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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기술( 딕 티비츠:Dick Tibbits, 한

용서는 선택이다

심리학 입문에서 배우는 것은, "우리의 반응을 유발하는 다양한 자극들이 인간의 기본 행동들을 대부분 결정한다"는 것이다. 당신 삶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 당신의 반응 대부분을 결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가 처한 환경이 다른 누군가의 행동에서 비롯된 결과라 생각한다. 요점은 네가 행동하면 나는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런 반응이 바로 당신의 억울한 사연, “내 비참한 상황은 누군가 나한테 저지른 일 때문에 생겨난거야" 라는 사연을 만들어 낸다. 즉 내 인생은 네 탓이라는 거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극과 반응사이에 아주 짧은 일시정지 순간이 주어진다. 이 짧은 정지 순간에 자극에 반응할 수도 있고,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할 수도 있다. 용서를 선택할 수도 있고 복수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 선택은 당신 몫이다.

 

보통 우리는 제멋대로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행동보다 나은 어떤 행동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이익일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선택은 단순한 바램을 넘어선다. 선택은 행동하고자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용서를 선택하는 것은 "그 용서를 지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보통 우리는 더 깊이 간직한 믿음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무언가를 선택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치관과 욕망 사이에 혼란을 느낄 때면 무엇을 선택할지 망설인다. 이런 내면 갈등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면 선택의 결정은 훨씬 쉬워진다. 당신은 무엇인가를 날마다 선택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당신이 하는 선택, '용서하겠다'는 선택을 포함한 그 선택이 당신을 만든다.

 

자신에게 일어난 부당함을 언제 용서해야하는지 정해진 시간표는 없다. 언제 용서해야 하는지 당신에게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용서는 당신 혼자 결정하는 것이다. 당신만이 스스로가 언제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은 용서할 준비가 안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다만 앞으로 용서의 가능성이 있음을 막지만 말라. 그리고 나중에 더 준비가 되었을 때 용서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명심해라. 용서는 선택이다. 그 선택은 당신이 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용서는 강요할 수 없다. 오직 스스로가 원할 때만 용서할 수 있다. 사람들이 용서가 어렵다고 여기는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장애물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준 이유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용서하겠다는 바람과 맞서는 감정이 다르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감정을 다스려 우리가 더 쉽게 용서를 실행할 방법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겸손과 공감이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 마음속에는 모두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당신을 포함해 당신이 만나게될 사람은 모두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나의 성공담을 들려줘야 할까?

 

겸손함이란 자신의 성공, 업적을 자신의 실패, 결핍과 균형을 맞추는 능력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대접보다 더 중요한 사람으로 대접받으려 애쓰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겸손함이란 자기자신을 비하하거나 자기가 남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겸손은 진정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매력, 결점, 딱히 좋다 나쁘다 할수 없는 특성을 모두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겸손이란 자신을 낮추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남보다 더 낫거나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를 지워버리거나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허세 부리지 않고 분수를 지키는 것. 이것이 바로 겸손한 사람이다. 겸손함은 다른사람들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남들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는것이기도 하다. 이런 깨달음이 용서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당신과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다. 정체성이란 타인이 자기에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에머슨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끊임없이 당신을 당신 아닌 존재로 만들려고 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성과다”  자신감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때려 눟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감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자신의 믿음대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실수한다. 겸손함은 우리가 주변사람들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말라고 일깨워준다. 당신이나 내가 완벽할 수 없듯이 그들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어느 누군가에게 가장 득이 되는 행동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가 됐든 누군가는 감정이 다치게 되어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왜 당황하는가? 겸손은 자신이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인간임을 직시하고, 다른 사람 또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능력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누군가가 감정 상하는 일이 생겼을 때, 어느 한쪽에만 백퍼센트 책임이 있고 상대방은 책임이 하나도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겸손은 그런 일이 발생한데에 당신이 얼마나 일조했는지 깨닫게 해준다. 당신이 늘 완벽하다는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면, 당신은 겸손해질 수 없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그 사건에 당신이 어떤 일조를 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해도 자기 행동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것은 겸손이다.

 

동정이란 단어가 어떤 대상과 함께 감정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는 달리, 공감은 그 대상이 되어 감정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공감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공감은 비슷한 사건에 비슷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므로 상처준 사람을 더 잘 이해한다. 

 

* 상실은 나를 슬프게 한다.

* 배신은 나를 화나게 한다.

* 복잡한 상항은 나를 우유뷰단하게 한다. 

* 불확실함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공감은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한발 물러나, 다른사람이 겪고 있는 상처와 노고를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면 당신은 그 삶을 근본적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이 사악한 의도와 부정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단정하여, 아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러나 공감을 통해서 보면, 그 사람은 당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면이 많은 사람이다.

 

당신은 공감을 통해 그 사람이 사악하며 벌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점점 덜하고, 한계를 지니고 있기에 치유와 성장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관점이 당신과 당신에게 상처를 준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줄여준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다른 점 보다 닮은 점이 더 많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많은 부분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 사람이 한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면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 조금 더 쉬워질 것이다. 공감을 통해 이해한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을 정당하게 만들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감은 당신이 그 사람의 한계를 바라보도록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당신은 내 자신도 그런 한계를 가졌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다시 겸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