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뇌의 마음 (월터 프리먼지음 진성록 옮김)

자각, 의식, 그리고 인과관계

 

의미 있는 상태라고 말할 때에는 그 생명체의 상태공간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신경계와 신체의 어떤 활동패턴을 뜻한다. 의미들을 만들어내는 밭은 신경망의 뉴런들 사이의 시냅스 연결 전부와 신경조절물질에 의해 결정되는 유발지역의 민감성, 그리고 이런 것들보다는 조금 약한 수준인 나머지 신체부위의 성장과 모양과 적응들이다. 운동선수와 댄서와 뮤지션들의 기술은 그들의 시냅스에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팔다리와 손가락과 몸통에도 살고 있는 것이다.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학습의 분자적 증거를 연구하는 신경생물학자들은 확장된 근육과 멋진 면역체계들 또한 맡은 일을 하는 것을 배운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뉴런과 신체의 특성사이 연결의 강도는 평생을 통하여 학습과 연습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지향성의 전체성을 추구할 때 성장의 범위와 방향에 한계를 가할 수 있는 유전적 유산과 세포질 유산을 갖고 태어난다. 의미는 또한 우리 모두가 자신의 행동과 다른 사람이 행동을 관찰하면서 경험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자각은 하나의 경험이다. 신경동역학의 언어를 빌리면 하나의 과도기적 상태이다. 의식은 반구전체에 걸친 자각상태의 시퀀스가 의미의 궤도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다.

 

어떤 식으로 자각의 상태가 뉴런들의 활동을 바꾸는 것일까? 뉴런의 활동이 고통이나 쾌락의 상태를 포함하는 자각을 어떻게 불러올 수 있을까? ‘자각한다는 것은 신체를 통하여 무엇인가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가 의도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알 길은 없지만 퐁티의 이 말은 아퀴나스의 동화과정과 일치한다. 뇌가 뇌 전반에 걸쳐 뉴런들과 신체의 조직화를 통하여 스스로를 어떤 대상과 비슷하게 만들어 나감으로써, 그 대상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 바로 아퀴나스의 동화가 아닌가.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상상을 통해 온다. 이런 상상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화하고 추상하여 우리의 행동과 이해의 바탕이 되어줄 내적구조를 창조할 수 있다.

 

자아를 그 대상에 최대한 동화시키기 위해서 주의력을 쏟는 것이 바로 프리어퍼런스preference 선호이지 않은가. 자아는 그 대상에 적응하고 신체의 모양을 그 대상에 맞게 구체화함으로써 그것에 대해 배운다. 아니면 그 대상의 모양을 다시 만들거나 위치를 바꿈으로써 배우기도 한다. 아주 흔한 예가 새로운 연장을 손으로 다루는 일이다. 감각적 경험들은 그것들을 단어와 그림으로 추상하고 검토하고 표현할 수 있기 전에 먼저 그것들이 의식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기본적으로 현상에 대한 공부이고 숙고이다. 현상을 논의하는 것은 자각을 일깨우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자각이야말로 우리가 이런 구조들을 경험하고 그것들을 단어로 표현하게 하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도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깊이 생각한 끝에, 말하자면 이 동기와 저 동기를 면밀히 검토한 뒤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을 선택하면서, 종종 자유의 의지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그 심사숙고가 결정에 뒤이어 나오고 그 동기들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나의 비밀스런 결정이다. 누구로부터의 비밀일까? 우리 자신의 자각에게조차도 비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정을 하고 그런 뒤에 신중히 숙고를 거쳐 그 결정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고 설명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의식은 결정의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다. 의식은 하나의 정신과정인 원인과 결과의 관계인 것이다. 지성의 형태들은 상상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지 물질의 형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감각피질의 뇌 활동이 취하는 형태는 내적으로 창조되는 것이지 자극의 형태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행동주의자들의 시작을 자극이라고 부르고 끝을 반응이라고 부른다. 인공지능과 신경망, 컴퓨터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인지주의자들은 그것들을 원인과 결과라고 부르기도 하고 독립변수와 의존변수라고 부를 때도 간혹 있다.

 

인과관계에서는 많은 요인들이 예측에 필요한 요구사항을 만족시킨다. 또 그 인과관계의 고리가 가지들을 뻗을 때 우리는 다중의 인과관계를 갖게 된다. 다른 모든 것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예상하지 않은 사건이 우연히 일어났다고 단정을 짓는다. 각 뉴런은 한 두 개의 시냅스 연결 안에 있는 수천 개의 다른 뉴런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다른 뉴런들이 보내는 영향이 그 뉴런의 상태를 바꿔 놓는다. 그런 일은 그 뉴런이 또 다른 펄스를 새롭게 보내기 전에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계층 간의 상호작용은 선형적 인과관계 고리로 압축될 수 없다. 전체를 구성하는 분자들은 거시적인 상태를 창조함과 동시에 그들 자신이 창조한 그 상태에 억제 당한다.

 

현재의 상태는 운동계들과 사지의 움직임, 감각기관들 그리고 뇌의 지각모듈들을 두루 아우르는 하나이 활동패턴이다. 그 행동에는 굳이 자각이 따를 필요가 없다. 그러나 행동에 자각이 따른다면 우리는 그 행동의 예상된 결과에 대한 프리어퍼런스를 통하여 행동할 의도를 경험한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행동은 이 세상에 바람직한 변화를 불러올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행동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변화를 야기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행동한다. 우리 대부분은 또 동물과 무생물들을 어떤 결과를 낳을 인과관계의 힘을 지닌 존재로 본다. 이 우주는 거대한 인과관계 엔진 같이 보일 수도 있다. ‘사람은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바위나 다를 바 없다던 스피노자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무력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처럼 결정론적인 세계관에 몸을 맡긴 상태에서 삶을 계속 살며 일을 해 나가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상황에 처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체념하고 만다.

 

대뇌피질의 각 영역에 있는 신경망은 시냅스를 통해 상호작용을 하는 수백만 개의 뉴런을 갖고 있다. 감각작용의 영향 아래에 뇌의 다른 부위에서 이뤄지는 신경조절 화학물질의 방출에 의해 그리고 성장과 성숙의 배경과정에 의해, 모든 뉴런들은 함께 어울려 거시적인 활동패턴을 형성한다. 일차감각피질들은 모두 변연계의 다양한 부위들과 더불어 더 큰 네트워크의 구성요소가 된다. 이것은 쓰나미에 비유할 수 있다. 쓰나미는 해안지역에 엄청난 재난을 안겨줄 수 있는 거대한 해일이다. 그러나 열린 대양에서는 사실상 탐지가 불가능하다. 그 해일의 거대한 넓이와 낮은 높이 때문이다. 거시경제 트랜드들은 각 개인들에게 풍요 혹은 실업으로 경험된다. 그러나 그런 트랜드들이 명료하게 밝혀지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거시경제 트랜드들이 전 인구에 널리 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한 뒤의 일이다. 그리고 어떤 문화 전체가 혁명으로 붕괴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문화권의 많은 사람들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대로 태평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감정의 강도를 전뇌의 뉴런집단에서 일어나는 카오스적인 파동들의 밀도로 이야기할 수 있다. 뉴런집단들은 변연계의 통제를 받는 뇌간핵들이 분비하는 신경조절물질의 규제를 받는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는 이성을 이 세상과 매우 높은 수준의 동화를 이룬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동화가 바로 합리적인 마음에 강력한 파워를 부여하는 폭 넓은 지식에 바탕을 둔 의미이다. 감정과 이성은 함께 일어났다가 사라질 수도 있으며 불균형을 보일 수도 있다. 자제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억제의 결여로 생긴 불균형이 한 형태이고, 냉담은 무질서한 활동이 부족하여 생긴 불균형의 한 형태이다. 뇌를 포함한 모든 육체적 체계들은 물리학의 결정론적인 인과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의미는 열린 체계이다. 그 이유는 의미가 각 사회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공유되기 때문이다. 도널드 데이빗슨은 선택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인간에게 부인할 수 없는 것이지만 무법칙적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뇌를 선형적 인과관계의 체인에 깊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볼 경우에는 자유의지에 대한 부정이 불가피하다. 선형적 인관관계가 뇌가 지식을 구축하는 바탕이 되는 지향성 메커니즘의 산물이다.

 

자아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행위자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을 끊임없이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자각이 자아가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울타리를 건드려가면서 경계선 안으로부터 이 세상을 지각한다. 그러면서 이 세상과의 동화를 통해 자신을 바꿔나간다. 우리의 행동들은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개인적인 목표의 추구로 지각된다. 그 행동은 몸짓과 신호, 단어와 숫자로 즉 표현으로 우리의 의미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뇌 상태공간의 조직에 나타나는 차이는 어떤 식으로든 인간과 다른 동물들 사이의 해부학적 뇌 조직에 드러나는 차이와 관계가 있음에 틀림없다.

'뇌의 마음 (월터 프리먼지음 진성록 옮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식과 의미  (3) 2024.07.14
감정과 지향적인 행동  (0) 2024.06.28
감각과 지각  (0) 2024.06.28
뉴런들과 뉴런 집단들의 동역학  (0) 2024.06.23
의미와 표현  (1) 2024.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