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 가야마 리카)

여자의 敵은 여자.

 

결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결혼보다 일이나 자유가 중요하며, 여성도 결혼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믿는 것은 변한 것 같다. 사람들이 결혼의 구속에서 해방되려고 노력했던 시기는 1970년대 초부터 거품경제가 붕괴된 1990년대초에 이르는 20년 동안에 불과했던 것 같다. 그 뒤로 자유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돈 잘버는 여자나 일과 결혼을 병행하는 여자보다, 돈 잘 버는 남편을 둔 여자가 더 낫다는 풍조가 만연해 졌다. 사회적으로 빈부 격차가 심하다고 연일 시끄러운데 이처럼 소득이나 학력말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격차라고 할 수 없는 사소한 차이까지,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억지 논리까지 갖다붙혀서 큰 격차로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격차 자체보다  그 격차를 어쩔수 없는 것,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다.

 

불임클리닉 대기실은 아주 불쾌한 공간이다. 처음 불임치료를 받는 여성과 두 번째인 여성, 치료에 성공하여 기뻐 어쩔줄 모르는 여성과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는 여성사이에는 메워지지 않는 깊은 골이 존재하며, 불임 클리닉에서 속내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를 사귀지 못한 사람이 많다. 외부 사람들이 보기에 불임치료를 받는다면 결혼해서 남편의 사랑을 받는 사람일테고 같은 목적을 가진 여성이니까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친구사이로 쉽게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과는 그 반대이다.  비슷하면서도 근소한 차이가 있는 사이일수록 다툼이 치열한 법이다. 비슷한 처지에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차별화를 꾀하고 우열을 가려 승리를 뽐내며, 자기보다 못나 보이는 사람 앞에서 노골적으로 유세를 떨거나 매정하게 구는 여성들도,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에게 존경과 친절을 보낼수도 있다. 어쩌면 평소에 처지가 비슷한 여성에게 이기려고 기를 쓰느라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부담없이 감동하고 동정하는 것이 아닐까?

 

정보와 기회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결혼했다고 해서 인생이 해피엔드인 것도 아니고, 문을 닫아걸고 집안에 틀어박혀 사는 것 만이 여자의 행복도 아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결혼해서 편하게 살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것은 사회생활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대 뿐이다. 승리에 집착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는 여성은 사태가 더 나빠져도 그 승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어쨌든 대부분의 여성은 알맹이 없는 행복으로도 메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핍감과 남과 비교해서 자신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불완전성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그래서 결혼은 행복의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결혼이 곧 행복이라는 법칙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사람도 완전히 그 법칙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여성의 존재적 결핍감은 유독 '결혼이 곧 행복'이라는 등식에 의해서만 메워지는 것일까? 왜 학력이나 경제력으로는 메워지지 않는 것일까? 일에서 성공하는 것은 타인에게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한 것인데 반해, 결혼을 통한 성공은 타인의 선택을 받음으로써 가능하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남의 힘을 빌려 얻은 승리보다는 자력으로 얻은 승리가 값지다. 하지만 여성의 존재적 결핍감은 스스로 채우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는 것일까?

 

허상에 지나지 않는 행복에 이끌려 결혼해서 결국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앓다가 욘사마에게 빠져드는 중년의 여성들의 실상. 그리고 일하는 기쁨, 성장하고 성취하는 보람에 눈 뜬 여성들의 삶.... '결혼이 곧 행복'이라는 등식으로 여성의 존재적 결핍감을 해소하려 하지말고 결혼과 행복을 떼놓고 생각해야 한다.

 

'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 가야마 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의 조건  (0) 2010.04.13
부모그늘에서 벗어나기  (0) 2010.04.09
일도 사랑도 당당하게  (0) 2010.04.08
결혼해도 생기는 고민들  (0) 2010.04.07
결혼이 무섭다.  (0) 2010.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