 최고의 조건을 제시하는 단체나 집단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대학이나 초중고등학교, 놀이터, 양로원, 의료시설도 최고의 곳을 찾는다. 그리고 그런 단체는 기여는 가장 많이 하면서 요구는 가장 적게 하는 사람을 구성원으로 끌어들이려고 경쟁한다. 그 결과 가장 바람직한 후보들은 자신끼리 모이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보다 가치가 떨어지거나 요구사항이 많은 사람들은 배척하게 된다. 아주 냉정한 계산처럼 들리겠지만, 이는 사회 표면 아래 묻혀 있는 자본주의 법칙을 드러내는 것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더 좋은 조건으로의 이동이 쉬워지면서, 이 법칙은 점점 더 분명한 모습을 띠어갈 가능성이 있다. 지금 말한 분류과정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내린 결과일 뿐이다. 주거지역이 상품화 되면서 다시 말해 일반상품과 마찬가지로 한 지역이 시장에 나오면, 그 가치를 평가하고 구매하는 형태가 되면서 구매자는 자신의 원하는 바로 그 상품을 얻는 것이 더 쉬워지고 있다.

 

기혼의 자녀가 있는 가정이 줄어들고, 노인 가정이 늘어나면서 학교가 더 나빠져도 좋으니 세금을 덜 내겠다는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가구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지역도 있다. 반면에 미국 시 당국에서는 중산층의 주거자와 사업주를 위한 특별서비스 구역을 만들고 있는데, 이들은 쓰레기 수거와 청소, 치안 서비스를 더 받는 대신, 그 서비스가 자신들의 구역 내에서만 이루어질 때에 한해서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다. 1970년대에는 사설 경호원보다 공공경찰의 수가 더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경찰보다 사설 경호원 수가 세배 더 많다. 캘리포니아는 네배에 달한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친구가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아이의 능력에 관계없이 자신보다 잘하는 아이들과 같이 있을 때 평균적으로 더 잘하게 되고,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더 못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잘하는 학생들과 처지는 학생들이 함께 있을 때보다 처지는 학생끼리 있을 때 도움을 받는 것이 더 크다. 좋은 선생님들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할 빈곤 자녀들은 역시 같은 상황에 있는 아이들과 처음부터 활용할 자원이 거의 없는 학교 시설에 함께 묶이는 현상이 더 늘어나고 있다.

 

주민들이 부유한 지역과 빈민촌으로 분리됨에 따라 가난한 학교의 질은 더 떨어진다. 신경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능과 독창성, 자기 판매능력 그리고 인맥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다니는 학교의 질과 아이가 사는 지역의 성격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점점 더 효율성이 높아지고 있는 분류가정을 통해 학교와 지역에 따라 아이들이 분류되고 있다. 부모들이 행동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개인에게 합리적이라고해서 국가에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 그리고 리가 시민으로서 선택한 결과가 국가의 장래에도 반드시 합리적인 결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대학들이 치열한 경쟁상태에 놓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을 유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학생과 마찬가지로 대학도 전국 수재들에 관한 정보가 과거보다 더 풍부해졌다. 수재를 들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 대학들은 과거보다 더 좋은 조건의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다. 특출한 재능, 뛰어난 조직력, 학습에 대한 높은 동기의식을 가진 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몇 개의 명문대학으로 몰린다. 앞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은 확률의 대학을 들어간다. 이렇게 모인 학생들은 자신들의 성공 가능성을 더 한층 다져간다.

 

서로 재능과 야망을 가지고 서로에게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학교를 통해 얻은 풍부한 인맥은 전체 학생들을 위한 더 좋은 일자리로의 안내자 역할을 해 준다. 이들이 이렇게 모여 있으므로, 그 학교 브랜드의 명성은 꾸준히 상승한다. 이들보다 능력과 동기의식이 떨어지고, 수학능력 시험점수가 낮은 학생들은 소위 2류대학을 들어간다. 이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명문대학 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뛰어난 인맥을 갖게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 아래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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