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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가을 상념

산을 가장 많이 찾는 시기가 봄과 가을이다. 아침 햇살이 찬란한 가을 숲길을 걷는다. 하늘도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햇살의 따스함에 가을이 묻어있고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의 향기가 있다. 오랜만에 가을단풍 구경하러 먼 길을 찾아 왔더니 가을은 벌써 다녀갔다.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가 싶더니 여름이 이미 눈앞에 와 있었고,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벌써 가을은 저만치 가고 있다. 무엇을 하겠다는 간절한 욕망도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도 세상에 대한 관심도 호기심도 없이 하릴 없이 가는 시간만 아쉬워한다.
 
낙엽 지는 거리를 군중들속을 세속을 초월한 사람처럼 걷는다. 가로수의 나뭇잎에도 가을이 깃들어 있고, 쌀쌀한 바람에는 가을의 쓸쓸함이 있다. 자기에게 맞는 자리, 바른 자리에 바른 자세로 있어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 엉뚱한 곳에 있는 사람은 불안하고 불편하고 초조하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본다. 나는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가?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얼마나 될까? 나는 어느 곳에 있고 싶은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왜 불행한가? 진실로 자기에게 이로운 일을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항상 자질구레한 일에 허겁지검 몰려다니다 보면 자신를 잃어버리게 된다. 돌봄 교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를 관리하는 담당자는 ‘아이들 교육에 끼어들려고 하는 것’을 조심하라 했다. 끼어들 곳에 끼어들어야 하는데... 나는 끼어들 곳에 끼어들고 있는가? 아직 내가 끼어들 곳이 있는가? 내 말에 귀 기울일 사람들이 있는가? 오늘도 나의 시간은 어제와 그제와 그그제와 다를 것 없이 그렇게 저물어 간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개성이란 별게 아니다. 별 놈 없다는 말이다. 추울 때 두터운 옷 입고 더우면 얇은 옷 입고, 많이 먹으면 배부르고 돈 많으면 사치하고 싶고, 힘 있으면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은 결국 자기 욕망을 따라간다. 삶을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손을 더럽히는 일이다. 그러니 자주 손을 씻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덜어주려는 사람들이 의사고, 검사고 판사, 정치인이고 지식인들 아닌가? 그런데 그 업業이 남의 불행을 등쳐먹고 사는 천한 직업이 되었다. 물론 그들 중에는 훌륭한 이들도 많지만, 많은 이들이 너무 많은 불행들 속에서 헤매다 보니 불감증에 걸렸다. 대놓고 뽐내는 자들도 있고 애국을 직업으로 삼는 자들도 있고, 약한 자들에게는 호랑이처럼 덤비고 강한 자에게는 개처럼 아첨하는 이들도 있다. 배울 만큼 배우고 똑똑하다고 하는 자들이 수치심, 부끄러움에 무감각해졌다.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감응력이 없어지고 물적 욕심, 자기 보신에만 급급하여 자연히 타락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그러한 타성을 극복하기란 힘든 일이다.
 
우리는 민주시민은 교실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배우려 학교를 가는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가꾸기에 달렸다고 믿고 날마다 찾아가는 배움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왜, 무엇이 되라고 가르치는가? 인간 되라고... 모두들 오랫동안 밤낮없이 많은 공부를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얼마나 배워야 인간이 되는가? 인간이 살아가기에 그다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고 행복을 위해서도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조그만 양보, 조그만 관용, 조그만 인내, 약간의 양식良識만 있다면 피할 수 있는 것들을. 그것이 부족해 엄청난 불행을 빚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속도는 세월이 갈수록 빨라지는 것 같다. 나의 노화도 더 빨리진다. 삶이란 군중 속에서 함께 휩쓸려 가는 행군이라 했던가? 나 역시 군중에 휩쓸려 여기까지 왔다. 나는 궁하지 않게 가난하게 살려고 애쓴다. 매일 읽는 책들이 머릿속에서 내 세상을 다양하게 만든다. 책 한권을 통해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는 나에게 책과 친구 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외부에서의 만남보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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