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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과학(한나 크리츨로우 지음, 김성훈 옮김)

보살피는 뇌 1

인간이라는 종은 섹스를 통해 번식한다. 인간은 번식과 무관한 섹스도 많이 하지만 근본적으로 생물학적 법칙이 그런 행동을 주도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섹스를 본질적으로 죄악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난 후에도 섹스를 무의식저인 욕망과 억압된 감정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고집했다. 성행위를 하는 동안은 통제가 불가능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력한 본능과 뇌의 달콤한 쾌락, 화학물질의 유혹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성적 선택뿐 아니라 낭만적인 사랑, 배우자와 유대감, 육아, 우정 그리고 그보다 더 넓은 사회적 유대감까지 포함된다사랑은 번식과 인간종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뇌회로 때문에 생겨난 부산물인 것으로 보인다 사랑은 보상체계의 기능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온갖 종류의 사랑에 우리 뇌는 로맨스, 애착, 사회적 유대를 갈망하며 이 모든 것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도록 강요한다. 성에 관한 한 섹스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같은 기본적인 선택을 비롯해서 대단히 개인적이고 은밀하다고 여기는 선택들은, 상당부분 자신의 유전자가 후대에 전달되는 기회를 극대화하려는 뇌의 암호가 만들어낸 행동학적 결과다. 은 성에 대한 욕망을 뛰어넘어 친밀감, 애착, 사랑까지 그 산물이다. 친밀감과 애착을 갈구하는 낭만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헌신이나 친한 친구나 사회집단에 대한 사회적 유대감은 애착이나 번식행위를 하면서 쾌락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과 동일한 메커니즘이다.

 

오르가즘은 성행위를 하도록 우리를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뇌스캔영상으로 오르가즘이 쾌락의 신경회로에 불을 붙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오르가즘은 보상행위이다. 섹스에 대한 기대만으로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할 수 있다. 인간이 섹스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려는 욕구와 쾌락에 대한 기호 때문이다. 물론 그 양상은 복잡하다. 성행위는 자기정체성, 성적 취향, 나이, 계급, 건강상태 등에 따라 축적된 경험 등 수많은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자신을 섹스를 원하지 않는 무성애자라 정의하는 사람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동성애에 대해서는?

 

짝의 선택은 자손에게 상호보완적인 유전물질을 전달하려는 유전적 갈망 등 의식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생물학적 지상명령에 의해 주도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과 다른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거기서 나온 자손은 광범위한 능력을 갖게 되어 생존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성이 육아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며 남성은 그렇지 못하다. 남성은 아이 육아에 여성만큼 많은 시간과 에너지 희생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임신상태에서는 자신과 자신의 아기를 보호해줄 남성을 곁에 두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낭만적 사랑을 할 때의 뜨거운 열정은 기본적 번식욕구의 부작용이다. 연구에 의하면 낭만적 이성애적 관계의 전형적인 생활사는 대략 7년이라 한다. 이정도면 함께 자고 아이를 낳아서 아이가 가장 취약한 인생초기시절을 지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다. 번식이란 강력한 동인이고 새로움에 대한 인간선호도 역시 강력한 동인이다. 친밀함을 꾸준히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동기를 부여해주는 요인이 된다. 인간의 뇌는 친밀감 유지를 조장하도록 진화해왔다. 친밀한 상호작용으로 정기적 보상을 얻는 것만으로도 그 관계를 평생 붙잡아두기에 충분하다.

 

부부는 서로에게 신체적으로 중독되어 간다. 초기 연애시절 이후에도 관계를 유지하는데 몇몇 신경 화학물질이 관여한다. 배우자의 부드러운 손길에 피부의 신경말단을 자극해서 뇌의 시상하부 영역으로 신호를 보내고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으며, 엄마와 신생아 사이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옥시토신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약화시켜 사회적 관계를 잘 만들 수 있게 한다. 행복, 긴장완화, 신뢰 등의 느낌을 강화한다. 반면에 외부자들을 향한 지역주의 같은 공격성을 갖게 한다. 이처럼 사회적 적대감역학에도 관여하고 있다. 타인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집단을 선호하도록 고취시킨다. 사랑하는 사람 외 그 누구도 무엇에도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낭만적인 느낌은 부분적으로 옥시토신의 영향이 있다.

 

연구에 의하면 배우자에게 그냥 오늘 하루 어땠느냐고 물어보고 그 말에 귀 기울이고 그 말에 공감하며, 대화를 나누는 단순한 행동만으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을 촉발하고 강화하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다양한 행동들이 모두 하나의 스펙트럼 위에 놓여 있다. 성적취향도 마찬가지다. 성적취향에 대해서 인간 뇌에 관한 한 정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모든 복잡한 행동이 그렇듯 하나의 유전자 부위가 성적취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성욕이란 결국 어떤 면에서는 신경화학적 현상이다. 어떤 성행위가 개시되려면 뇌와 몸에 작용하는 다중의 신경화학물질들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에스트로겐, 황체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흥분성으로 작용하며 세로토닌과 프로락틴은 억제성으로 작용한다아이에게 수유를 하는 동안 몸의 프로락틴 호르몬 수치가 높아져 성욕을 억제한다. 모든 형태의 성적관계는 수십만 년에 걸쳐 다듬어진 뇌회로와 본능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다. 또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 측면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규범과 외부압박이 생물학적으로 깊숙하게 새겨져있는 욕망과 경쟁할 수 있다사랑에 빠질 때 경험하는 육체적 간절함, 사랑하려는 사람을 보호하려는 욕구, 질투심 등의 모든 필수적인 감정상태는 섹스와 육아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도록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한 격렬한 신경화학적 활동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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