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신오현 경북대 철학과 교수)
철학에는 시작에서 끝이 보이고 부분에 전체가 잠재되어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그리스 고전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확고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중세기 잠자는 철학에 각성을 촉구한 데카르트가 제2의 도약대를 마련하고,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로 계승되면서 근세합리론이 형성된다. 그리고 합리론이 계몽철학으로 전승된다. 계몽철학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비판적, 도전적 모색이 철학의 새로운 과제로 등장했다. 현대철학은 두 가지 흐름으로 갈라진다. 형이상학적 폐기를 통한 과학적 철학의 건립과 현상학적 방법을 통한 선험철학 복원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현상학적 선험철학 운동을 이정표로 하고 후설의 선험적 현상학을 역사적 전형으로 내세우고자 한다. 후설은 학문으로서 철학을 우주에 비유하여 우주 핵심에 해당되는 선험현상학을 제일철학으로 여기에 토대한 사실현상학을 제2철학으로 중간영역인 선천적 학문 수학, 논리학을 형상학으로 분류한다.
철학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해야 하는가’를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의 문제로 다룬다. 선험적 철학의 개념은 경험, 사실적으로 확증할 수 없는 선험적 개념이기에 철학적 개념은 분석이며, 연역은 수행하는 당사자의 개념일 수밖에 없다. 문자 그대로 순전히 개념의 의미와 명제 간 논리 연관에 따라 연역적으로 추리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지각 자체의 인식 연관에 따라 필연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선험적 영역이다. 경험인간과 경험세계를 초월한 이러한 인식지평에 이러는 것은 초인적인 수련과 사유 수행을 필요로 한다. 학문이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배우고 물음은 곧 앎을 의미하는 말이며 앎의 활동이다. 학문은 과학, 철학, 형이상학, 윤리학, 모두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인식개념이라는 말이다. 인식의 진리성은 인식대상과 인식내용의 일치성에 성립한다는 것이 대응설이다. 사물, 사건, 사실에 대한 인식의 진리성은 그 인식 내용이 바로 사물, 사건, 사실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가에 달려있다. 그 다음으로 대상과 인식의 부합 정도가 동일하더라도 인식대상의 실재성과 인식 주관의 인식 차이에 따라 진리성이 차이가 날 수 있다.
인간 인식에서 감각, 오성悟性(지성), 이성의 차이는 물론 인식방식 즉 지각, 추리, 직관 등의 차이에 따라 인식 내용의 진리성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인간 정신의 최고 표현인 至人의 至神이 곧 ‘神’이라 불린다. 인식이 無念 無我경지에 이를 때, 즉 주객 분별이 소멸될 때 지혜 , 정신, 생명이 자유 자재하는 하나의 자연으로 化育할 때 지혜가 완성된다. 인간은 의식, 인식, 지각과 동시에 인간 초월적이며 자유와 해탈을 지향한다. 그것이 자유정신으로 인간은 인간을 초월함으로써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행위가 철학행 무위행의 삶이다. 本性 天命을 각자의 소질과 인연, 노력과 분수에 따라 나름대로 계발할 뿐 군자, 소인, 부처, 중생의 판가름은 모두가 저하기 나름이다.
동양철학 (이승환 고려대 철학과 교수)
문화는 언제나 도전과 응전 그리고 자기변혁과 외부로부터 수혈을 통해 발전해 왔다. 모든 철학과 사상은 구체적인 시간 공간의 좌표 안에서 만들어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사상가들이 자기가 속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형성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사상가들이 자신이 속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자신과 동시대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식과 씨름하면서 나름대로 설명과 해법을 내놓게 된 것이 철학이다. 따라서 동서양이 공유할 수 있는 철학적 주제와 내용도 있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삶의 방식에서 서로 다른 점도 있다.
동양철학은 유교, 불교, 도교로 나누어진다. 敎는 종교가 아닌 가르침이란 의미다. 유교는 사회, 정치철학적인 성격과 도덕윤리적인 성격이 한층 강하다. 유교는 현실 사회를 지배하던 관료, 사대부 층의 수신과 수양을 강조하여 건강하고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인간을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난 자식으로 간주하고, 인간을 포함한 우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가정으로 파악했다. 인간관계나 사회관계에서 투쟁 대신 협동과 화합을 중시했으며, 인간과 자연관계에서도 지배, 정복 대신에 공존과 상생을 중시했다. 도가는 유교에 비해 자연중심적 성향이 강하다. 인간이 자연과의 조화로운 흐름을 무시하고 인위적 조작으로 욕망을 추구한다면, 오히려 인간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보고 無爲自然이라는 삶의 길을 제시한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전래된 외래사상이지만 2천여 년의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중요한 사상의 일부가 되었다. 불교는 세상 어느 것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자아도 예외가 아니라고 본다. 모든 현상적 존재는 서로 의존하여 성립하게 된다는 연기론緣起論과 이분법적 대립, 분별을 넘어서는 中道論이 불교의 핵심이다.
동양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한문고전을 이해해야 한다. 언어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부단히 변해간다. 서양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언어에 대해 먼저 공부해야 한다. 불교철학의 경우에는 고대인도 산스크리스트어부터 시작하여 팔리어와 티베트어 그리고 한문, 영문도 통달해야 한다. 서로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언어로 번역된 불교경전을 공부하기 위해서다. 언어 공부가 모두 그렇지만 한문 독해능력도 짧은 시간에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습독되는 것이다. 또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 한다. 철학이론 대부분은 특정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동시대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된다. 역사적 맥락이나 시대적 문제의식에 대한 이해가 결여될 때 철학을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 문장에 대한 분석적 이해와 더불어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역사적 맥락과 저자의 의도를 읽어내지 않으면 피상적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다.
동양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전통과 현대문학 그리고 동양과 서양문화를 비교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현대인에게 읽힐만한 글을 쓰기 위해 현대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서양 근대성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필요하다. 과거 철학이나 사상이 오늘에도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현대사회에 대한 문명사적 이해와 통찰이 필요하다. 문화는 언제나 도전과 응전 그리고 자기변혁과 외부로부터 수혈을 통해 발전해 왔다. 동서고금을 창조적으로 융합하기 위한 화쟁和諍(모순과 대립을 하나의 체계 속에서 다루는 것, 모든 논쟁을 화합으로 바꾸려는 불교교리)의 노력이 필요하다. 동양철학을 현대학문과 융합하여 화쟁의 철학으로 승화시키려는 작업은 전 지구적으로 자본주의화에 따른 문화적 정체성 위기가 가중됨에 따라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철학 전공자들은 뛰어난 분석력과 논리력으로 언론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철학을 하기 위해 익힌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은 다른 학문을 하기 위한 기반이 된다.
'학문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어학, 종교학 (0) | 2022.04.28 |
---|---|
문학 (0) | 2022.04.21 |
역사학 (0) | 2022.04.05 |
대학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1) | 2022.03.28 |
자연과학이란 무엇인가? (0) | 2022.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