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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작동법( 에드워드 L. 데시,

세상 속에서 자아 찾기

통제적인 가족 환경에서 주눅들며 자란 아이들에게서 흔한 시나리오는 자기내면에 어떤 힘이 잠재해 있는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할 능력도 의지도 사라진다. 내가 보기에 남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한 행동은 자신이 진정 원해서 선택한 행동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닥쳐올 결과가 두려워서 억지로 남들의 기대를 쫓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 치며 내사된 가치를 받아들이는데 골몰한 나머지들에게는 진정한 자아에 대한 느낌도 인식도 없다. 현대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자아'를 사회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존재, 즉 사회적 세상이 정의하는 대로 발달하는 존재라고 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교적이라는 칭찬을 들은 사람은 자신이 사교적이라 생각한다. 남들이 그렇게 해서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면, 본인도 자기능력에 회의를 품는다. 남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면 잘 할 수 있다고 참견 하면, 자신은 무능하는 자괴감에 빠진다. 이처럼 사회적 세상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자아개념이 달리 프로그래밍된다.' 는 것이다.

 

내면의 자아는 유전적으로 안전하게 프로그램밍 되어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련의 잠재력과 흥미, 능력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아야 한다. 개인이 자아 발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사회가, 세상이 그 개인의 행동을 뒷받침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아가 발달한다. 세상이 자율성을 뒷받침해주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주도할 적절한 도전과 기회를 마련해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아가 꽃핀다. 세상이 개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면의 환경과 외부의 환경을 탐색할 때 애정을 보내준다면 진정한 자아가 발달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기대하는 행동을 해야 그 대가로 사랑을 주고, 인정해주고 자아를 존종하겠다는 훈육 개념이 널리 퍼져있다. 이처럼 조건이 맞지 않으면 사랑을 거두어들이겠다고 들면, 우리 인생은 비극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 위사람들은 자율성 욕구와 관계 욕구를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데, 이 두 욕구는 애초부터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다. 사회가, 세상이 관계욕구를 무기삼아 자율성을 빼앗고, 통제하려 드는 것일 뿐이다.

 

아이들들을 키울 때뿐만 아니라, 다 큰 성인들을 대할 때에도 가장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조건부 사랑이다. 그들은 사랑받고 싶다면 자율성을 포기하라고 한다. 싫다면?  혼자 살 밖에. 조건부로 사랑을 주는 사람들, 특히 그런 부모들은 결국 제 발등을 찍고 마는 셈이다. 자녀에게 올바른 행동을 가르치기 위해 사랑을 주었다가 거두어들이는 부모는 아이가 규칙을 내면화하는 것을 가로막을 뿐아니라, 진정한 자아의 발달도 가로막는다. 아이가 세상이 전하는 가치와 규칙, 자기 이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통제가 동반된다면, 다시 말해 사랑을 미끼로 가치와 규칙을 강요한다면 아이들은 자아발달 과정에서 그 가치와 규칙을 통합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통째로 삼키며 내사하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

 

사랑과 존중을 얻기 위해 외부의 요구에 순응해야 했던 아이는 어른이 된 후에도 사랑받고 존중 받기 위해 내사된 규칙과 기치에 따라 살게된다. 그들은 내사된 요구에 따라야만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고 느낀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특정한 결과와 결부시키는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자아관여'라고 부른다. 어떤 규칙과 가치를 내사하고, 조건부 가치가 그 내사된 내용에 힘을 실어주면, 흔히 그 사람은 자아관여 되었다고 말한다. 업무에 자아관여된 남자는 일에서 성공하고 돈을 벌어야 스스로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자아관여는 내면동기를 훼손할 뿐아니라, 학습능력과 창의력을 떨어뜨리고, 유연한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이 필요한 과제를 수행할 능력을 떨어뜨린다. 다이어트를 할 때 뚱뚱해져도 좋다고 생각할 때 날씬해진다. 날씬해지지 않으면 미워할 거라고 협박하며, 자기 자신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하면 결국 저항할 수 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압박과 저항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주인과 노예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머릿속의 주인은 뚱뚱하면 보기 싫으니 살을 빼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인은 비난이나 위협을 하거나 모욕을 가한다. 몸의 일부는 주인을 기쁘게 하려하고 다른 일부는 반항한다. 이때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주인의 요구를 무시하고, 그냥 살찐 몸매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주인 또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주인에게 침을 뱉는 것은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실패를 혀용해라. 그러면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자아존중감에도 진정한 자아존중감과 조건부 자아존중감이 있다. 내면의 동기가 유지되고, 외부에서 정해주는 자율성의 한계와 규칙이 통합되고, 자기 감정을 스스로 제어하는 진정한 자아발달도 수반된다. 따라서 진정한 자아존중감에는 자유와 책임도 뒤따른다. '칭찬'은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당신은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칭찬은 진정한 자아존중감보다는 조건부 자아존중감을 발달시킬 위험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칭찬을 무기 삼아 통제하는 환경은 더욱 강화 된다. 한 순간일지라도 자기가 가치있는 사람임을 느끼기 위해 더 많은 칭찬을 받으려하고, 그 와중에서 자율성은 실종되고 만다.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또래 한명과의 관계다. 그는 연인일 수도 있고 절친한 친구일 수도 있다. 서로 의지하고 믿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른 이들이 외면해도 이 세상에 오직 한사람만은 내말에 귀기울여 주고 나를 이해해 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도 그처럼 등을 내주고 도움을 주고,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의 관계욕구는 서로에게 기댈 때 채워질수 있다. 이런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그 관계를 중심으로 삶을 살아간다. 두사람의 관계가 건강해지려면, 각자가 자율적인 선택으로 관계를 유지해야한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진정한 자아에 반응할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상대방의 개성과 고유성을 서로 뒷받침할 수도 있다. 연인과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이유가 자율적인지, 즉 진정한 선택과 개인적 욕구 때문인지 아니면 억압 때문인지 살펴보면 두사람의 자율성은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성들은 아이들이 더 이상 어머니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가슴 속 어딘가 뻥 뚫린듯한 공허감을 느낀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도 없다. 부인은 자신을 덜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고 그래도 만족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더 이상 아내로 사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된다. 그 변화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것이 남편 책임이 크다해도 자아를 잃어버린 책임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있다. 그 점을 인정하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어낼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것을 표현하고 충족시킬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부부관계에서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부인은 서서히 남편과의 관계도 바꿔나간다. 두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성숙하고 호혜적인 관계에서는 구조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래에 있는 법은 없다. 두 사람 모두 자율적이고 또 서로의 자율성을 뒷받침 한다.  이런 관계를 맺을수 있어야 서로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또 의무감 없이 상대방에게 베풀 수 있다.

 

두 사람이 호혜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디면 서로가 원하는 것을 거리낌없이 요구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내키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고, 받는 것도 의무적이지 않다. 즉 상대방에게 뭔가를 요청한다고해서 꼭 그것을 받게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주는 사람도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주는 것은 아니다. 자유롭게 줄 수도 있고, 자유롭게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원하는 것을 얻는 것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균형을 이룬다. '난 너한테 화났어' 라고 남자가 말했다면, 그것은 연인이 뭔가를 잘못해서 화가 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면 즉, 감정이 자신의 필요와 욕구, 기대에 따라 생겨난다는 점을 이해하면, 분노에 사로잡히는 일 없이 건설적으로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분노한 사람 앞에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귀를 기울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노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과 있다면, 귀를 기울이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감정을 이해하고 상대방과 공유하면 두사람은 훨씬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