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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과학(한나 크리츨로우 지음, 김성훈 옮김)

3. 배고픈 뇌 2

전세계 인구중 절반이 비만확률을 25% 높이는 버전을 가지고 있다. 이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비만될 확률이 50% 더 높다. 이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운동을 열심히 해도 건강한 체지방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뇌는 고지방, 고당분 음식을 섭취하도록 진화해 왔다. 개인별로 이 욕구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그 사람이 타고난 유전자와 뇌의 배선에 달려있다. 물론 음식에 관한 행동이 오로지 유전자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30% 정도는 환경적 요인에 달려있다. 산모가 임신기간 동안에 먹는 음식이 아기 건강에 중요하다. 산모가 먹는 음식에 들어있는 성분은 자궁 속에서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양수를 통해, 출산 후에는 모유를 통해 아기에게 전달되어 급성장중인 아기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산모가 마늘, 고추 같은 음식을 먹으면 이런 익숙한 냄새와 맛에 적응해서 그 냄새와 맛이 나는 곳을 향해 머리와 입을 움직인다. 아기 뇌는 특정 냄새와 맛을 자기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다.

 

음식습관을 바꾸려면 끈기 있게 긍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이가 특정한 맛을 느끼기 시작할 때까지 여덟 번에서 열 번 정도 꾸준히 새로운 채소 등 새로운 음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타고난 식욕이 초기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바뀌기보다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비만이 생기기 쉬운 유전자를 타고나서 비만을 유발하는 환경에 둘러싸여 부모로부터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지속적으로 제공받고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생활방식으로 산다면, 비만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행동을 바꾸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습관이 견고해짐에 따라 바꾸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의지력에 의존해서는 대부분의 경우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한 개인의 자제력은 다른 성격과 마찬가지로 선천적인 신경생물학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산물이고, 수많은 맥락에 따라 요동친다. 습관은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 진화시킨 오래된 뇌회로, 개인의 타고난 유전자, 그리고 현재 놓여있는 환경, 이 세 가지 요소간의 복합적 상호작용에 의해 생긴다. 이것을 한 순간에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유전자 발현과정에서 환경적 요인이 맡은 역할은 근래에 들어서 발견되었고, 이것을 후성유전적 조절이라고 한다. 영양상태가 불량했던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나중에 비만과 당뇨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높다. 먹을 것이 귀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 아이의 대사기능이 풍족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이다. 변화한 것은 DNA암호가 아닌 유전자 행동방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아이의 온갖 행동들이 임신되기 전에 부모가 살았던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공포를 주입하면 실제로 유전자 변화가 촉발되는데 이것은 DNA 암호에 의해서가 아니라, DNA 암호가 몸에서 사용되는 방식에 변화가 온다. 이것이 후성유전학적 수정이다. 후성유전학은 유전적 변화가 더 이상 기나긴 진화적 시간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물려받은 회로와 살고 있는 환경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한다21세기 개발된 광유전학은 빛으로 신경계내부의 전기활성을 통제한다광유전학을 이용하면 뇌 속에 있는 개별 신경로의 스위치를 켜고 끌 수 있다. 이 기술로 사랑이나 사회적 불안, 중독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행동들이 뇌에서 어떻게 지휘되는지 밝혀지고 있다. 뇌의 특정 신경로에서 전류를 바꿔주면 질병에 의한 고통을 지우는 것뿐 아니라 인간본성에 자리 잡고 있는 행동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생물학적 운명을 알고 나면 처음에는 저항하다가 오히려 더 빨리 운명에 굴복한다. 운명을 알고 나면 자신감을 잃고 운명과 맞서 싸우려는 의지를 잃어버린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유전자 잘못이라는 태만함에 대해 변명한다. 하지만 운명을 아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변화를 줄 다양한 전략을 시도할 자극을 줄 수 있다자기가 동기부여나 보상에 개인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더 잘 알게 되면, 자신의 환경에 변화를 주어 이로운 선택으로 스스로를 이끄는 것이 가능하다. 사회 전체 측면에서 의미 있는 개선을 이루려면 공공의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음식의 선호도처럼 보편적 신경회로에 의해 나오는 행동조차도 대단히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행동이 제각각이다유전학이 사람체중에 미치는 운명적 영향을 알고 있어도 자신의 행동 변화가 지속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적어도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 그때 음식선택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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