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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길

역사학

역사학 (이종흡. 경남대 사학과 교수)

역사가는 어두운 방에서 응시하고 더듬어서 그 어둠을 극복하는 존재다. 어둠은 역사가에게 숙명이다. 과거 대부분은 역사가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시간과 공간에 속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과거가 남긴 기록과 유물에 의존하여 그 과거를 재구성한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사료를 성실하게 조사하여 참고하더라도 자신이 재구성한 과거가 역사 실재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역사가는 없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인 랑케는 그것이 원래 어떠했는가?’를 밝히는 것이 역사학의 일차적 사명이라고 했다.

 

현재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는 각 개체의 발생기원에서부터 현실에 이르기까지 성장 과정을 사실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영국 역사가 카(E.H. Carr)는 역사가를 과거가 전부라고 믿는 부류와 현재가 전부라고 믿는 부류로 나누었다. 사료에서 추출된 사실과 역사가의 해설이 적절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바람직한 역사학이 정립된다고 주장했다. 역사가는 과거 사회를 총체적인 관점에서 전망해야 한다는 것이며, 총체적인 관점은 사회과학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자연과학 지식이 자연에 대한 통제 지배력을 높여 주었듯이 역사에 대한 지식은 역사의 진행과정에 대한 조정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며, 사회과학의 인과율에 따라 과거를 재해석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예측력과 실천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카는 역사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것은 역사학 수준을 높이는 길이라 생각했다. 사회과학으로써 역사학의 수준이 높아지면 인류는 자신의 환경을 통제하고 더 좋은 환경으로 나아가게 힘을 키울 수 있으니 역사학의 진보가 역사의 진보를 의미한다.

 

그러나 인류 전체 운명에는 관심이 없고 자국이나 우리, 심지어는 자기 자신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이 진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가는 기존 텍스트를 기초로 새로운 텍스트를 재생산 한다. 이런 맥락에서 포스트 모든 역사학은 역사 이야기를 정치행위로 간주한다. 역사학은 역사 실재에 대한 연구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정치게임이라는 것이다. 역사학이 이데올로기 기능을 한다. 역사학이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역사가들이 기억할만한 것들을 저마다 다르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각자가 편드는 사회세력에 유리한 집단기억을 만들려고 한다. 모든 역사학은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인문학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어떤 역정을 거쳐 현재 우리가 되었는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같은 원초적 물음이 역사학의 존재 이유를 일차적으로 뒷받침한다.

 

동시대인들이 의미 있다고 여기는 한정된 소재들을 선택해서 평생을 바치는 것이 역사가들의 일생이다. 하지만 어떤 세계관이나 이데올로기가 역사가를 구속할 만큼의 영향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에게는 현재의 빛으로 과거의 어둠을 비추는 능동적인 모습보다는 어둠에 갇혀 실체를 더듬는 수동적인 모습이 더 어울린다. 과거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고 어떻게 과거와 대화할 수 있겠는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과거 지식이 현재 유사사례를 인식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이렇듯 과거를 현재의 유익하고 편안한 상태로 삼는 것이 역사와 친숙해지는 것이다. 또 역사는 사료들 틈에서 틈새를 찾고 억압된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과거를 타자로 되돌린다. 그로인해 우리는 기억에서 지워버린 치부를 떠올리고 외면했던 반증 사례를 다시 뒤적이고, 안심하던 과거를 다시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타자에게 덧씌우지 않도록 스스로를 성찰하고, 그 결과 드러난 타자의 크고 작은 차이를 넉넉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역학은 사료의 학문이다. 우리 세대는 해방, 전쟁, 쿠데타, 혁명 등의 소용돌이 속에 살았다. 우리 역사학은 그만큼 이데올로기화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역사학으로 삶의 지혜를 얻는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각 분야의 사료관리는 역사학도가 해 볼만 한 일이다.

 

역사학 2 (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

독일어로 직업을 소명召命, beruf라고 하듯이 직업 선택은 자신의 결단과 의지만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아 아니기 때문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그 위에 높고 큰 건물을 지을 수 있듯이 적절한 기초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직업에 대한 선택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 기초가 무엇일까? 역사학도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첫째 삶의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거기서 생겨나오는 공감력이 있어야 한다. 역사학은 인간 활동의 궤적을 추적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둘째 인문, 사회과학 등 다방면에 걸친 광범위한 독서를 토대로 형성된 복합적인 사고력이다. 역사학은 다루는 범위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기본지식 축적과 사고력 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셋째 외국어 해독력이다. 문헌을 위시해서 갖가지 형태의 자료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언어 해독력이 갖추어져야 한다.

 

역사학이란 일차적으로는 문헌자료의 해독과 분석을 통해서 과거를 재구성하는 학문이고, 어떤 지역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언어가 달라진다. 새로운 언어를 베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생소했던 낱말들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생명과 의미로 살아날 때 느끼는 지적인 즐거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고 그래서 읽는 자료들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들을 어떻게 파악하고 재구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연구에 필요한 사료들은 어떤 왕조가 역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이지만, 단순히 과거 사실을 기록 보존한다는 것 이외에 자기왕조의 정통성을 과시하고 합리화한다. 다양한 사료들에 담긴 기록들의 역사적 위미를 파악하고 과거의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일은 창조적 사고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어떤 역사적 현상에 대한 독자적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될 것이다. 역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인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보다 후천적 능력과 훈련에 의해서 획득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독서와 토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요한 능력이 자신의 생각, 의견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역사학3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진로를 결정할 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야가 있으면 좋지만 아니면 너무 심각하게 고민할 것은 아니다. 어떤 진로를 결정하든 누구도 그 길이 나에게 맞다고 장담할 수도 보장할 수도 없다. 정말 나와 맞지 않는 분야면 오직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 그리고 내가 시작한 학문을 기반으로 다른 분야를 할 수 있다. 어떤 학문이든 지금까지 열심히 했다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다른 분야를 하기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다만 재미를 느낄 수 없다면 평생 고역이다.

 

한국사는 우리 초상을 그리는 학문이다. 우리 초상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잘못 그려져 있었다. 일제는 강제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를 미개하고 못난 형상으로 그려 놓았다. 역사학은 사료를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은 백번을 강조해도 모자란다. 역사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사관史觀 을 가져야 한다. 사관은 역사를 보는 관점이다. 사관은 이것저것 열심히 심도 있게 공부한 다음 형성된다. 사관보다 사안史眼, 사식史識을 갖는 것이 먼저다. 사안이란 역사적 사실을 두고 전후관계를 꿰뚫어 보는 눈을 말한다. 우리 삶의 방식과 정서 같은 것은 남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방법론이나 체계이론의 적용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하의 근심은 내가 남보다 먼저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내가 남보다 늦게 누린다는 태도로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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