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이게 천국일까?’라는 그림책을 읽는다. 손자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책을 매개로 대화하는 것이 전부다. ‘왜 사람들은 천국을 가고 싶어할까? 천국이 어떨거라고 생각해? 천국에서 무엇을 하고 싶어? 요즘은 주로 무얼 해? 좋아하는 것이 뭐야? ...’ 일곱 살 손자가 공부 이야기를 하면서 영어, 수학공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한다. 엄마에게 못한다고 매번 혼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 독서지도를 하면서 나름대로 잘해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쳐본 적도, 아이들 공부에 대한 경험도, 자식이 어릴 때도 공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성적이 나쁘면 그것만 지적하고 나무랐다. 독서지도를 하게 되면서 공부에 대해 강의도 듣고 관련 책도 찾아 읽으며, 아이 인생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아이 공부의 주도권을 학교 선생이나 학원 선생이 아닌 부모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서히 아이에게 그 주도권을 넘겨주어야 한다. 그래서 손자 교육에도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이번 주 손자의 고민을 듣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5년간 독서지도를 한 경험과 공부한 내용을 기반으로 내 생각을 전했다.
공부하는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서, 감성, 인성 등을 건강하게 하는 정신적 공부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지적 공부, 즉 영어/ 수학 등 교과 공부다. 정신적 공부가 먼저다. 정신적 공부가 정신적 틀을 만들고 특별한 나를 만든다. 인지적 공부는 정신적 틀, 몸으로 하는 것이다. 인지적 공부 이전에 그 몸을 만들어야 한다. 먼저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신적 건강은 특히 어릴 적에 대부분 그 틀이 만들어진다. 어려서 몸만 제대로 만들면 공부는 몸이 알아서 한다.
인서는 인지능력도 뛰어난 편이고 대체적으로 모든 것이 건강한 아이다. 학교 갈 준비가 된 아이다. 지금부터 지적인 무엇을 너무 주입할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 경험을 많이 하게하고. 다양한 책을 많이 읽고 함께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다양한 책을 많이 읽어 공부의 배경지식을 키워 세상에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지적인 무엇을 주입하려 하는 것보다 책을 통해 배경지식을 만들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를 배워도 공부의 깊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학교에 가서 공부가 너무 쉬우면 학교공부를 쉽게 생각하여 학교 공부에 집중하지 않게 된다. 학창시절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이고, 학교 공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공부는 스스로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부모와의 대화가 중요하고 부모의 질문이 중요하다.
아이는 태아일 때 엄마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먹고,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태어나 맞닥뜨리는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성질이 다른 나, 특별한 존재가 된다. 또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행동하느냐에 성향이 달라질 수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를 다니는 게 정답인 삶을 살아온 우리는 질문할 줄도 모르고, 어떤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가부장적 사회와 독재정권하에서 사회적 분위기는 부모나 윗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은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느껴졌고 용납되지 않았다. 요즘은 질문을 권하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지만 아직도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외우고 암기하여 답을 써는 것으로 좋은 점수를 받는다. 질문도 경험이다. 질문했을 때 엄마가 혹은 아이의 질문을 선생님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반응해주는가는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에게 지식적인 부분만 확장시키기 위한 질문을 바래서는 안된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풍요롭고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을 통해 알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이가 질문했을 때 중요한 것은 그 싹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이가 자신의 질문이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질문하지 못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질문을 기다리고 질문에 사랑으로 답해주어야 한다.
질문은 공유되고 전달될수록 생명력이 생긴다. 하나의 지식은 전달하는 사람의 경험을 통해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을 더 다채롭고 가치 있게 만든다.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기만 하는 상황 속에서 무엇을 더 배우고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질문은 내가 누군가의 감정과 상황과 생각을 읽고 보고 듣는 가운데 생기는 것이다. 호기심도 마찬가지다. 육아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육아방법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며, 질문하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배경지식이 중요하다. 아이의 사소한 질문에도 부모는 공감해주고 격려해주며, 성실하게 답변해주어야 한다. 부모의 진심어린 관심과 답변만이 아이의 질문을 자라게 한다.
우리는 경험으로 하나가 된다. 아이에게도 세상과 함께 경험을 채워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는 기다려줘야 한다. 서툴더라도 부모가 달라지려고 노력하면, 아이도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키우고 자라게 된다. 질문이 달라진다는 것은 관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관점이란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상태나 시각을 말한다. 엄마의 관심이 어디로 향해 있느냐에 따라 아이가 달라진다. ‘오늘 무엇을 먹었니? 무엇이 맛있었니?’ 라고 묻는 것과 ‘오늘 무엇이 즐거웠니? 뭐가 좋았니?’ 라고 묻는 것에 따라 아이의 관점이 달라진다. 아이의 대답이 달라지고 아이 가치관이 달라진다,
부모의 질문이 아이 인생의 씨앗을 심는다. 부모가 영수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아이는 영수에만 관심이 있다.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부모 질문이 달라지면 아이 질문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진다. 재촉하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표정, 말투를 살피며 눈치를 본다. 그처럼 부모도 아이의 눈치를 봐야 한다. 아이 마음이 어떤지 표정이 어떤지 살피고, 아이 말을 들어줘야 하는지 질문할 때인지 기다려줘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듣고 외우기만 하는 아이에게 있어 질문하는 환경이 불편하다. 질문하는 아이에게 질문하는 환경이란 자신에게 정서적으로 편안한 환경이다. 아이는 민감하게 엄마 아빠의 분위기를 알아차린다. 정서적으로 편안해야 다른 일을 할 에너지가 생긴다. 공부도 책도 호기심도 정서적 안정이 이뤄지고 난 다음에 할 수 있다. 그 정서적 안정은 부모가 만들어줘야 한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는 아이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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