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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길

자연과학이란 무엇인가?

자연과학이란 무엇인가?- 앎을 바탕으로 물질세계를 설명하고 탐색하는 체계 (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장회익)

자연과학은 앎의 틀을 바탕으로 물질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담아내는 앎의 체계라 할 수 있다. 자연계에는 이미 경험을 통해 친숙한 현상도 많고 미처 찾아내지 못한 현상들도 많다. 자연과학에서는 이 앎의 틀을 바탕으로 설명해 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 대상에 따른 적절한 도구와 함께 중간단위 이론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통일된 이론 속에서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리는 사물을 볼 때 하나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떤 사고의 틀에 맞추어 이해하려 한다. 무엇이 어떠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틀에 맞추어 사물을 이해하려는 성향을 지닌다.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이러한 사고를 하고 이 사고에 맞는 현상을 경험하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이것을 하나의 앎으로 수용해 버린다. 하지만 실제 현상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틀에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실에 대단히 중요한 학습을 하고 있다. 과연 그것이 우리가 신뢰할만한 앎, 지식인가과학적인 방법을 알게 된 것은 일상적으로 아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식적, 종합적 노력에 의해 일상적인 앎이 지니는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앎이다.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물체는 느리게 떨어진다는 일상적인 앎이다. 갈릴레오의 낙하의 법칙은 지구상 모든 물체는 그 질량에 무관하게 일정한 가속도로 낙하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앎을 정밀성, 신뢰성 측면에서 비교해 보자. 정밀성이란 얼마나 빠른가에 관한 것이다. 일상적인 앎에서 '아주 빠르다. 약간 빠르다' 정도로 구분하지만 과학적인 앎에서는 속도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미세한 차이도 구분한다. 신뢰성 측면에서는 일반적인 앎에서는 무의식 속에서 일반화하여 받아들이지만, 과학적 앎에서는 실험적 검증이라는 것을 거쳐야 신뢰성이 높아진다. 여기서 새로운 앎은 지구상의 물체는 왜 일정한 가속도로 낙하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이러한 물음에 답하게 위해서는 새로운 앎의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과학에서 추구하는 것은 단순힌 기존 앎에 비해 더 정밀하고 확실할 뿐 아니라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통합적 앎을 추구한다.

 

흔히 앎이란 내용만 떠 올리기 쉬우나 사실 앎이라고 하는 것은 내용과 함께 이것을 담는 틀을 지니고 있다. 내용을 정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상적 앎이란 일상적으로 공유된 틀을 바탕으로 정보에 관심을 갖는 지식이며, 과학적 앎이란 체계적으로 향상시킨 틀과 그 안에 있는 정보를 총칭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앎의 틀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며, 자신의 사고가 이러한 틀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에 이 지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경험이 영역이 넓어지면 새로운 앎이 영역으로 확장되면, 새 틀을 만들어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인식하기도 한다. 이것을 종교나 동양철학에서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말하기도 한다. 그 깨달음은 남에게 전달하기 어려운 것이다.

 

과학은 삶의 틀을 무의식 속에서가 아니라 의식적 노력으로 새로운 틀을 구축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을 우리 두뇌의 자연스런 무의식적 활동이 아닌 인위적 노력을 통해 이루려 할 때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기존의 틀을 기반으로 새로운 틀을 만들어 사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존 틀이 무의식 차원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속적인 갈등을 야기하며 새로운 틀의 수용을 방해한다자신의 앎의 틀로 어떤 내용을 수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앎의 틀 자체를 전수받을 수는 없다. 내 입장에서 오직 스스로 재창조해야 가능하다. 단순히 받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앞 사람의 도움을 통해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이다. 이것도 엄청난 지적 노력과 어려움이 수반된다. 학문의 목적은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앎의 지평을 여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질문을 하는 것이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에 대해 또 새로운 질문을 하는 것이고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지적 도전과 함께 넓은 영역을 포괄 할 수 있는 새로운 지적영역이 절실한 시기다. 지적 안목 없이는 삶의 참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가 아는 세상과 인간의 모습을 좀 더 깊이 살펴볼수록 우리 삶이란 독자적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의 연관 속에서 참 모습이 드러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세상과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살며 향유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시각, 틀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학문을 한다는 것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함만이 아니다. 새로운 앎의 틀을 마련하여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학문을 하기 위해 그래서 자신의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아주 엄밀하고 체계적으로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그것을 하기위한 기초를 확실하게 하여야 한다. 앞 단계를 익히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틈새, 결함이 있을 때 추정과 가정으로만 채우려 하지 말고 사려 깊고 인내성 있게 탐구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사실을 탐색하고 비교하고 종합해 보라. 공부하고 실험하고 관찰하여 사실의 표면에서만 머물지 말고, 사실의 편집만 하려하지 말라. 사실의 본질, 근원을 탐구하라. 사실을 지배하는 법칙을 탐색하라. 겸손해라.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무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절대 자만하지 마라. 정열을 가져라. 당신의 일과 진리 탐구에 정열적이어야 한다" ( 이반 페드로비치 파블로프의 마지막 유언과 고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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