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한 마음-달라이 라마의 성경 강의

하나님의 나라(1)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유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에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예수께서는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때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 (마가복음 4장 26절-34절)

 

불교에서는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고 믿는다.  부처님은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골고루 자비를 베푼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선한사람은 물론 약한 자에게도 똑같이 태양이 비친다는 마테복음 비유와 비슷하다. 하지만 각각의 존재들이 받아들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양하다.  그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의 다양한 능력, 각자 필요한 것, 그리고 저마다 다른 영적 성향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어떤 경전에 있는 것이 어떤 사람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 종교들이 자기만의 특수성, 독특한 신앙형태, 통찰력, 수행방법 등을 나름대로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스도 신앙의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와 불교의 삼신불. 종교적 신앙은 각 개인 수용능력, 영적성향, 정신적 기질에 맞춰 가르침을 펴야 한다. 이것은 음식을 먹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사람들마다 자신의 체질에 어울리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음식을 먹는 진정한 목적은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기 위해서 이다. 따라서 자신의 건강에 적합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귀하고 비싼 음식이 모두에게 맞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영혼, 마음의 영양분 같은 것이다.  종교에서 공통된 것은 자신이 귀의한 대상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것에 오로지 마음을 집중하는 영적수행을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귀의한 대상을 한결 같이 믿고, 거기에 영혼의 안녕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무집착이란 무소유다. 초연함은 사물의 환영같은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진리를 발견하면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고, 세상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사람이 개인적 인간관계를 벗어나 혈연의 입장에서 벗어나는 초월을 경험을 할 때, 그 사람은 삶과 세계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깨달음을 얻을 때와 같은 경험이다.  깨달음을 성취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은 무지, 잘못된 이해, 미혹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일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시작된다. 어떤 사람을 사귈때는 먼저 그 사람을 알려고 한다.  존경하더라도 단순히 하나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다가, 차츰 피상적 성격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면을 이해하여 그리스도가 가진 의식과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교나 불교나 확실한 것 하나는 흔들림 없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영적 수행을 해야 한다.수행자는 자신의 영적행복을 귀의 대상에 온전히 맡겨야 한다. 불교에서 수행자는 부처님이 설하신 진리, 진리를 따르는 공동체라는 보물에 귀의해야 하며, 거기부터 출발해야 한다.귀의는 부처님과 하나가 된 상태에 이르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려면 스스로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불교도 자아를 버리라고 한다. 종교가 서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의 다양성을 깨달아야 한다. 불교는 초월적인 존재보다 개인적 책임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종교의 목적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영적으로 성숙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다. 한 개인이 성향에 따라 영적 추구의 길이 달라진다. 진리가 하나의 얼굴만 갖고 있지 않다. 진리도 상대적 차원을 갖는다. 부처님은 자신의 존재에 강한 집착을 가진 사람들에게 무아無我를 가르치고, 세상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자아를 가르친다. 자비, 사랑, 명상과 관용. 불교의 세계관은 연기를 중심으로 한 철학적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은 천지창조와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다. 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은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두 종교는 형이상학적 입장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둘다 똑같이 훌륭한 인간을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차이가 있다고 우리가 다르다고 할 것 까지는 없다. 예수님은 왜 특별한가? 영적 실천을 이룬 보살이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다면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이다.  사람이 체험하는 아픔, 고통, 즐거움, 행복은 대부분 마음에서 비롯된다. 모든 것이 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깨달음은 환생의 끝을 의미한다.  모든 생각, 감정, 이해, 육체적 감각,  관념에 따라 집착을 버리고, 그것을 자신과 하나로 보려는 생각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삶으로 환생을 거듭한다대승불교에서는 자비심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집착, 소유는 맹목적으로 달라붙는 것이다.  하느님은 시간, 공간의 근원이며 만물의 근원이고, 우주의 근원이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신비 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사랑하고 표현하는 본성은 하느님으로부터 표현되어 나온 존재들이다. 우리안에 있는 신성, 거룩함이 우리 기원이다. 모든 것의 근원은 거룩함이자 신성이다.

 

'선한 마음-달라이 라마의 성경 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나라(3)  (0) 2019.07.16
하나님의 나라(2)  (0) 2019.07.15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0) 2019.07.11
원수를 사랑하라.  (0) 2019.07.10
종교에 대해  (0) 2019.07.09