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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심리지도( 비요른 쥐프케 지음, 엄

남자의 감정2

 남자들은 여자들의 감정적 반응을 즉각적으로 쫓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여자는 알수 없고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아내는 낮 동안에 겪은 불안과 슬픔, 불만에 대해 이야기하려 든다. 최악의 상황은 그녀가 남편의 감정에 대해 대화를 하자고 제의하는 것이다. 감정이 어떤지 묻는 질문에 대해 남자들이 반응은 단순하다. ‘뭐, 그럭저럭’ ‘다 좋아. ’ ‘모든 두려움은 소망을 포함하고 있다’는 프로이드의 말은 대다수의 남자들에게 해당한다. 남자는 배우자로, 애인으로서, 친구로서 여자를 소망한다. 이때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이유만이 아니다. 배우자에 대한 의존성은 개인적인 인정에 대한 욕망과 관계가 있다. 많은 남자들이 자신의 뜻과 행동이 다른 사람, 특히 배우자나 가족들이 생각하는 가치와 연결시켜 결정하곤 한다.

 

남자들은 해야 하는 것을 행한다. 그리고 그 성과에 대한 인정을 기대한다. 그것은 보상이자 쾌락이다. 인정 받지 못하면 남자들은 괴로워 하고,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아내에게 버림받았을 때 그들의 가장 큰 상처는 가족을 위해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아내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남성의 묵은 상처는 의사소통도, 해결도, 위로도 받지 못한 채 그저 오랫동안 쌓여간다.  이렇게 쌓인 상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노로 변하여 전혀 다른 곳에서, 때로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폭발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분노의 근원을 이야기 하지 못한다.

 

무기력감은 여성에게 감정적 의존을 하면서 다시금 드러나듯이, 사회화를 통해 강하게 남성의 내면에 각인 되어 있다. 때문에 '남자 안의 소년'이라는 비유는 참으로 적절하다. 문제는 남자의 내면에 살고 있는 소년이 아니라, 이 소년을 돌보아줄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정서적 성장을 하기 위해 남성은 자기 안의 소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 접촉 동정심, 자신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감성의 성숙은 불가능하다. 성장해야 할 시간을 그저 놀면서 낭비한다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아 있을 것이다.

 

통계를 보면 남자들이 인생에서 자신의 행동이나 능력을 제대로 지배하는 확률은 평균적으로 50%에 불과하다. 그러니 열등감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가치를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남자들은 자신이 열등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그래서 자신이 열등함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다. 자기 아이들을 비판하거나, 동료를 무시하고 욕한다거나, 배우자 험담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남성은 남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시험이고, 모든 질문이 테스트다. '어떻게 지내 '라는 인사조차 그렇다. 남자들은 모든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가지고 있다. 답이 없다는 것은 패배를 의미한다. 남자의 사전에는 '나는 몰라' '그 이상은 모르겠어' 와 같은 대답은 수치다. 잘 모르는 주제는 주절주절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으며 위기를 모면한다.

 

남자는 그저 한가지 침묵만 알고 있다. 그러나 여자는 슬픈 침묵, 화내는 침묵, 상처받은 침묵, 감동한 침묵, 심심한 침묵을 구분할 수 있다. 여자는 남자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구별능력을 가지기를 기대한다. 만악 그렇지 않으면 여자는 상처를 받거나, 화가난다. '당신은 내 기분이 어떤지 몰라.' '대체 나에게 관심이 있기나 한거야?' 남녀사이의 이같은 불화는 인지적 공감과 감성적 공감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상적인 남자들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겪는다. 남자들은 감성적 공감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감정의 표현을 할 수 없다. 남성은 자기와 대화를 나누는 상대를 책임감을 갖춘 성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에게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남성이 문제 해결보다 공감에 초점을 맞춘 여성의 대화를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은 여자는 자신의 처지를 남자 친구가 공감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상황 파악을 못하는 남자는 극단의 해결책을 제안한다. “그렇게 힘들면 회사를 그만 두든가.”

 

슬픔은 사랑처럼 인식을 통해서는 거의 전달되지 않는 감정이다. 이 감정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 생겨난다. 이때 상실의 무게와 슬픔의 크기는 잃어버린 대상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대부분의 인간은 가족, 친구, 건강, 재산, 미래에 대한 전망, 인생의 의미 등을 잃어버렸을 때 슬픔에 빠진다. 슬픔은 그 어떤 감정보다도 타인에게 잘 이전된다. 사람들은 실연의 고통과 아픔을 노래한 노랫말에 쉽게 공감하고 젖어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는 슬픔을 느낄 때 그 감정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그 원인을 찾아서 애도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신체적으로 접촉하면서 위로를 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남성은 이를 매우 어렵게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슬픔에 빠졌을 때 전형적인 극복 방법인 외향화를 고수한다. 화와 분노는 남성의 전형적인 감정이다. 화는 힘을 상징하고 행동 가능성을 드러내 주며, 남성이 자신의 경계를 지키고 남성 정체성을 보호하도록 도와준다.

 

화를 통한 감정 표출

* 끊임없이 욕을 해서 소통을 방해하고, 다른 사람이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한다.

* 아이 처럼 끝없이 불평하고 반항한다.

* 지나치게 엄격하고 냉혹하게 군다.

* 사소한 일에 갑작스레 폭발한다.

* 물리적 폭력을 휘구른다.

* 상대 인격을 모욕하고, 무시하고, 성차별적 발언을 한다.

 

남자의 수동공격

* 선의 의 가르침

* 짧게 언급한뒤 곧 이어 비판

* 반어적으로 또는 재미라면서 상처주는 말 하기

* 상대방에 대한 교묘한 폄하

* 우월함 과시

 

남성의 폭력에 대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안은 도망가는 것이다. 달아오른 분위기를 쉽사리 진정시킬수 없다면, 그 상황을 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안전하다. 도피를 강조하는 이유는 공격적인 남성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전투장을 떠나는 이 선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대처법은 전투장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험한 무기는 버려야 한다. 공격하고 있는 그 남자와 같은 무기를 선택해 언어적, 물리적 공격을 가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이 무기를 이미 오랫동안 사용해온 남자보다 열세에 놓일 것은 뻔하다. 설령 동등한 전투력이라해도 양측 모두 손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전투는 승산이 없을 뿐더러 종전 후에도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싸움이라는 의미에서 남성공격에 대응할 때는 오히려 방어하고, 공격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면서 가능한한 남자에게 깊은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 남자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지 않는 방식이지만. 모든 감정이 그렇듯 죄책감도 나름이 미덕이 있다. 죄책감은 일반적으로 도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간의 공동 생활에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죄책감이 불편한 감정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분노는 때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되고, 슬픔이나 무기력감은 위로나 연대감으로 보상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죄책감은 그냥 끔찍하다. 죄책감은 불편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에 일상에서는 대개 억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수치심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게 되거나 그것이 공개적으로 폭로될 위험이 있을 때 나타난다.  수치심은 다루기 힘든 감정이다. 남성은 죄책감과 마찬가지로 수치심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김으로써 해소한다. 수치심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면, 상대는 상처를 받게 된다. 그러니 대화가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남성이 이 규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자신의 수치스러운 생각과 감정을 억압하려는 투사행위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