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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왜 詩를 읽는가?

“책을 읽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이고,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이고, 감동받기 위해서이고, 위로받기 위해서이고, 깨닫기 위해서이고, 친구가 필요해서이다.” 법정 스님 말씀이다. 나도 그렇다.
 
나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읽은 책을 통해 다음 책을 소개 받고, 뭔가 더 알고 싶은 게 있어서 책을 읽는다. 중독이라 할 정도로 주위에 책이 없으면 왠지 마음이 불안하다. 요즘은 책을 읽어도 기억되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아마 내 지식체계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난해한 詩는 별로지만 나는 시도 좋아하는 편이다. 박완서 작가와 같은 의미에서 시를 찾아 읽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詩가 와서 나의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과 만나니, 나 같은 속물도 철학을 하게 만든다. 시의 힘이여 위대하도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한마디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이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를 때도 위로받기 위해서도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 박완서 산문집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요즘 시절에 필요한 시가 박두진 시인의 ‘해’다.
 
해 /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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