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동안 제법 겨울다운 기세를 보였지만, 우리 동네 탄천 버들강아지 봉오리가 햇살에 눈이 부신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씨다. 인간세상이 코로나로 난리를 치든 말든 어김없이 겨울은 가고 또 봄이 온다.
요즘은 나의 공부는 周易이다. 예전에 몇 번 시도했다 포기하였는데 요즘은 주역의 오묘한 재미에 빠져 있다. 주역을 공부하는 목적은 피흉취길避凶取吉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궁극적 목적 또한 가능하면 흉한 것을 피하고 길한 것을 선택하기 위함이다.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이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려 노력하며, 흉한 것을 피하고 보다 나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동양사상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주역에 대한 이해가 그 기반이 되어야 한다. 철학이 모든 학문의 시작이듯이 동양에서는 주역이 모든 학문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동양사상에서는 聖人之道, 君子之道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성인과 군자는 무엇이 다르고, 中道란 또 무엇인가? 나는 공자의 학문의 기반은 주역해설서인 주역계사周易繫辭 ‘십익十翼’이라고 생각한다.
주역은 주나라의 易이다. 易이란 세상이 변하는 이치다. 易이란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고, 한번 陽하면 한 번 陰한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이다. 易이란 나날이 새로운 것이다.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이다. 우리 인생은 나날이 새롭다. 매일 해는 뜨고 진다. 유아 때 다르고 청소년시절이 다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르고 결혼해서 다르고, 자식을 낳으며 다르고 은퇴하면 다르고, 자식이 결혼하면 다르고 노년이 다르고, 누구를 만나고 헤어져서 다르고 건강해도 아파도 우리 삶은 달라진다. 그러니 인생은 순간순간 매일 매일이 다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이란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사회의 제물로 살아간다. 살아가면서 느끼고 배우고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뭔가를 공부하고 수양해야 한다. 우리 삶은 이것이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 세상에 관심이 없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늙는 것이고 죽는 것이다. ‘지금 힘들다고 좌절하지 말고 스스로를 수련하고 기다려라. 지금 잘 나간다고 교만하지 말고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이 조심하고 겸손해라. 아니면 곧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주역은 세상이 변하는 이치를 이렇게 쉽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쉬운 것을 깨닫고 실행하지 못하여 항상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역사는 똑같이 되풀이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일반대중이 알게 형상으로 밝히는 자가 聖人이다. 그 이치가 聖人之道다. 周易이 그 道다. 석가모니나 예수, 공자를 聖人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자연과학, 사회과학이 그 이치다. 또 주역은 세상이 변하는 이치에 따라 인간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가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이치를 깨닫고 행하는 자를 君子라고 한다. 또 군자는 자신의 허물을 고치려 애쓰는 자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로 실수할 수 있고 허물이 있다. 스스로를 성찰하여 그 허물을 고치면 허물이 없다. 주역은 그 시대의 자연과학이고 인문학이고 사회과학이고 종교다. 종교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이야기하는 君子之道라고 나는 이해한다.
공부란 무엇이며, 인간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인간은 미성숙한 동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이 공부다. 인간은 타고나는 자질과 환경에 따라 무엇으로 만들어진다. 인지능력나 인성이 좀 더 좋은 자질로 태어나면, 좀 더 좋은 학습환경에서 자라면,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가 함께 제대로 성장해야 한다. 육체적인 건강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건강도 중요하다. 인간이 공부하고 수양해야 하는 정신적 능력이란 좋은 습관, 인성, 정서다. 이것은 오랜 시간동안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또 수련에 의해서 몸이 만들어진다. 일상의 다양한 경험, 책을 통해 배우고 익힌다. 그리고 세밀하게 분업화된 사회에서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기술, 재능을 익힌다. 우리도 그랬고 우리 자식들도 사회시스템의 부품역할을 하기 위한 교육만 받았다.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공부는 스스로 세상만물에 대해, 자연현상에 대해, 사회현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나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에서 시작된다. 호기심이란 질문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질문함으로써 그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공부다. 공부는 주입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며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이 몸에 익혀져 무의식적으로 행해져야한다. 이러한 과정을 쉼 없이 꾸준히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내가 호기심을 가질 때, 무엇이 궁금할 때 학습욕구가 생긴다. 호기심을 갖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욕구를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생존과 번식의 욕구를 일으킨다. 대부분 물질에 대한 욕구다. 이 욕구는 모든 동물이 가지고 있는 욕구다. 오로지 물질만을 탐하는 것은 동물이나 인간이나 같다. 그 옛날에 무지한 중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종교가 생겼다. 종교는 무지한 중생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는 실천적 학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그들조차도 자본주의 시대에 발맞추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리를 지어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 종교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탐욕과 집착으로 편안함에 길들여져 무위도식하면 도적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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