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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심리지도( 비요른 쥐프케 지음, 엄

남자의 감정1

남자가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감정, 두려움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남성은 이를 강하게 부정하기 때문에 내적인 모순이 발생한다. 의식하건, 하지 않건 간에 인간은 일상에서 언제나 크고 작은 두려움을 경험한다. 상사에게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건 갈등을 일으키거나 해고를 당하는게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극도로 부인한다. 두려움을 느끼더라도 반사적으로 '나는 두렵지 않아' '진정한 남자는 두려움 같은 건 몰라' 라는 말로 대응한다. 운동선수들이 경기 전에 외치는 구호는 두려운 감정을 용기로 가장하여 행동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대부분으 남자들은 무언가를 두려워 한다는 것은 남자로서의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 즉 남성의 정체성 상실로 인식한다. 남성이 의식 차원에서 가장 먼저 깨닫는 두려움은 성취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이는 업무능력과 함께 그들이 인생에서 쌓아놓은 많은 성과를 잃거나 적어도 크게 손상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알다시피 성과는 일을 많이 한 남자들에게 자아확인의 수단이자 기쁨의 원천이다. 무능한 동료, 비인간적인 규정, 부적절한 보수에 대해 아무리 드러내놓고 불평을 하더라도 대다수의 남자들은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그들은 '무언가를 창조했다'. '해냈다', '끝냈다'는 성취감을 즐긴다.

 

인정 받고 싶다는 욕망은 남자들이 일을 하는 중요한 동기이자, 또 하나의 증폭기다. 많은 남자들은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자 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타인의 인정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다. 심지어 섹스에서도 인정에 대한 욕망을 발동시킨다. 그들은 성관계 후 ‘나, 어땟어?’라고 묻는다. 섹스에서의 만족을 자신의 욕망과 감정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정을 통해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사적인 영역에서 조차 성과를 통해 인정 받으려 하는 사람은 그만큼 더 큰 상처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형태의 인정은 오래지속되지 못할뿐더러 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돈이나 성적능력으로 인정을 받아왔던 사람이라면 노화, 사고, 질병, 실직 등으로 그 능력을 상실하는 순간,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없게 된다. TV대담 프로그램에 나오는 남성 정치가나 경제 전문가들을 보게 되면, 주제에 걸맞는 유익하고 깊이 있는 토론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관심사는 단 하나 마지막에 자신의 인격이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 뿐이다.

 

인간관계 영역에서도 자신의 남성 정체성을 어떤 특정한 능력과 연관시키는 남자들이 많다. 많은 남자들에게 좋은 아빠, 좋은 친구, 좋은 배우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책임을 떠맡고 뭔가를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때 '--한다'는 '이루다', '끝내다' '처리하다' 이지 감정적으로 '통한다'  '함께 있다'는 아니다.  전통적으로 사회는 남자들에게 강하고 과묵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러한 요구는 세상의 변화와 함께 바뀌었어야 마땅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 결과 현대 남성은 강하고 적극적일 뿐 아니라, 감정적 이해를 바탕으로한 공감태도까지 갖추어야 한다.

 

경제력 역시 남성의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다. 남자들은 교육비와 주택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펀드와 적금을 들고 죽은 후에도 가족들을 부양할 돈을 남겨주기 위해 보험상품 광고를 뒤적인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남성 정체성을 결정적으로 지탱해 주는 것이 바로 경제력이다. 많은 남자들이 발기불능으로 괴로워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제력을 잃은 남성 중 상당수가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살을 시도한다. 은퇴나 실직으로 직업 전선에서 물러나는 것은 남자들에게 단순한 실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들에게 그것은 남성의 정체성을 상실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이러한 생업의 상실은 치명적인 악순환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체면손상, 실패, 남성성 상실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남성은 사회생활에 소극적이고, 사생활에서 대화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배우자와의 관계마저도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우울증에 빠진 남자들은 더 이상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남성의 성과위주 원칙은 실패를 용서하기 힘들어 한다. 실패에 대한 대처법도 없다. 남자는 대개 두가지 해결책을 사용한다. 첫째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다. 둘째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다. 무능한 정부, 편파적인 심판, 멍청한 상사, 마누라의 무능....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구원한다.  자기 비하는 나이가 들어 성취능력을 점점 손실하면서 극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