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유한 노예(로버트 라이시, 오성호

사회의 선택(1)

미래의 모습에 대해 확신할 수 없지만, 현재 추세로 보아 어떤 부분이 미래에도 계속될지는 이미 분명하다. 가까운 장래에는 소비자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유리한 가격에 원하는 것을 즉시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다. 또 좋은 조건이 나타나면 눈깜짝 할 사이에 그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투자자들 역시 더 좋은 조건을 발견하면, 즉시 그 쪽으로 자신의 돈을 이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수요가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더 좋은 기회를 찾아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일자리는 풍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하는 것도 많다. 현재 우리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경제시스템은 우리에게 경제적인 불안감, 더 맹렬히 달려들어야 하고 또 삶의 나머지 부분을 더 침해하는 일, 수입과 부의 불균형 심화, 사회계층화 현상의 심화 등도 안겨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삶, 가족의 삶, 지역사회 내에서의 삶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원하고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물어보아야 때인 것 같다. 다시 말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사회적인 선택 사항들을 검토해 보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첨단기술 경제의 부상은 어느 누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 가지 기술에 이어 또 다른 기술이 개발되고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한 확실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은 채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통신, 운송, 정보관련기술이 이렇게 빨리 발전할 것이라고 그 누구도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몇 십년전에 미국의 하늘에 거대한 요정이 나타나 커다란 선택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상상해보자. 현재의 경제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지금 상태 대로 계속 일을 하든지 아니면,  다음 조건을 한번 생각해 보라. 다음 세기가 시작할 무렵 너희들 일부는 엄청난 부자가 되고, 대부분은 구매 측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맞이할 것이며, 경제규모가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제안하는 조건의 이면은 이렇다. 너희들 일자리는 더 불안해지고, 수입을 예측하기힘들게 될 것이며, 수입과 부의 불균형이 더 심화될 것이며, 사회분화 현상을 겪게 될 것이다. 더 열심히 일하게 될 것이며, 삶의 나머지 부분은 심한 압박을 받을 것이다. 자, 여러분들의 선택이다.

 

현재 모든 것을 다 아는 상태에서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전례가 없을 정도의 경제적인 번영이 과연 그 대가를 치를 정도로 가치가 있을까? 실제로 경제시스템에 대한 모든 종류의 선택은 사회가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지 알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자유시장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으로 개인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무수한 판단이 모두 합쳐져서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다까지가 나의 판단이고, 당신의 판단이고, 우리의 판단일까? 논리와 분석만 가지고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문화나 시대에 따라 그 답은 다를 것이다. 답은 한 사회의 가치에 의해 내려진다. 우리 경제의 진화 과정은 수없이 많이 영리하고 근면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계약, 은행과 증권시장의 구조, 과세대상, 특허 및 저작권, 노동, 무역 등에 관해 내린 수많은 결정에 의해 좌우 되어왔다. 판사나 국회의원, 논설의원 그리고 일반시민 모두,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해 나갈 때에는 과연 어떤 대안이 경제성장에 가장 큰 도움을 주었으며, 물가를 내리고 더 좋은 상품을 생산해서 소비자의 복지를 증진시키느냐에 기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정함을 가지고 결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장과 공정 외에도 그런 선택이 우리의 전반적인 삶에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를 고려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경제시스템이 경제적인 안정, 개인의 도덕적 가치, 가족간의 유대, 선량한 시민의식 등에 가장 큰 도움이 될지 등에 대한 고려다.  산업시대에도 우리가 겪고 있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그 수가 증가하던 중산층은 당시의 신기술에 기반을 둔 대량 생산에 힘입어 각종 기기, 자동차, 신발, 옷, 주방용품, 가공품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상품을 접할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이러한 이점 뒤에는 대가가 있었다. 그 전의 미국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지역이 농업에 의존하고, 주민끼리 친구로, 이웃으로 서로 알고 지내는 조그만 마을의 자급자족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반세기도 채 안되어 이민자와 가난한 사람들, 거대기업, 수입과 부의 불균형 심화, 수천명의 봉급자를 고용하는 거대한 공장으로 가득찬 도시로 탈바꿈 한 것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새로운 산업시대의 질서속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것과 매력을 느끼는 것을 바탕으로 수없이 많은 개인적인 선택을 내렸다. 농장을 떠나 공장으로 갈 것인지? 마을 떠나 도시로 갈 것인지?, 그 동안 편안하고 익숙했던 것을 버리고, 더 높은 생활수준을 가져다줄 수 있고 지금보다 더 재미있는 것을 택할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인 선택은 그 시대의 사회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산업화 시대와 함께 경제적 불균형 현상이 급속도로 부상했다. 이에 대해 선진국들은 어떻게 했을까? 19세기 산업화 시대이전에 적합했던 법률, 규칙, 사회적 관습은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대기업들이 압도했던 국가경제의 새로운 도전을 수용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했다. 그렇지만 산업화의 길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수도 없었다. 따라서 미국은 당시의 가장 좋은 정보 , 미래에 대한 육감, 그리고 오래 지속되어 온 가치를 기초로 해서 선택으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또 그래야 하는 시기가 왔다.

 

과거 사회보장제도는 개인적으로 앞으로 어떤 위험에 닥치게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잘 살고 건강한 사람중 많은 사람들이 못살면서 건강이 나쁜 사람을 남겨두고, 기존의 사회보장제도 밖으로 나가는 선택을 하고 있다. 수입을 기준으로 미국인들은 스스로 분리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방 재산세에 주로 의존해 오던 빈민들과 근로자들이 사는 학교, 공원, 공공 여가시설, 도서관 그리고 기타 여러시설의 재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한 지역에 같이 있을 때는 지역재원에 의존하는 것이 합당했다. 그러나 부자와 빈민이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요즘에는 심각한 불균형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인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지금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앞으로 직업전망이 불투명하고, 제조업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데도 경제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역할 모델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두가지 모두를 갖지 못한 빈민가의 젊은이들이 신경제에서 발판을 마련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산업화 시대 초기와 마찬가지의 걱정이 신경제에서도 있다. 그것은 신경제가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주고, 가족과 지역사회가 사라지고 있으며, 수입과 부의 불균형은 심회되고 지역사회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우익단체가 이민자나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고 있으며, 때로는 자국 소수민 층에 대해서도 이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여러 나라를 넘나들면서 때로는 그 나라 위에 군림하고 조세 피난처에 자신의 돈을 모아두고 한적한 곳에서 휴가를 즐기며, 도시 속의 화려한 공간 속에 살면서 일하고 있는 전세계의 엘리트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좌익단체들도 있다. 탐욕으로 가득찬 것 같이 보이는 최고경영자가 이끄는 다국적 기업이나, 바쁘게 움직이며 여러 기업을 구조조정 하고, 그 과정에서 뿌리가 흔들리거나 파괴되는 지역사회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월스트리트 큰 손에 대해 그 누구도 호감을 갖지 않는 것 같다. 많은 토론들이 잘못된 상태로 흘러가며 비난의 대상이 잘못되어 있는 상태다. 만약에 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신경제가 제공하는 구매자 천국을 원하고 있고, 우리 모두 소비자이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새로운 기술로 인해 우리가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유리한 가격에 원하는 즉시 얻을 수 있는 전세계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선택범위가 넓어지고 원한다면 쉽게 다른 곳으로 바꿀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범인은 다국적 기업, 욕심 많은 경영진, 무감각한 엘리트들, 이민자, 우리가 사고 싶어하는 것, 우리가 원하는 좋은 조건의 거래 같은 것들이다.

 

두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한쪽은 신러다이트주의를 받아들이는 사회가 있을 수 있다. 모든 컴퓨터의 플러그를 뽑고, 소프트웨어를 불태우고, 값싼 외국 노동력이 못들어오 게 하고, 값싼 외국 상품이 못들어 오게 거대한 관세장벽을 세우고, 세계자본의 흐름을 막고 주주권한을 박탈하고, 기술릐 혁신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 의해 고요하고 안전된 사회가 만들어지고, 불균형 상태가 줄어들고, 사람들은 조용히 명상의 시간을 갖고... 그러나 이런 선택을 하였을 경우 정신적인 풍요로움은 모르겠지만, 물질적으로는 매우 빈곤한 사회가 될 것이다. 누가 이런 선택을 하고 싶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