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유한 노예(로버트 라이시, 오성호

돈주고 사야하는 관심

생활환경의 변화로 개인적 관심 분야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 아이들, 노인, 장애인, 우울증이나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물론 자기자신에게 누군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또 그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는 건강한 사람들 모두를 대상으로 보살펴 주고, 관심을 갖고 감독해 주는 서비스 직종이 관심산업이다. 이런 관심산업의 성장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사람들이 과거보다 더 일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집안 일을 외부로 의뢰하는 경우가 늘고, 두 번째 기계의 발달이다. 공장에는 각종 기계와 로봇이 있고, 서비스 분야에도 자동현금입출금기,자동응답시스템 등이 있다. 그런데 이 기계가 못하는 단 한가지가 있다면, 바로 개인적 관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일이 기계로 대체된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 관심판매서비스업에 나서고 있다. 사람이 가져주는 관심이 나를 더 즐겁게 해주고, 그런 관심이 없으면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 역시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는 웨이터가 여러 가지 말을 해주는 식당을 더 좋아하고, 판매사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백화점은 싫어한다. 과학자들은 사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1000명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노인이 신체적, 정신적 상태가 좋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두가지 신호는 '친구를 찾아가는 것과 모임에 나가는 빈도'라고 한다. 연구에 의하면 신체적 상태가 좋아짐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신호는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 지원과 관심이라고 한다. 많은 시간을 인터넷에서 보내면 보낼수록 가족이나 친구와의 직접적인 접촉 기회는 더 줄어든다. 얼굴을 보지 못하고 거리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의 관계는 궁극적으로는 심리적인 안정과 행복감을 느끼는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다른 사람이 긍정적인 관심을 가져주면 일반적으로 스트레스와 관련있는 호르몬, 특히 에피네프린, 노르에피네프린, 코르티솔과 같은 호르몬은 감소한다. 사람과 더 많이 접촉하고 더 많은 관심을 받는 노인들의 소변에는 그렇지 못한 노인들보다 에피네프린, 노르아드레날린, 코티솔의 함유량이 더 낮다고 한다. 우리 뇌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에는 혼자 있거나 다른 사람과 접촉이 없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고, 많은 개인적인 관심을 받는 것이 안전의 제 1요소라고 한다. 돈을 주고 개인적인 관심을 사는 것이 갈수록 늘고 있다.

 

가격에 따른 관심의 차등을 한번 생각해보자. 가장 가격이 낮은 형태의 관심에는 사람의 요소는 전혀 없다. 단지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보내주는 정도이다. 돈을 더 내면 사람 목소리가 나오는 로봇이나 아니면 3차원 홀로그램으로 영상으로 사람이 보이는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내면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그 목소리는 매우 짧을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내면 이제는 콜센타 직원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 이 직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신에 관한 정보를 뽑아내어 확인하는 작업을 하주면서 유용한 정보도 제공해 주고, 당신이 특별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도 갖게 할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내면 집이나 회사로 사람이 찾아 올 수도 있다. 성공적인 개인과 기업을 위한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개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시간이 없다. 19세기 후반 길드 시대에는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의 하인들 덕분에 과시적 소비를 보여주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서 면제되었고, 노는 데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오늘날의 부자들은 돈은 많지만, 시간적으로 가난하다. 따라서 이들의 사치는 다르다. 미친듯이 바쁘게 돌아가는 삶을 가장 효과적으로 즐거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관심이다. 이들보다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의 많은 부분을 제공하는 과학기술에 의존한다. 그러나 부자를 위한 서비스보다는 인간적인 요소가 적다.

 

항공사들은 다른 업체와의 경쟁 때문에 지출에 민감한 고객에 대해서는 항공요금을 인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료 효율성이 높은 엔진, 전산으로 운영되는 예약 등 기술발전이 있었기에 요금 인하가 가능하다. 그러나 덜 내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은 이전보다 사람의 서비스는 덜 받는다. 항공기 승객중 최상층 고객들은 9%밖에 되지 않지만, 수익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44%가 된다. 극진한 관심 서비스의 대부분은 서비스를 받으면서 동시에 돈을 버느라 바쁜 사람에게 돌아간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간이 줄어든 이 시대의 사치란 다른 사람이 당신을 위해 많은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이다. 가장 극진하고 값비싼 대접은 믿을 수 있는 절친한 친구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한달에 몇백 달러를 내고 개인 코치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 사람중의 하나라면, 아마도 단순한 조언이나 충고 이상의 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당신을 위해서만 있어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실제로 친구들의 대부분은 너무 바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좋은 친구가 지금 곁에 있다면 대단한 것이다.

 

개인코치 이외도 개인 카운슬러, 정신적인 조언자, 각종 치료사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누구나 가끔은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느낀다. 진짜 친구나 가족은 이를 충분히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도 치료사를 찾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적이 드문 외딴 곳의 솔잎 향기 그윽한 공기를 호흡하고, 숲속을 천천히 걸으며 삼림욕을 즐기곤 하며 휴가를 즐겼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있다. 요즘은 '자신에게 잘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말은 바로 다른 사람에 의해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즐거운 느낌을 사고 파는 것이다. 바쁜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정도의 관심과 보살핌을 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 가족들의 말을 듣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당신이 그들을 생각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보살핌 중에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있다.

 

물론 돈을 받고 하는 사람은 한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서비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비용이 없을 때 줄여야 하는 것은 개인적인 관심서비스다. 노인과 아이들 뿐 만아니라, 환자나 장애인도 관심과 보살핌의 관계속에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커다란 혜택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관계가 없으면,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건강은 내리막길을 걸을 수도 있다. 양로원은 단순 보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관심보호 서비스는 많이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보호의 목적은 혼자 남겨질 경우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을, 단지 안전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것이다. 관심보호는 환자와 관계를 쌓고 고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상호교류 하며 때로는 그들과 접촉하고 붙잡아 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노인인구는 매년 2.7%씩 증가하고 있으며, 베이붐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65세가 되는 2021년 경부터는 급등세를 보일 것이다. 신경제의 여파로 자녀들에게 조차 필요한 관심을 베풀어 주기 힘든 미국의 근로가정에, 이러한 노인붐은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나라 전체로 보면 노인 한명을 돌볼 젊은이의 수가 줄어들 것이다. 모든 노인들을 안전하게 모시는 것, 다시 말해 목욕, 식사, 욕창세척, 외출, 기저귀 교환 등의 일도 어려울 것이며, 노인들이 필요로하는 개인적인 관심을 주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많은 아이들이 노인만큼이나 관심부족증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들의 경우도 단순 보호시설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분위기가 더 좋다. 그러나 여기서도 돈과 관계가 있다. 돈을 내야 관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이 낮은 시설은 한명이 돌보는 아이들의 수가 많을 것이며, 직원들도 수준이 낮고 직장 이직율도 높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진다. 아이들에게 장래를 생각한다면, 많은 돈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양로원에서 올바른 보호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뉴스는 정기적으로 나오고 있다. 많은 양로원이 영리기업이기 때문이다. 영리기업은 주주들에게 높은 수익을 돌려주어야 한다. 개인적인 관심을 파는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이지 못할 것이다. 상대적으로생산성이 낮은 서비스로 대량생산도 할 수 없다. 개인적인 관심은 1:1 서비스이고,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비스 사업에서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적극적인 사람이 환영을 받는다. 그런데 하루 통근거리가 100키로 이상이라면 원하는대로 잘 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 관심서비스 분야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한 불균형 현상이 앞으로 몇 년 동안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서비스는 받을 형편이 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서비스가 몰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신경제에의 일의 구성및 보상방식으로 인해 사람들은 더 오랜시간 더 열심히 일하고,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더 급박한 심정으로 자기 자신을 판매하고 있다. 그 결과 가족을 위한 공간은 줄어들면서 가족의 규모가 작아지고, 과거 가정내에서 하던 일을 외부에 맡기고 있다. 한때는 배우자나 부모혹은 자식들이 하는 일로 여겨졌던, 개인적 관심서비스가 이제 빠른 속도로 시장경제 안으로 들어와 서비스를 구매할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제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